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살인마
세기의 연쇄 살인마 올여름 등줄기를 섬뜩하게 만들 연쇄 살인마가 무대로 돌아온다. <스위니 토드>와 <잭 더 리퍼>가 그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살인마와 20세기 새롭게 이름을 날린 살인마들을 살펴본다.
런던의 도시 괴담, 스위니 토드
스위니 토드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약 160명을 살해한 인물로 런던의 도시 괴담에 존재한다. 사실 스위니 토드가 역사적 실존 인물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여러 주장은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그의 이야기는 토마스 패켓 프레스트가 1846년 발표한 <스트링 오브 펄스>라는 잔혹물 시리즈에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스위니 토드를 다룬 이야기의 초창기 버전에서 이발사인 그는 부유한 귀족들이 자신의 이발소에 와서 이발을 하기 위해 앉아있으면 칼로 목을 그어 살해했다. 스위니 토드의 이발소 의자에는 비밀스러운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데, 버튼을 누르면 의자가 뒤로 눕혀져 살해한 시체가 비밀 통로를 통해 지하실로 이동했다. 또 다른 버전의 이야기는 살해 순서가 바뀌는데 손님을 비밀 통로로 떨어뜨린 후에 살해한다는 내용이다. 살해 후 스위니 토드는 손님의 소지품을 훔치고 러빗 부인은 시체를 재료로 파이를 구워 팔아 문전성시를 이룬다. 스위니 토드의 이발소는 런덧 플릿 스트리트의 186번지에 있고 벨 야드 근처의 러빗 부인 파이 가게에 지하 통로로 연결된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것 역시 확실치 않다. 스위니 토드의 이야기는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만들어져 1959년에는 영국 작곡가 말콤 아놀드 경이 발레로 선보였다. 다양한 연극, 영화, 드라마로 만들어진 스위니 토드는 크리스토퍼 본드가 1973년 만든 연극에서 지금의 복수 이야기가 더해졌다. 이후 1979년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인 뮤지컬은 토니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러시아의 악명 높은 살인마, 안드레이 치카틸로
‘로스토프의 살인마’라는 별명을 가진 연쇄 살인마가 있다. 로스토프는 러시아의 한 도시로, 이곳을 중심으로 러시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연쇄 살인을 저지른 인물은 바로 안드레이 치카틸로이다. 1978년부터 1990년까지 약 12년 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을 연결하는 철도변의 삼림지대에서 신변을 쉽사리 판별할 수 없는 소년 소녀의 시체가 발견됐다. 치카틸로는 경찰에 붙잡힌 뒤 자신이 소년 소녀와 여성을 모두 합쳐 약 53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게다가 그는 피해자를 강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체를 훼손했으며 일부를 먹었다고도 말해 러시아 전역에 충격을 줬다. 치카틸로는 칼, 밧줄, 자신의 이빨을 사용해 피해자를 어떻게 살인했는지 설명하고 다른 피해자를 숨겨둔 지점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는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피해자들의 혀를 잘라냈고 목을 물어뜯거나 눈을 파내며 살인을 시작했다. 치카틸로의 완벽한 시체 절단 솜씨에 로스토프 주 의사 전원이 용의 선상에 오를 정도였다. 그는 역이나 정류장 근처에 내리는 피해자들에게 먼저 접근해 말을 걸고, 목적지까지 같이 가주겠다고 제안한 뒤 살해 장소로 유인했다. 또 선생으로 근무한 특기를 살려 어린아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장난감이나 먹을 것으로 자신을 따라오도록 유혹했다.
