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천재 배유나의 달라진 모습 "공격적인 모습 보여드려야죠"
한국도로공사 배유나는 어렸을 때부터 ‘배구 천재’로 불렸다. 고교졸업반 때 이미 국가대표선수였다. 당연히 2007-2008시즌 신인 선수 드래프트를 앞두고 모든 팀들이 그를 지명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우선 순번을 가졌던 KGC인삼공사는 내심 배유나와의 인연을 기대했지만 정작 가장 먼저 행운의 구슬을 잡은 팀은 GS칼텍스였다. 전체 1순위로 GS칼텍스의 선수가 된 배유나는 팀 사정상 아웃사이드 히터, 미들블로커, 아포짓 스파이커로 두루 활약하다 미들블로커로 자리를 잡았다. 벌써 V-리그 16번째 시즌이다. 그 사이 FA선수로 한국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며 또 한 번의 FA재계약을 앞두고 있다. V-리그에서 가장 배구IQ가 높은 배유나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팩트체크’를 했다.
득점, 블로킹, 서브까지 많은 기록 리스트에서 배유나의 이름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꾸준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왔다는 증표다. 배유나는 부상이 있었던 2019-2020시즌을 제외하고 매 시즌 20경기 이상씩 출전하고 있다. 배구를 잘하고 꾸준한 기량을 보여준 대표적인 선수다. 데뷔 이후부터 항상 팀의 중심으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로 만 33살이지만 기량은 떨어지지 않았다. 되려 더 좋아졌다. 다가올 FA시장에서 배유나의 가치가 높은 이유다. 그야말로 타고난 배구 선수이자 ‘배천’이다.
<더스파이크>와 2년 만의 인터뷰이자 3번째 인터뷰입니다.
아마 단발머리 시절이 마지막 인터뷰였던 걸로 기억해요. 섭외가 들어왔다고 해서 ‘왜 2년 만에 섭외가 왔을까, 더 빨리 섭외가 올 수 있도록 잘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포털사이트에 이름을 검색하나요.
포털사이트에는 잘 안 하고 유튜브에는 가끔 해요.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고 (김)연경 언니랑 (김)수지 언니가 3학년일 때의 영상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그걸 보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 영상에 나오는 상대 팀에는 한수지 선수, 오지영 선수도 있더라고요(웃음).
배구요? 언니 대신 시작했죠
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친언니가 어렸을 때 키가 컸어요. 그래서 언니가 초등학교 4학년이고 내가 1학년일 때 이병설 감독님이 언니한테 연락해서 배구를 시키려고 했는데 언니가 안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2년 뒤에 제가 할게요”라고 말했어요. 근데 진짜 2년 뒤에 감독님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그래서 하루 만에 배구하겠다고 결정했어요. 근데 당시에는 배구가 뭔지도 몰랐는데 재밌을 것 같았어요.
부모님께서도 원래 운동을 시키고 싶어 하셨다고 하던데.
워낙 성격도 활발한 편이었고 당시에도 뛰어노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운동을 시키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기록은.
평생에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신인상을 받았던 게 기억에 남아요.
고등학생으로 국가대표에 차출돼 국제무대를 경험하기도 했어요.
그냥 그때 당시에는 진짜 어렸던 것 같아요. 국가대표에 뽑혔다고 해서 떨리거나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냥 뽑혔으니까 간다, 가서 열심히 배구하면서 배운다는 생각이었어요. 많은 생각보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했던 것 같아요.
1순위, 챔피언결정전 우승
그리고 신인상
2007-2008시즌 많은 예상을 깨고 GS칼텍스로 입단했습니다.
드래프트할 때 대표팀에 들어가 있었는데 언니들은 내가 KT&G(KGC인삼공사)에 갈 거라고 예상을 했죠. KT&G 구슬이 제일 많았으니깐요. 근데 구슬이 더 적었던 GS칼텍스의 구슬이 먼저 나왔어요. 그렇게 GS칼텍스로 가게 됐고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프로 데뷔전부터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저번에 한국배구연맹(KOVO) 유튜브에 올라왔더라고요. 한 번씩 보는데 당시에는 잘했다는 생각이 안 들었는데 영상을 보니까 잘했더라고요(웃음).
