GS칼텍스 강소휘와 우리카드 나경복의 평행이론
2015-2016시즌 신인지명 전체 1순위, 그리고 신인상. 국가대표 아웃사이드 히터. 장충체육관. No.10까지. 두 사람은 공통점이 아주 많다. GS칼텍스 강소휘와 우리카드 나경복 이야기다. 두 사람은 <더스파이크>가 창단되던 해 V-리그 새내기로 뛰었다. 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두 선수는 소속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로 성장했다. 공통점이 많더라도 걸어온 배구 인생은 같을 수 없는 법. 이들의 첫 출발부터 지금까지를 담아봤다.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강소휘는 이번 비시즌, 오랜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2022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폴란드전을 제외한 11경기에 출전하면서 꾸준한 기회를 받았다. VNL에서 86점을 기록하며 박정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했다. 특히 일본(11점), 독일(13점) 경기에서는 팀 최다 득점을 기록하며 새로운 대표팀 아웃사이드 히터로서의 존재감들 드러냈다.
비록 한국은 12전 전패로 아쉬운 성적표를 거뒀지만, 강소휘는 느낀 점이 가득했다. 그는 “많이 지면서 분위기는 가라앉았을지라도 깨달은 건 많았다. 외국인 선수가 코트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공격을 어떻게 하는지 직접 상대하면서 배웠다. 직접 코트에서 부딪히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라고 돌아봤다.
이렇게 태극마크를 달고 다른 나라 선수와 네트를 마주보며 코트를 밟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 2의 김연경’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유망주 시절, 아마추어 무대를 휩쓸었다. 연령별 대표팀에도 꾸준히 승선하면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2015년 여자부 신인드래프트에서 학창시절 동안 보여줬던 기량을 인정 받았다.
“GS칼텍스는 원곡고 강소휘 선수를 지명하겠습니다.”
1라운드 1순위로 프로의 무대를 밟는 영광을 안은 강소휘는 데뷔 시즌부터 꾸준히 출전 기회를 잡았다. 27경기 91세트에 출전해 154점, 공격 성공률 32.99%, 서브 세트당 0.165개, 블로킹 세트당 0.110개를 기록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이 프로 무대에 활약하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소휘는 코트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생애 단 한 번뿐인 그 해 신인상은 만창일치로 강소휘에게 돌아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강소휘는 “그 때는 정말 많이 부족했지만 기회를 주셨던 이선구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리시브도 못했고,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경기를 했던 터라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만족스럽지 않은 경기력이었다(웃음). 그럼에도 신인상을 타게 되어서 영광스러웠다”고 이야기했다.
데뷔 시즌의 활약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강소휘는 성인 대표팀에 뽑혀 2016 리우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전도 다녀왔다. 하지만 시즌 도중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받고 재활을 했다. 두 번째 시즌에는 배구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강소휘 역시 “1년 차 때는 겁 없이 때렸는데, 배구를 알아가면서 무언가에 쫓기듯이 무서웠다. 스윙도 안 나오고 주눅이 들었다”며 슬럼프를 겪던 당시를 털어놨다.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법. 잔부상으로 몸 컨디션이 항상 완벽하지 못했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여유가 생겼다. 3년 차 부터는 팀의 주전으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경기력도 점차 안정됐다. 2017 KOVO컵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MVP에 올랐다. 정규리그 성적도 좋았다. 득점 6위(532점), 공격 6위(성공률 37.65%), 서브 4위(세트당 0.342개), 리시브 6위(세트당 2.615개)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공격은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곤 국내 선수 가운데 1위였다.
“트리플크라운과 정규리그 MVP,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자신의 4번째 시즌에 인생 경기를 펼쳤다. 2019년 3월 17일이었다. 한국도로공사와의 챔프전을 향한 길목에서 벌어진 플레이오프 2차전. 강소휘는 코트 위를 날았다. 서브 2개, 블로킹 3개를 포함해 31점(성공률 44.07%)을 터트렸다. 특히 1세트에는 11점, 공격 효율 90%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미친 활약을 보여줬다.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하며 플레이오프를 3차전까지 끌고 갔지만, 3차전까지 무려 15세트를 치른 혈투 끝에 아쉽게 패하며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지 못했다.
“몇 년 전인데도 아직까지도 제일 기억에 남아요. 도로공사랑 했던 플레이오프 했을 때 30점을 넘게 올리면서 이긴 경기가 제 인생 경기에요.”
