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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새로운 배구 인생 개척하는 두 남자, 이영택 감독x송준호

이영택 전 KGC인삼공사 감독이 인도네시아 프로리그(PROLIGA·프롤리가)에 진출했다. V-리그 출신의 사령탑이 해외리그로 수출되는 첫 사례다. 2019년 김경훈 전 우리카드 수석코치가 파키스탄 국가대표팀 감독이 된 것이 V-리그 지도자의 첫 해외 진출이지만, 당시는 국제배구연맹(FIVB)이 주관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현대캐피탈~KB손해보험~우리카드 등에서 세터 전담 코치와 수석코치로 활약했던 김경훈 감독은 파키스탄 배구협회의 요청을 받고 대표팀을 지휘해 큰 성과를 올렸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한국 배구지도자의 빼어난 능력을 확인시켜준 좋은 사례였다.

이영택 감독은 어떻게

V-리그 1호 해외리그 진출 지도자가 됐나

이영택 감독은 대표팀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최상위 리그의 남자 프로팀을 지휘한다. 그가 지휘할 팀은 팔렘방뱅크다. 팀의 연고지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다. 구단의 운영 주체가 은행이어서 재정도 탄탄하다. 팔렘방뱅크는 2002년 출범한 프롤리가에서 2011년, 2013년 우승을 차지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준우승도 했다. 이영택 감독의 계약기간은 3개월 반~4개월 반이다. 팀의 성적에 따라 달라지는데 V-리그보다는 짧다. 비공개된 연봉과 전용 차량, 전담 기사와 통역, 호텔을 구단이 숙소로 제공한다. 2021-2022시즌을 끝으로 KGC인삼공사 사령탑에서 물러났던 그가 해외에서 그것도 여자팀이 아니라 남자팀을 지휘하게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10월 중순에 최종결정을 내리고 11월 14일 취업비자를 받고 현지로 출발하기까지 전광석화처럼 일이 진행됐다.


이영택 감독의 인도네시아 프롤리가 진출은 유나이티드 스포츠 진용주 대표가 추진했다. 그는 필리핀의 몇몇 선수를 일본 V-리그에 진출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덕분에 필리핀 배구계와 탄탄한 인맥을 쌓고 있다. 이런 인연을 바탕으로 몇 년 전에는 필리핀 남자대표팀의 한국 전지 훈련도 도와줬다. 당시 필리핀 대표팀은 V-리그 팀들과 연습경기를 원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실력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V-리그 팀들이 거부했다. 이럴 때 흔쾌히 연습경기를 해준 사람이 당시 경기대 이상열 감독과 성균관대 김상우 감독이었다.


이상열 감독은 이후 KB손해보험의 지휘봉을 잡았다. 공교롭게도 진용주 대표가 추천했던 노우모리 케이타를 전체 1순위 외국인 선수로 선발했다. 케이타는 V-리그 팬 모두가 아는 대성공을 거뒀고 이탈리아 리그까지 진출했다. 이를 계기로 진 대표와 이상열 감독의 인연은 더욱 깊어졌다.


이상열 감독이 타의에 의해 한 시즌을 채우지도 못하고 KB손해보험을 떠나자 진용주 대표는 동남아시아의 여러 곳에 자기소개서를 보내며 취업 활동을 도왔다. 그러던 차에 팔렘방뱅크에서 한국인 지도자를 구한다는 연락이 왔다. 진 대표가 가장 먼저 접촉한 사람은 이상열 감독이었다. 아쉽게도 이 감독은 현일고등학교를 지도하기로 해 인도네시아에 갈 수 없었다. 다음으로 접촉한 이는 장병철 전 한국전력 감독이었다. 뉴질랜드에서 가족과 지내던 장 감독은 인도네시아 리그에 관심을 가졌지만, 마지막 순간에 가족과 더 있고 싶다며 포기했다. 3번째로 등장한 사람이 이영택 감독이었다.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해외리그 행을 결정했다.