당시 아웃사이드 히터, 미들블로커, 아포짓 스파이커를 모두 소화했어요, 힘들지는 않았나요.
당시 신입생이 힘이 어디 있겠어요(웃음).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들어가라는 곳에 들어가서 했죠. 당연히 힘든 것도 없지 않았죠. 하지만 코트 안에 들어가는 것 자체로 행복했어요. 그리고 결국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했기 때문에 좋았다고 생각해요.
고등학생 때까지 주 포지션이 어디였나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주로 아웃사이드 히터랑 아포짓 스파이커를 봤어요. (프로에 와서 처음으로 미들블로커를 한 것인지.) 아니요. 미들블로커도 중간에 한 번씩 하긴 했어요. 꾸준히 한 건 아니지만 날개 공격수 2년 하고 미들블로커 1년 이런 식으로요.
프로에서 미들블로커로 완전히 적응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당연히 있었죠. 왜냐하면 이날은 미들블로커 했다가 다음날은 갑자기 아웃사이드 히터 했다가 3세트 때는 다시 미들블로커로 했던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도 내가 그런 능력이 있으니까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독이 됐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서 지금까지도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말한 것처럼 데뷔 시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했습니다.
당시 우리 GS칼텍스가 3위로 올라갔어요.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난 흥국생명은 (김)연경 언니, (황)연주 언니 등 좋은 선수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챔피언결정전에 가서 무조건 우승이라기 보다는 한 경기 한 경기 승리하다 보면 좋은 결과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결국 모든 선수들이 꾸준히 잘해줬기 때문에 우승까지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아직도 생각이 나는 게 마지막 경기에서 리시브할 때 내가 너무 떨려서 옆에 있는 (남)지현 언니에게 ‘내 쪽으로 와서 받아달라’고 했어요(웃음).
결국 그 시즌에 신인상도 받았습니다.
사실 기록적인 면에서는 나보다 뛰어났던 선수들이 몇 명 있었다고 생각해요. 근데 기록적인 것보다 우리 팀이 우승하기까지 희생이나 공헌도를 높게 평가해 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내게 신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느덧 16번째 시즌입니다. 시간이 빠르지는 않나요.
빨라도 너무 빨라요(웃음).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아요. 길었던 시간 속에 우승을 했던 기억도 있고 부상으로 쉬었던 기억도 있어요. 그런 시간이 자연스럽게 지나다 보니 어느새 16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네요.
2019-2020시즌은 부상으로 힘든 시즌을 보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부상으로 힘들었던 것도 있고 그때가 FA재계약을 앞둔 시즌이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1년 동안 휴식함으로써 지금의 좋은 컨디션과 좋은 몸으로 배구를 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당시 가장 힘이 되는 사람은 누구였나요.
일단 가족들이나 남편이 제일 많이 힘이 됐어요. 그리고 항상 응원해 주시는 팬분들 덕분에 힘이 났어요. 많은 분들이 걱정도 많이 해주시고 용기도 주시고 희망도 주셔서 잘 견디고 버텼던 것 같네요.
통합우승 했던 2017-2018
12연승 했던 2021-2022
2017-2018시즌은 도로공사에서 통합 우승을 기록했잖아요. 돌아보면 어땠나요.
당시 2~3년은 항상 초반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도 우리가 조직력이 워낙 좋기 때문에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있었어요. 그래서 중반부터는 완전히 올라섰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 힘이 끝까지 갔기 때문에 우승할 수 있었어요.
임명옥 선수는 당시를 ‘천하무적’이라고 말하던데요.
그때는 모든 선수들이 매 경기마다 자기 몫을 했던 것 같아요. 책임감도 모두 강했고요. 만약 한 선수가 컨디션이 안 좋으면 옆에 있는 선수가 그 선수 몫까지 커버해줄 수 있는 능력들이 있었어요. 그런 힘들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모습을 보였던 것 같아요.
통합 우승을 기록했던 2017-2018시즌과 12연승을 기록했던 2021-2022시즌을 비교하면.