시즌을 거듭할 수록 한 단계 더 성장한 활약을 펼쳤다. 2019-2020시즌에는 처음으로 라운드 MVP와 함께 BEST7 아웃사이드 히터 상을 받았다. 강소휘는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 동료들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당시 GS칼텍스 멤버가 완벽했어요. 러츠랑 소영 언니까지 팀이 원팀의 끝판왕이었어요(웃음). 팀 경기력이 좋으니깐 내가 라운드 MVP를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또 당시 외국인 선수 어나이(IBK기업은행)가 아웃사이드 히터로 등록되어 있었는데, 그 선수가 코로나19 때문에 미국에 갔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가능성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실제로 받게 되어 무척 기뻤어요.”
2020-2021시즌은 GS칼텍스에게 있어선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시즌이었다. 2020 제천 KOVO컵 당시 절대 1강이라고 평가받았던 흥국생명을 결승전에서 셧아웃으로 꺾으며 반전 드라마를 작성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챔피언결정전까지 휩쓸면서 여자부 최초 트레블을 달성했다.
하지만 강소휘에겐 아쉬움이 가득했다. 챔피언결정전 3차전 4세트 도중 발목 통증을 호소하며 코트에서 이탈했다. 웜업존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시선은 오로지 코트를 향했다. 팀은 축포를 터트렸지만, 자신은 코트를 마지막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자책하고 속상했다.
“시즌 중간에도 아팠고, 경기력에 기복이 있었다. 마지막 챔피언결정전에서 부상을 당해서 서럽고 속상했다. 나 스스로 자책도 많이 했고, 끝까지 코트 위에 있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화가 났다. 우승한 기분보단 속상한 마음이 더 컸다”라고 당시를 이야기했다.
7번의 시즌을 겪으면서 성장한 부분도 있었다. 강소휘는 “리시브랑 수비에서 많이 성장했다. 아직 득점에선 많이 부족하다”면서 “우리 팀이 원래는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낮은 팀인데 어느 순간부터 높아진 것 같다. 그래서 이 역할을 나눠가져야 한다”라고 힘줘 말했다.
8번째 시즌을 앞둔 강소휘의 목표는 트리플크라운과 정규리그 MVP다.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고, 외국인 선수보다 잘해서 시즌 MVP 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배구를 떠나서는 스트레스에 연연해 하지 않고 즐기면서 하고 싶은 거 하고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원을 말했다.
‘나기복’이라는 별명
오히려 자극제로 다가오다
무더운 여름, 나경복 대표팀에서 생활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 이후 오랜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2022 국제배구연맹(FIVB) 챌린저컵부터 AVC컵까지 대표팀의 주전으로 쉼 없이 출전했다. “형들이랑 재밌게 배구했다”라고 돌아본 나경복이 대표팀에 있는 동안 얻었던 가장 큰 수확은 경험이었다. “해외 선수들이랑 겨뤄보는 실전 경험을 무시하지 못한다. 대표팀에 있는 동안 많은 경기를 뛰면서 경험을 많이 쌓았다”고 이야기했다.
인하대 재학시절, 꾸준히 대표팀 경험을 쌓았고 3학년 때는 전관왕을 이끌었다. 남들보다 빠르게 3학년 때 얼리드래프티로 프로의 문을 넘었고 많은 출전 기회를 얻었다. 데뷔 시즌에 32경기, 87세트에 출전해 196점, 성공률 43.95%를 기록했다. 나경복 역시 그 해 만장일치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
모두에게 처음은 서툴듯이, 나경복 역시 과거 첫 시즌을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가득했다.
“첫 시즌 때 배구를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아무 생각없이 배구했죠. 어린 나이였기에 생각하면서 배구를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지금 되돌아보면 내가 더 해보고 싶은 걸 해봤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후에도 꾸준히 출전 기회를 잡았지만, 경기마다 기복 있는 플레이를 했다. 운동선수에게는 다소 마음 아픈 별명이지만 ‘나기복’이라는 수식어를 갖게 됐다. 하지만 이게 하나의 자극제로 다가왔다. 나경복은 “운동선수에게 기복이 있다는 별명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 별명을 받고 나서 이겨내려고 했기에 기복을 줄일 수 있었고, 별명이 조금이라도 덜 불려서 좋았다”면서 그동안 숨겨왔던 노력을 이야기했다.
“경기 때 득점을 하더라도 너무 좋아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려고 생각했어요. 득점을 못하더라도 다음 것을 생각하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요. 신영철 감독님께서도 자신감을 많이 불어넣어 주셔서 더 많은 도움이 됐어요.”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하고 또 성장했다.