이영택 감독이 털어놓는

인도네시아행 뒷얘기들

Q. 첫 번째 V-리그 지도자의 해외 진출 사례를 만들었다. 축하한다.

얼떨떨하다. 진용주 대표에게서 연락이 와서 ‘알겠다. 일단 프로필을 보내겠다’고 했는데 연락한 지 사흘 만에 인도네시아 팀에서 ‘계약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로서는 전혀 준비도 없었고 예상도 못 했던 일이라 아직은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Q. 용감하게 인도네시아 리그에 도전하겠다고 한 이유가 궁금하다.

배구를 하는 사람으로서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설령 V-리그보다 수준이 떨어지더라도 외국에 나가서 지도자 경험을 해보는 것이 먼 훗날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처음 제안 받았을 때 정확한 사정을 몰라 장병철 감독과 통화를 했다. 이왕 가는 것이라면 잘해야 하는데 너무 정보가 없는 것에 조금 부담을 가졌던 모양이다.


Q. 인도네시아 배구와의 인연은.

몇 년 전 마틴이 우리카드의 코치로 오기 전에 인도네시아 리그에서 뛰고 왔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 프로리그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2017~2018년에 남자대표팀 코치를 했을 때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인도네시아와 8강전에서 경기했다. 당시 김호철 감독님, 임도헌 수석코치님과 함께 대표팀에 있었다. 그때 인도네시아 대표팀이 곧잘 한다는 느낌은 받았다. 그전에도 다른 도시에서도 인도네시아 팀과 경기한 적이 있다. 신장은 작지만, 옛날 우리처럼 배구를 했다. 재주 있는 선수들이 많았다. 팔렘방뱅크에서 나를 선택한 이유도 여자팀 지휘 경력보다는 남자대표팀 코치를 했던 경력을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Q. 인도네시아 리그에 진출한다는 소식에 주변의 반응은.

젊은 나이에 감독 자리에서 2년 만에 물러난 터라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번 결정에 잘했다고 많이들 얘기한다.


Q. 1호 해외 진출 감독이다. 의미가 남다른데.

내가 맡는 팀과 인도네시아 리그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어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다. 앞에 무엇이 펼쳐질지 잘 몰라 깜깜하고 많은 것을 가봐야 알 것 같다. 책임감을 가지고 잘해야 한다. 그쪽 선수들이 어리다고 해서 많이 지도해줘야 할 것만 알고 있다. 내년부터 V-리그가 아시아쿼터를 실시하면 인도네시아 선수들에 관한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겸사겸사 현지에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Q. 가족을 두고 혼자 가는 것인데.

가족들은 나 혼자 인도네시아에 간다고 했더니 ‘잘 다녀오라’고만 했다. 원래는 14일에 출국할 예정이었는데 함께 가는 송준호 선수의 비자 작업이 늦어져서 며칠 더 기다린 뒤 같이 출발한다. 짧으면 3개월 반, 팀이 4강에 오르면 4개월 반 정도 지내는 것이기에 간단히 현지 생활에 필요한 것만 챙겨서 가려고 한다. 덕분에 추운 겨울에 따뜻한 곳에서 지내게 됐다.

현대캐피탈 송준호가 V-리그 남자부 1호

해외 임대 선수가 된 사연은

현대캐피탈 송준호의 인도네시아 리그 진출은 구단이 적극적으로 나선 경우다. 2022-2023시즌부터 남자부는 경기 참가 엔트리를 14명으로 제한했는데 새로운 규정 변경이 계기였다. 현대캐피탈 프런트는 시즌을 앞두고 최태웅 감독에게 이번 시즌 14명 엔트리에 들어가지 못할 선수가 누구인지 사전에 알려달라고 했다. 감독과 구단이 협의해 사실상 이번 시즌 전력 외의 인원으로 분류된 선수들을 추린 뒤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훈련하고 실전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팀과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를 놓고 많은 연구를 했다.