2017-2018시즌은 아기자기한 플레이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효희 코치님의 성향상 아기자기하고 빠른 플레이를 많이 했어요. 2021-2022시즌에는 켈시와 (이)고은이가 그 전 시즌보다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성장통을 겪으면서 한 단계 올라선 느낌이었죠. (이)윤정도 팀에 새로 와서 보탬이 많이 됐어요. 여러모로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 돌아갔던 시즌이었어요.
2017-2018시즌 통합 우승 이후 처음으로 BEST 7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초중반까지는 흐름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 이러다 상 받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도 했어요. 근데 후반으로 갈 수록 많이 떨어져서 '상을 못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근데 이런 생각을 챔피언결정전 할 때는 아예 잊고 있었어요. 근데 끝나고 감사하게도 상을 주셔서 기뻤습니다.
길다면 긴 선수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개인상은 두 번입니다. 아쉽지는 않나요.
그만큼 독보적이었던 시즌은 없었던 것 같아요. 상을 받기 위해 배구를 한다기보다 나의 배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근데 이번 시즌은 상에 대한 욕심도 있어요(웃음).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팀 승리에 집중해야죠.
국내 선수 가운데 8번째로 많은 득점입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12월 12일 기준 3,482점)
첫 번째로는 배구 정말 오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8번째면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배구를 오래 하고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뿌듯하네요.
블로킹은 역대 통산 6위에 올라있습니다.(12월 12일 기준 773개)
미들블로커 치고는 신장이 작잖아요. 그런 걸 극복하려고 나만의 노하우도 만들어보고 나만의 타이밍도 만들어 보면서 노력했는데 그게 꾸준히 잘 나와서 이러한 기록을 세우고 있네요.
11월에는 통산 200 서브 기록도 작성했습니다.
경기 전까지는 정말 아예 몰랐어요. 경기가 끝났는데 200득점 적힌 걸 들고 오시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뭐야? 뭐야?’ 했는데 내가 달성했다고 해서 깜짝 선물 받는 느낌이었어요.
‘배구천재’ 배유나
감사한 별명이죠
팀에 있는 (정)대영 선수와 (임)명옥 선수는 어떤 언니들인가요.
일단 대영 언니는 같은 포지션에서 함께 경기하고 있는데 언니가 지금까지 할 수 있는 이유는 워낙 관리를 잘해요. 언니는 먹는 거, 운동하는 거에 있어서 남들보다 더하려는 모습을 보여줘요. 그런 모습을 본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따라 하고 있어요. 명옥 언니는 노력도 정말 많이 하지만 타고난 부분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겠구나 싶어요. 정말 리시브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할 정도로 타고난 게 있어요. 대영 언니와 명옥 언니는 정말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에요.
박정아 선수랑 ‘배똘과 정삼’이라는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잖아요.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주변에서 갑자기 유튜브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해볼까?’ 하다가 ‘그러면 편집은 누가해?’라고 하니까 ‘몰라 일단 그냥 만들어보자’라고 해서 바로 만들었죠. 배똘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숙자 코치님이랑 한유미 해설위원님이 ‘배유나 또라이’를 줄여서 불러주시던 별명이었어요. 정아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이 정삼이라고 불렀대요. 그래서 정말 단순하게 합쳐서 지은 거예요.
배천(배구천재)이라는 별명은 어떻게 생기게 된 건가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아마 고등학교 때 국가대표에 차출되면서 팬분들이 ‘배구 천재다’라고 불러주셨던 게 지금까지 그렇게 이어온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한 별명이죠.
아직은 먼 훗날의 일이겠지만 은퇴를 한다면 무슨 일을 해보고 싶은가요.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했는데 이제 슬슬 해봐야 하는 나이 같아요(웃음). 그래서 근래에 가끔 생각은 한 번씩 해요. 그래도 내가 가장 잘하는 게 배구니까 특성을 살려서 배구 관련 일을 하고 싶어요. 코치가 될 수도 있고, 감독이 될 수도 있지만 배구 관련 직업을 갖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잘할 때나 못할 때나 아플 때나 항상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 주신 팬분들한테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번 시즌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다 팬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성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도 노력 많이 할 테니까 끝까지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박혜성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