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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피'의 진짜 주인공 오케스트라

인터미션이 되면 호기심 많은 관객들은 무대를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객석 앞쪽으로 향한다. 그러다 오케스트라 피트 앞에 이르면 마치 ‘여기에도 사람이 있네?’ 같은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곤 한다. 이렇듯 관객은 무대 위 배우와 무대 뒤 스태프는 알아도 무대 아래 사람들의 존재는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곳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오케피>의 연습 현장에서 이들이 사는 모습을 담아봤다. 

'오케피'의 진짜 주인공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 이야기로 하나 된 사람들

개막 전 오케스트라와 배우들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시츠프로브(Sitz Probe) 날. 여느 작품이었다면 별다를 것 없는 연습이겠지만, 이날만큼은 분위기가 달랐다. 단순히 배우의 노래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이 실제 연주자들의 모습을 눈여겨보면서 그것을 체화해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 어색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기대감이 어우러진 묘한 분위기 속에서 지휘자인 김문정 음악감독의 18인조 오케스트라 팀 ‘The M.C’가 소개되자, 배우들은 이들에게 열렬한 기립 박수를 보냈다.

 

미타니 코키의 다른 작품들처럼 <오케피>도 코믹한 대사와 왁자지껄한 상황이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특히 오케스트라 이야기로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이어질 때마다 연주자들은 어느 때보다 즐거운 반응을 보였다. 껌을 뱉으라는 컨덕터(지휘자)의 요구를 바순 연주자인 이상준이 순순히 따르자, 컨덕터 역의 오만석은 대본에도 없는 “봐, 순하잖아”로 애드리브를 하며 오케스트라를 웃겼다. 

'오케피'의 진짜 주인공 오케스트라

실제 컨덕터인 김문정 감독은 전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도 특정 파트에서는 수정하거나 강조할 부분을 조율하며 노련하게 연습을 이끌어갔다. 그의 지휘에 따라 오케스트라는 일사불란한 합주로 배우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오케스트라와 마주 앉은 배우들은 연주자들의 모습을 눈에 담기에 바빴다. 특히 윤공주, 린아, 박혜나, 최우리, 백주희, 김현진 등 여자 배우들은 자기가 맡은 하프와 바이올린, 첼로의 연주 모습을 촬영하는 열의를 보였다. 뒤늦게 도착한 황정민도 김문정 감독 옆에 자리를 마련하고 동작 하나하나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다 함께 합창을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모든 파트의 연주자들이 실제로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그 순간 그들이 배우의 그림자가 아니라 무대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오케피'의 진짜 주인공 오케스트라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 오케스트라 피트

‘The M.C’의 최연장자이자 김문정 음악감독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드러머 박진석 악장은 “<오케피>가 일반 관객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지 우려되지만, 작가가 뮤지컬 연주자들의 모습을 잘 포착한 것 같다”며 웃었다. 트럼본의 심상용도 이에 동의한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런스루를 보니 이건 음악이 아니어도 극 자체가 재미있어요. 오케스트라를 멋있게 풀지 않고 유치한 개그로 표현해서 좋아요.”

 

이들이 입을 모으는 극과 현실의 공통점은 사실 오케스트라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제작 여건 때문에 연주자들을 줄인다든가, 개런티 조율이나 지급에 관한 문제는 현실을 반영한 설정이다. 생계를 위해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경우도 실제로 적지 않다. 배우가 중심이 되는 뮤지컬의 성격상 억울할 때도 많다. 마니아들이 소셜 미디어에 그날의 감상을 올릴 때 전후 사정을 모르고 비판을 하는 경우다. 특히 배우의 노래 속도에 맞춰야 하는 뮤지컬 오케스트라의 경우, 배우가 박자를 놓친 상황에서도 관객의 귀는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만 잡아내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누명’을 쓰는 일이 많다는 것. 

 

실제 오케스트라 피트에서의 생활은 <오케피> 보다 더 구체적인 어려움이 많다. 구민경 부지휘자는 제일 먼저 온·습도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가 춥고 따뜻한 건 둘째고 이게 잘 이뤄지지 않으면 악기마다 음이 높아지거나 낮아지거든요. 특히 현악기는 민감해서 고장의 가능성도 있어요.” 그럼에도 극장의 온습도는 철저히 관람 여건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이런 열악한 환경이 개선될 여지는 앞으로도 많지 않다. 배우들의 움직임 때문에 먼지 흡입은 기본이고, 소품이 떨어져 부상당할 뻔했던 적도 다반사다. 박진석 악장은 모 공연에서 우물 덮는 나무 뚜껑이 피트로 굴러떨어진 적도 있다고 경험담을 전한다. “제작사에 안전 보완을 요청했는데 돌아온 답은 ‘초대권 여섯 장’이었죠. (웃음)” 

'오케피'의 진짜 주인공 오케스트라

<오케피>에서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뮤지컬을 우스꽝스럽게 바라보는 인식이 표현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뮤지컬을 좋아해서 이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첼로의 강소진은 고등학생 때 <미스 사이공>을 접하고 뮤지컬에 빠져서 다른 길을 마다하고 뮤지컬 오케스트라를 하고 있는 경우다. “뮤지컬의 매력은 그 상황에 내 인생을 겹쳐지게 하는 드라마에 있어요. 연주하면서도 그 과정을 보고 들으면 울컥하는 게 있죠.” 

 

클래식이나 다른 장르에 비해 장기 공연이 일반적인 뮤지컬에서는 매일 연습하지 않으면 최고의 공연을 기대하는 그날의 관객들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그래서 뮤지컬 오케스트라에게 ‘열정’과 ‘고생’은 익숙한 단어다. 전 세계에서 국내 오케스트라 연주자의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수준인 것도 이런 이유다. 최근 ‘The M.C’처럼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 팀 중심으로 연주자들의 기본 처우와 복지가 보장되는 추세로 가는 것이 그나마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래도 이들이 바라는 바는 그런 어두운 이야기보다는 극장에서 관객과 만날 때의 두근거림과 설렘에 관한 것이다. <오케피>에서는 피트를 내려다보는 관객들의 시선이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 것 같다고 표현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관객들이 관심을 보이고 말을 걸어줄 때 반가움을 느낀다. 그래서 강소진은 어셔들이 관객들의 관심을 너무 막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두 시간 넘게 연주를 했는데, 퇴장할 때 “여기도 사람이 있었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여기도 사람이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웃음)”

 

글 |송준호, 사진 |김수홍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8호 2016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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