그 결과 나온 방법이 해외 임대 추진이었다. 14명 엔트리에 들지 못하는 선수를 2군에서 훈련을 시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는 다른 리그에서라도 뛰게 하는 것이 선수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걸림돌도 있었다. 연봉이었다. 이들이 해외리그에 진출할 경우, 기존에 받던 연봉보다 많이 줄어들 것은 확실했다. 그만큼 현재 V-리그의 선수들은 다른 리그에 비해 많은 돈을 받고 있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했다.


현대캐피탈은 해외 임대를 추진하더라도 그 선수가 전혀 손해를 보지 않고 이익이 되는 방법을 찾아냈다. 구단은 적정한 수준의 임대료를 받고 선수를 보내주지만, 기존에 그 선수와 맺은 계약은 끝까지 책임지기로 했다. 여기에 새로운 팀에서 받는 연봉은 그 선수의 몫으로 해서 해외 진출에 동기부여를 해줬다. 이런 기본 방침을 가지고 여러 리그를 접촉한 결과 팔렘방뱅크에서 연락이 왔다. 현대캐피탈이 보내준 임대 가능한 선수 명단과 영상 자료를 받아본 팀에서 선택한 선수가 바로 송준호였다.


인도네시아 리그 도전은 송준호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가능성도 크다. 일단 조건이 매력적이다. 팔렘방뱅크에서는 연봉과 함께 전용 차량과 기사, 통역 등을 제공한다. 리그에서 뛰는 동안에는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송준호 입장에서는 이번 시즌 V-리그에 출전할 기회가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이미 맺은 계약대로 연봉은 보전받고 가외의 수당으로 새로운 팀에서 연봉도 받으면서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어 ‘꿩 먹고 알 먹고’가 됐다.


현재 KOVO의 규정에 따르면 해외 임대 이적 선수는 그 팀의 샐러리캡과 선수 정원에서 제외되지만 해외 임대 기간은 FA선수 자격을 결정하는 기준에는 포함된다. 이는 구단이 해외 임대 제도를 이용해 선수의 권리에 영향을 주는 것을 방지하려는 조치다. 이 덕분에 송준호는 인도네시아 리그에서 뛰지만, V-리그에서 한 시즌을 뛴 것과 같은 자격을 얻는다.


현대캐피탈은 송준호의 해외 진출을 추진하면서 끝까지 선수의 의견을 먼저 고려했다. 상황을 충분히 설명한 뒤 선수에게 선택 여부를 맡겼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우리 리그보다 떨어지는 곳에서 뛰어야 하는 선수의 자존심까지 생각한 배려였다. 송준호는 가족과 상의를 한 끝에 11월 7일 인도네시아 행을 결심했다.

송준호에게 직접 듣는

인도네시아 진출 소감

Q. 결정을 내리기까지 여러 생각이 많았을 텐데.

처음 구단으로부터 얘기를 들었을 때는 ‘내가 인도네시아를?’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쪽 구단에서 영상을 보고 나를 원했고 현재 엔트리가 바뀐 상황에서 못 뛰는 것도 고려했다. 팀에서 이렇게 지내는 것보다는 실전 경험을 쌓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다. 구단은 새로운 곳에서 실전경험을 쌓고 선수로서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Q. V-리그 최초의 해외 임대 선수가 됐다.

그렇게 말해주니 영광이다. 후배들을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겠다. 조건은 좋았지만,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그쪽 문화를 잘 모르고 새로운 선수들과 어울리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꼭 성장해서 돌아오겠다.


