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 Iver 또 하나의 위대한 앨범
배순탁의 끄적끄적 뮤직
이것은 그러니까, 의심의 여지 없는 걸작이다. 일단 오해하지 말기를. 나는 걸작, 명반, 마스터피스 등의 단어를 함부로 남발하지 않으려 애쓰는 남자다. 기실 위와 같은 최상급들은 글을 쓰는 입장에서 참 편리한 카드다. 굳이 애써 부기(附記)하지 않아도, 글을 읽는 이들에게 직관적으로 가닿는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단어들인 까닭이다. 좋은 비평가는 바로 이 최상급과 싸울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있어야 비로소 괜찮다 싶은 한 문장, 써질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4번째 플레이다. 이 음반에 완전히 매료된 나는 현재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도돌이표 위에서 기분 좋게 방황 중이다. 단적으로 고백하자면,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이 앨범을 꼭 들었으면 한다. 기실 내 원래 계획은 이런 게 아니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앨범 리뷰’라는 것에 어느 정도 염증 비슷한 감정이 생겼기에 가급적이면 피하고 차라리 음악 외의 것을 경유해 음악을 끌어온다는 게 내가 세운 마스터플랜이었다. 그러나 이런 앨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이런 앨범 앞에서 나는, 맨 처음 팝송을 들었던 초등학생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가버리고 만다.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 바로 나 같은 비평가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비평가를 꿈꿨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10대 시절부터 음악 평론을 하겠다며 불꽃 같은 의지로 분연히 일어선 경우는 내 주위를 통틀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를 예로 들자면, 그냥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들었고, 기타 치는 형이 인기가 많은 게 부러워서 교회에서 기타를 좀 깨작거렸다가, 나중에는 밴드도 결성해 합주도 해봤지만, 기타에는 영 소질이 없다는 걸 느끼고는 다시 열심히 음악을 들었을 뿐이다. 음악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은 글쎄, 대학교 1학년이 되어서였던 것 같다.
잡설이 길었다. 내가 지금 홀딱 반한 앨범의 주인공은 본 이베어(Bon Iver)다. 먼저 이름이 왜 이 모양인지 설명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 사람의 이름이 본 이베르인지, 본 이베어인지, 본 아이버인지가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 건 인터넷에 치면 다 나와 있다. 중요한 건, 이 사람이 막 들고 온 3집 < 22, A Million >이 끝내준다는 점이다.
전곡을 다 들을 필요도 없다. 포크 록의 서정과 오토튠의 기계 미학 위에 메아리 같은 여성 배킹 보컬과 혼 연주를 절묘하게 결합한 ‘22 (OVER S∞∞N)’을 시작으로 마치 라디오헤드(Radiohead)나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을 연상케 하는 파괴적인 전자 리듬과 몽롱하게 왜곡시킨 목소리로 격렬한 체험을 전달하는 ‘10 d E A T h b R E a s T ⚄ ⚄’을 지나 오토튠과 샘플러만으로 하나의 세계를 완성한 ‘715 – CRΣΣKS’에 이르렀을 때, 나는 달랑 세 곡을 들었을 뿐인데도 넋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 곡 제목이 괴상하다고? 난수표처럼 보인다고? 그냥 알파벳을 비튼 것일 뿐이니, 걱정은 고이 접어두길 바란다.
비유하자면 본 이베어의 < 22, A Million >은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가 2010년 일궈낸 힙합계의 최신 클래식 <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의 다채로운 프리즘을 통과해 완성해낸 작품이다. 정말이지 압도적인 경이로 가득차 있으며, 그 중에서도 ‘33 “GOD”’나 ‘29 #Strafford APTS’ 같은 곡이 들려주는 세계는 강렬함과 서정미라는, 어쩌면 대극에 위치해있다고 할 수 있을 분위기까지 모조리 껴안으며 듣는 이들에게 황홀경을 던져준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나를 믿고 딱 5번곡까지만 집중해서 들어보라. 나에게 감사의 페북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하겠지만, 답장은 바빠서 장담할 수 없다.)
모두들 음악은 끝장났다고 말한다. 21세기의 대중음악은 이제 다른 문화의 부가물로서만 가치를 지니게 될 거라고 단언한다. 이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다만, 잊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도 그 어디에선가, 위대한 음악은 써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것은 한국 가요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앨범처럼 차트 2위는커녕 차트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대여. 한글로 써진 위대한 음악을 들으며 광화문에 계신 세종대왕님께 시원하게 큰 절 한번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용감하게,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음악 듣기를 두려워 말고, 차트 밖으로 행군하라. 히트곡들 못지 않은 보석 같은 음악들이 당신을 맞이해줄 것이다.
p.s. 본 이베어의 과거 히트곡들 중 대표곡이라 할 만한 노래를 밑에 붙여둔다. 단언컨대,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씨네한수’ 진행자, ‘청춘을 달리다’ 저자, SNS 냉면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