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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배순탁

'신해철'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

배순탁의 끄적끄적 뮤직

화가 났다. 내 정보가 모두 털렸다는데 돌아오는 답변이라곤 “그래서 죄송하다”뿐이었다. 그래. 항상 이런 식이었지. 어차피 항의해봤자 이 더운 여름에 나만 지칠 게 분명하고 보면, 이번에도 그들의 ‘배째라’식 전략은 꽤나 유효한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나뿐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독후감이기도 했다.

 

결심했다. 다시는 인터파크의 근처에도 가지 않으리라고. 내가 진짜 인터파크를 앞으로 이용하면 사람이 아니라 개다 개. 굳게 다짐하면서 즐겨찾기 목록에서 곧장 삭제해버렸다. 여기서 잠깐. 왈왈. 어라? 어디서 개가 짖네? 그래. 맞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터파크에 다시 로그인해 뭔가를 사고야 말았다. 이 글은 그럴 수밖에 없었음에 관한 내 처절한 반성문으로 써질 것이다.

 

이 모든 게 페이스북 때문이었다. 한가한 오후, 화장실에 가서 큰일을 보며 페이스북을 검색하는데, 아뿔싸,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하고 말았던 것이다. “신해철의 < 정글 스토리 > OST 인터파크에서만 800장 한정 판매”. 먼저 떠오른 것은 기왕에 소장하고 있던 내 CD장의 < 정글 스토리 >였다. 1996년에 발매되었으니 올해로 정확히 20년이 된 CD. 컨디션이 결코 양호할리 없었다. 스크래치가 이렇게 많은데도 여전히 플레이가된다는 게 마치 신의 기적처럼 느껴지는 상태였다.

 

딱 하루가 걸렸다.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던 내 신념을 꺾고 다시 로그인 버튼을 눌렀다. 비밀번호를 내가 아는 한 가장 복잡한 형태로 바꾸고 구매 완료. 이렇게 나는 다시 한번 저들의 악마와도 같은 계략에 백기를 들고 투항했다. 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게는 저 음반이 필요했으니까. 장담컨대, 앞으로도 이런 특수한 케이스가 아니면 인터파크 쪽으로는 관심조차 주지 않을 생각이다. 글쎄. 자기 위안처럼 들리겠지만, 타협의 묘란 이런 게 아닐까 싶은 밤이다.

'신해철'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

< 정글 스토리 >. 나는 이 앨범이 넥스트(N.EX.T)의 < The Return of N·EX·T, Part II ‘The World’ >(1995), < Lazenca (Space Rock Opera)>(1997)와 함께 신해철이 창조한 최고 걸작이라고 확신한다. 내 신해철 외사랑은 유별나기로 좀 유명하다. 중학교 때부터 그의 세계를 파고들어가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들어서는 거의 광신도가 되었으며, 대학에 가서는 친구들에게 전도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까 말이다. 오죽하면 내 친구가 “신해철 말고 다른 뮤지션 얘기는 안 하냐?”라고 되물었으니, 내가 얼마나 중증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울었다. 그의 음악을 틀어놓고 꺽꺽대면서 통곡을 했다.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달 전 배철수의 음악캠프 대타 디제이를 한 뒤에 “언제 술 한잔 하자”고 약속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상상해보라. 위의 앨범들에 푹 빠져있었을 때 나는 그냥 철없는 고딩이었다. 신해철을 우상으로 삼으면서 그의 음악을 열심히 파고들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흘러 참 놀랍게도 그와 방송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이게 기적이 아니라면 대체 뭐가 기적이겠나.

 

얼마 전 그의 유작 ‘Cry’가 발표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그가 생전에 게임 음악을 스케치해놓았던 것을 동료 뮤지션들이 합심해 완성한 곡이다. 곡은 과연 웅장하다. 스피드 넘치는 바로크 메탈을 기반으로 화려한 스케일을 오르내리며 듣는 이들을 정신 못차리게 한다. 그가 직접 마무리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그의 신곡을 만날 수 있다는 게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다시, 주문해서 도착한 < 정글 스토리 >를 듣는다. 김세황의 황홀한 기타 연주를 만날 수 있는 ‘Main Theme From Jungle Story Part 1’에서부터 처절하기 이를데 없는 ‘절망에 관하여’와 그가 언제나 시대를 노래한 뮤지션임을 일깨워주는 ‘70년대에 바침’을 거쳐 웅장하게 마무리하는 ‘그저 걷고 있는거지’에 이르기까지, 이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내가 진정 음악을 사랑했던 그 시절, 정확하게는 나의 10대와 20대 즈음 말이다.

 

30대에 접어들고, 음악에 대한 직업을 얻은 대신 어느새 음악에 대한 순수를 잃은 나는, 이런 앨범을 통해 가끔씩 구원 받고, 남몰래 눈물 짓는다. 결국 누구에게나 인생의 음악은 10대와 20대에 들었던 바로 그 음악이 아닐까 싶은 밤. 그래도 신보는 열심히 들어야겠지. 위대한 음악은, 지금도 분명히 어디에선가 써지고 있을 테니까.

Main Theme From Jungle Story Part 1

'신해철'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

영화 '정글 스토리' 스틸컷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청춘을 달리다’ 저자, SNS 냉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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