Q. 결정을 내리기까지 알려지지 않은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 구단에서 얘기가 나왔을 때, 단번에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타국으로 가는 것이고 해외리그에서 적응하는 것도, 가족과 오래 떨어져서 지내는 것도 모두 걱정은 됐다. 반대로 새로운 기회와 경험을 쌓는 것이고 한국에서 잡지 못한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어 기회이기는 했다. 좋은 쪽이라 생각하고 부모님과 상의해서 결론을 내렸다. 부모님은 일단 내 의견을 가장 먼저 물어봐 주셨다. ‘어떠냐’ ‘멀리 가는데 괜찮겠냐’ ‘적응 잘하겠냐’고 물어보신 뒤 내 결심을 얘기하자 ‘몸조심하고 다치지 않고 오라’고 하셨다.


Q. 그동안 해외에 오래 나가 본 경험은.

현대캐피탈의 전지 훈련 때 일본에 가본 것이 전부다. 인도네시아어도 모른다. 지금 책이라도 사서 배워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 현지에서 배구를 할 때는 영어를 주로 쓴다고 들었는데 영어도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번 기회에 영어라도 배워볼 생각이다.


Q. 새 소속팀 팔렘방뱅크에 대해서 들은 것은.

2번 우승했고 지난 시즌에는 성적이 좋지 못했다는 정도다. 팀 선수들도 어리다고 들었다. V-리그에서 뛰었던 우드리스와 한 팀이 됐는데 나보다 한 살 많은 우드리스가 그곳의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어야 할듯싶다.


Q. 떠나기에 앞서 그동안 송준호 선수를 응원해온 팬들에게 하고픈 얘기는.

이제 인도네시아 리그에서 경기를 뛰게 됐는데 그동안 응원해주신 현대캐피탈 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V-리그의 명예를 위해 열심히 하고 돌아오겠다. 많이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우리가 몰랐던

인도네시아 배구 리그의 궁금한 점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배구 리그가 발달했다. 인기도 높고 실력도 만만치 않다. 남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강하고 여자는 태국 다음으로 평가받는다. 남자보다는 여자 배구가 더 인기가 높고 대우도 좋다. 인구(2억6700만 명)가 워낙 많아 경기장의 열기는 뜨겁다. 내년부터 아시아 쿼터를 실시하기로 한 V-리그가 선수 수급을 위해 관심을 가지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인도네시아의 프로리가는 남자 6개 팀, 여자 8개 팀으로 운영된다. 외국인 선수를 2명 보유하고 2명 모두 출전이 가능하다. 선수들의 대우는 최하 매달 1만 달러 이상이다. 12월부터 각 팀이 본격적으로 시즌을 준비하고 리그는 1월에 시작해 3월 중순에 끝난다. 우리 V-리그와 비교하면 단기간이다. 아직 구체적인 경기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예년의 방식대로라면 상위 4개 팀이 리그가 끝나면 플레이오프에 돌입한다.


V-리그에서 활약했던 외국인 선수 가운데 프로리가를 거친 선수도 많다. 여자 선수 가운데는 현대건설의 야스민, 전 도로공사의 이바나, 전 IBK기업은행의 아나스타시야가 뛰었다. 남자 선수로는 요스바니(OK금융그룹~현대캐피탈~대한항공), 대니(현대캐피탈) 마르코 페헤이라(OK금융그룹)가 프로리가를 경험했다. KB손해보험에서 활약했던 우드리스는 새로운 시즌 이영택 감독과 한 팀에서 뛸 예정이다.


인도네시아 프로리가는 외국인 선수 선발방식이 독특하다. 소수의 에이전트가 전 세계의 배구선수들에게 제안서를 뿌린 뒤 지원자를 받아서 모든 구단이 필요한 선수 28명을 뽑는다. 일반 기업의 직원 채용방식과 비슷하다. 팀이 원하는 포지션은 아포짓과 아웃사이더 히터로 한정된다. 대표팀 경력자를 우대하고 30세 이하를 선호한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전 세계의 배구선수 가운데 프로리가에 지원한 선수를 대상으로 각 구단이 9월부터 접촉하는데 최종 계약 시점은 11월이다. 


글. 김종건 기자

사진. 더스파이크, PROLI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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