2018-2019시즌, 36경기에 모두 출전해 우리카드의 주전으로 거듭났고, 처음으로 봄배구 무대를 밟았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 끝났지만 더 나은 다음을 만들었다. 2019-20202시즌, 데뷔 이후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29경기, 113세트에 출전해 491점(성공률 52.92%), 세트당 0.327개, 리시브 효율 30.64%를 기록했다. 국내 선수 가운데 득점 1위, 공격 4위, 서브 6위에 이름을 올렸다. 데뷔 첫 트리플크라운까지 달성하면서 그야말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나경복의 활약은 곧 우리카드의 성공을 의미했다. 팀 최다 10연승을 달성했다. 비록 코로나19로 시즌 완주를 못했지만 정규리그 1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지금 돌이켜봤을 땐 어느 때보다 아쉬웠다. 나경복은 “되게 아쉬운 시즌이었다. 잘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시즌이 일찍 끝났다. 우승을 했을 거란 보장은 없지만, 정규리그를 마지막까지 소화했더라면 다음 시즌 챔피언결정전에 갔을 때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고 했다.
다음 시즌, 우리카드는 창단 첫 플레이오프 승리를 거뒀고, 나경복은 10년 만에 남자부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트리플크라운을 만들었다. 챔피언결정전 무대에 올라간 우리카드는 2승 1패로 우승문턱까지 갔다. 챔피언까지 단 1승만 남았던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예상못한 변수가 생겼다.
외국인 선수 알렉스가 장염 증세로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당황했던 우리카드는 4차전을 대한항공에게 내줬다. 결국 운명의 최종 5차전. 시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갔지만, 상대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걸 지켜봐야했다. “우리가 알렉스를 조금만 더 도와줬더라면 할 수 있었을 것 같았죠. 시즌의 마지막 날, 마지막 경기까지 했는데 우승을 하지 못해 제일 아쉬웠어요.”
2019-2020시즌 정규리그 MVP와 베스트7 아웃사이드 히터, 2021-2022시즌 베스트7 아웃사이드 히터 상을 받으며 커리어를 쌓았다. “상을 받으면 누구나 좋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다음부터는 더 잘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좋은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라고 했다. 상을 받을 수 있기까지 노력했던 과거의 영광을 다시 미래에도 누리기 위해 현재에 안주하지 않았다.
“나에게 상은 하나의 커리어라고 생각해요. 하나 하나 받으면 계속 받고 싶은 게 상이에요. 다음에도 받을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해야죠.”
배구를 꾸준히 즐겁게
“우승, 꼭 해야죠”
이젠 ‘나꾸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처음 이 별명을 들었을 때 나경복은 “이제 기복이 떨어졌구나라고 생각했다(웃음). 별명처럼 이젠 꾸준히 더 잘하겠다”라며 웃으며 굳게 다짐했다.
스스로도 성장한 부분을 느꼈다. “공격은 옛날보다 많이 성장한 게 느껴진다”면서 “아직 리시브와 수비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웃었다. 또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구를 더 즐겁게 할 수 있게 됐다.
“배구를 더 즐겁게 하다 보니 재밌게 하게 됐어요. 항상 잘 되는 게 아니다 보니 배구가 잘 안되는 날도 있지만, 그 날에도 극복하면서 차분하게 할 수 있게 됐어요.”
이젠 선배로 해야 할 역할도 느낀다. “예전에 형들이 해준 걸 후배들에게 해주고 있다. 도와줄 수 있는 게 뭔지 찾고 후배들이랑 코트에 같이 있으면 먼저 이야기 한다. 경기 때도 내가 이끌어 가야 하는 게 달라졌다”고 이야기했다.
새롭게 프로 무대를 밟을 후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도 건넸다. “어렸을 때 대부분 선수들의 목표가 프로다. 그 목표에 달성했다고 안주하기보단 프로에 와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응원했다.
지난해 딸이 태어나면서 새로운 책임감도 생겼다. “결혼을 하고 아기가 태어나면서 책임감이 생겼다. 매 번 생각하지만 아이가 아빠 직업이 운동선수라는 걸 알게 되는 날까지 코트 위에 있고 싶다”라고 굳게 다짐했다.
비시즌 동안 트레이드를 통해 선수단에 많은 변화가 생긴 우리카드. 그래서 나경복은 새로운 퍼즐 속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작년까지는 주전으로 뛰었을 때 형들이 많았다면 이젠 다르다. 거의 코트에서 두 번째로 막내다. 그래서 오히려 훨씬 편해졌다(웃음)”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나경복의 목표는 오로지 ‘V1’이다. “아직 우승을 못해 본 만큼 제일 하고 싶다”는 나경복은 팬들에게 재밌는 배구를 약속했다. “오랜 시간 경기장에서 못 즐겼어요. 이제는 육성 응원이 가능해진 만큼 팬들을 위해 열심히 재밌는 경기를 하겠습니다. 우리카드 팬들께 좋은 겨울을 주고 싶어요.”
글. 김하림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