치카틸로를 잡기 위해 경찰은 미성년자와 함께 있는 남자 수천 명을 촬영하는 동시에 16만 명 이상의 남성에게서 혈액 샘플을 채취했다. 피해자의 몸속에 남아있던 정액으로 판정한 혈액형과 대조하기 위해서였다. 한 사람의 혈액과 정액에서 검출된 혈액형은 서로 같다고 알려졌지만, 치카틸로는 1백만 명 중 한 명꼴로 그것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혈액형 조사를 가뿐히 비켜났다. 하지만 결국 한 집요한 형사에 의해 치카틸로의 살인이 탄로 났고, 그는 체포되는 순간 허탈한 표정으로 순순히 수갑을 찼다고 전해진다. 그는 1994년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희대의 토막 살인마, 잭 더 리퍼
잭 더 리퍼는 1888년 약 2개월에 걸쳐 영국 런던 화이트 채플에서 극도로 잔인한 방식으로 매춘부들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이다. 해당 사건은 일명 화이트 채플 연쇄 살인이라 불린다. 잭은 특정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영어권에서 이름이 없는 남성을 가리킬 때 쓰는 이름이다. 잭 더 리퍼에게 살해당한 시체들은 목이 반쯤 잘리고 복부가 절개된 상태로 파헤쳐졌으며, 피해자들의 시신 주변에는 장기가 전시되다시피 널브러져 있어 시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피해자들의 자궁이나 신장 등 장기의 일부를 먹었다고도 알려져 있다. 계속해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지만, 현대처럼 과학 수사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찰은 잭 더 리퍼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찾지 못했고 공포를 느낀 시민들은 경찰에게 잭 더 리퍼의 검거 방법을 보내기도 했다. 잭 더 리퍼는 범죄 현장에 “유대인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The Jewes are the men that will not be blamed for nothing)”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지만, 이것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밝혀낼 수 없었고 해당 단서로는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또 연쇄 살인이 벌어진 이후 인간의 신장 반쪽과 배달된 편지 한 통이 공개됐는데, 자신이 잭 더 리퍼라 주장하는 자에게서 온 것이었다. 이 편지는 ‘지옥으로부터 온 편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경찰은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편지를 수도 없이 받았지만 이 편지를 비롯한 극소수만이 실제 잭 더 리퍼가 쓴 편지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화이트 채플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 당시 영국은 이민자들로 인구 포화 상태였고, 자연스럽게 생계가 어려워진 빈민들이 넘쳐났다.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매춘업을 시작했고, 이들은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상황에 처했다. 잭 더 리퍼는 매춘업에 종사하는 여인들을 타깃으로 살인을 일삼았고, 그의 범행 동기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시대에 쉽사리 볼 수 없던 토막 살인은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여전히 화이트 채플 연쇄 살인 사건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이후 잭 더 리퍼를 연구하던 아마추어 탐정 러셀 에드워즈는 사건 현장에서 수습한 잭 더 리퍼의 체액과 상피세포를 채취한 뒤 DNA 검사를 진행, 범인이 폴란드 출신의 유대계 이발사라고 단정했지만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그의 판단이 틀렸다고 주장했다. 잭 더 리퍼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소설, 뮤지컬 그리고 오페라까지 다양한 장르로 탄생하고 있다.
잘못된 신의 계시를 받은 살인마, 피터 서트 클리프
영국 전체를 공포에 떨게 한 연쇄 살인마가 있다. 1970년대 영국 요크셔에서 ‘요크셔의 면도칼 살인마’라고 불린 그에게 13명이 넘는 젊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살인마 피터 서트 클리프는 피해자들을 날카로운 칼로 목, 가슴, 등, 배 등을 찢어 잔혹함을 드러냈다. 클리피는 늦은 시간 집으로 향하는 젊은 여자들을 향해 망치나 도끼로 머리를 내려쳐 목숨을 앗아갔고, 수풀이나 공원에 끌고가 시체를 난도질했다. 7명의 피해자가 상처를 입거나 목숨을 잃은 후, 클리프는 요크셔를 떠나 영국 서쪽의 펜닌 산맥 반대쪽으로 범행지를 옮겼다. 그는 계속해서 같은 방법으로 범죄를 저질렀다.
특히나 클리프의 연쇄 살인이 일어나는 동안 경찰에게 ‘살인마 잭’의 서명이 적힌 세 통의 편지가 도착해 화제가 됐다. 경찰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자신이 해당 연쇄 살인범이라고 밝히며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가 전해졌는데, 해당 테이프와 편지의 내용은 경찰을 조롱하고 범행을 예고했으며 경찰이 자신을 계속해서 쫓을 경우 자살까지 생각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클리프가 체포된 이후 편지와 테이프가 가짜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는 범행 현장에 남아 있던 타이어 자국과 발자국 그리고 요크셔에서 발행된 5파운드짜리 신권 지폐를 통해 덜미가 잡혔다. 이후 클리프는 매춘부에 대한 원한으로 살인을 시작했다고 자백했다. 그는 실수로 매춘부가 아닌 대학생을 살해한 후에는 자신의 실수에 절망적인 감정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여자를 죽여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마지막으로 “신으로부터 사람을 죽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해 영국 전역에 충격을 줬다.
글 박보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54호 2016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