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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맥주는 술이 아니야

배순탁의 끄적끄적 뮤직

오늘밤 맥주는 술이 아니야

맥주를 좋아한다. 그 목넘김의 쾌감을 사랑한다. 물론 소주를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어복쟁반을 처묵처묵하면서 소주를 안 마시는 건, 어복쟁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날이 서늘해지고 있다. 어복쟁반 때리기 참 좋은 날씨다.

 

여하튼, 맥주에 대해 공부를 하려고 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뻥 안치고, 거의 매일 맥주를 마시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돈 없을 때에는 당연히 한국 맥주에 소주를 타서 마셨다. 맛 따위는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빨리 취하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이랬던 내가 맥주에도 ‘맛’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방송국 작가로 일하면서부터였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피디의 손에 이끌려 맥주 전문집에 갔고, 거기에서 한국 맥주란 것이 얼마나 맛이 없는지를 절절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오해하지 말기를. 나는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는 걸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뜻하는 맛없음은 그러니까, 맛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자고로 한국 맥주는 맛보다는 시원함을 강조해왔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맥주의 주성분인 ‘맥아’의 비율이 지극히 낮다는 거다. 반면 외국 맥주는 맥아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다. 독일의 경우에는 100 퍼센트가 되어야 맥주라고 법으로 정해져 있을 정도다. 이걸 '맥주순수령'이라고 부른다. 맥주 강국으로 유명한 일본 역시 맥아의 비율이 최소 66.7%를 넘어야 맥주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그 밑의 비율을 지닌 건 맥주가 아니라 ‘발포주’라고 부른다.

 

문제는 한국 맥주가 이 발포주보다도 맥아 비율이 낮다는데서 기인한다. 이런 이유로 어느 순간부터 한국 맥주를 멀리하게 되었고, 마치 맥주계의 콜럼버스라도 된 듯 각종 맥주를 찾아 마트의 맥주 코너를 하나씩 섭렵했다. 물론 내가 한국 맥주를 전혀 안 마시는 건 아니다. 적어도 ‘소맥’을 말아 마실 때만큼은 한국 맥주를 선택한다. 말 그대로 맛과 향이 없기에 소주와 최상의 궁합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혹시 향과 맛이 진한 외국 맥주에 소주 타서 먹어봤나? 절대 시도조차 하지 말기를 바란다. 내가 한 번 해봤다가 토하는 줄 알았다. 한국 맥주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얘기.

 

맥주 관련 노래하면 역시 이것이다. 미국 출신으로 그래미상까지 수상한 잭 브라운 밴드(Zac Brown Band)의 ‘Chicken Fried’다. 이 곡은 가사부터가 맥주를 그야말로 부른다. 다음의 노랫말을 먼저 보고 동영상을 감상해보라.

You know I like my a chicken fried/Cold beer on a Friday night

A pair of jeans that fit just right/And the radio up

 

프라이드 치킨 좋아. 금요일 밤에 시원한 맥주 한 잔.

딱 맞는 청바지를 입고, 라디오 볼륨을 높이지.

어떤가. 곧장 전화기를 들고 “여기 치킨 한마리요.” 뭔가 막 들뜬 목소리로 주문하고 싶지 않나. 잭 브라운 밴드는 천조국 밴드니까 나 같으면 보스턴의 명품 라거 ‘사무엘 아담스’를 선택해 치킨과 함께 할 것이다. 치킨에 사무엘 아담스라니,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황홀한 광경이다.

 

한국에서도 맥주 노래가 없지 않다. 일착으로는 쿨의 ‘맥주와 땅콩’이 떠오르고, 키썸의 ‘맥주 두 잔’도 꽤나 알려진 맥주송 중에 하나다. 이 외에도 인터넷에 ‘맥주 노래’라고 치면 의외로 꽤나 많은 가수들이 맥주를 노래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컨트리 밴드 바비빌(Bobbyville)의 ‘맥주는 술이 아니야’는 그 중에서도 내가 최고로 치는 노래다. 성인이 되기 전, 아버지에게 배운 맥주 한 잔을 꽤나 절절하게 노래하는 곡이니, 꼭 한번 찾아서 들어보길 권한다.

 

이런 과정이 나는 참 즐겁다. “맥주가 거기서 거기지 그냥 마셔”라고 일갈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을 하나둘 채워가는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내가 알고 있다"는 바로 그 점이 참 다행스럽다고 느낀다. 내가 요즘 푹 빠져있는 건 각종 밀맥주다. 그 중에서도 ‘헤페(Hefe)’라는 글씨가 써져 있으면 마트에서 무조건 집고 본다. 참고로 ‘헤페’는 맥주 안에 ‘효모’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한결 더 풍성한 과일향과 바디감을 느낄 수 있는 맥주라는 의미.

 

그것이 음악이든, 맥주든, 이런 것들을 하나라도 지니고 있는 인생의 궤적과 하나도 지니고 있지 못하는 인생의 궤적에는 (어쩌면 지금 보기에는 미미한 차이일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큰 차이를 그리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맥주 한잔하러 나는 떠난다. 속칭 ‘편맥’하기에도 참 좋은 저녁이다. 편의점 우습게 보지 마라. 1만원 한장으로 저 유명한 필스너 우르켈을 무려 4캔 살 수 있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청춘을 달리다’ 저자, SNS 냉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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