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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이소라, 이별

배순탁의 끄적끄적 뮤직

완연한 가을, 음악 듣기 참 좋은 계절이다. 가을을 대표하는 목소리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팝 음악 쪽에서는 아무래도 스팅(Sting)이 일착으로 떠오를 것이고 , 가요라면 글쎄, 수많은 선택지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이분의 목소리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아무래도 이 곡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 ‘바람이 분다’ 중(中)

그것이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고 가정했을 때, 사람들이 매혹당하는 것은 아무래도 긍정보다는 부정의 정서다. 예를 들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큰 호소력으로 우리를 잡아당긴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바람이 분다’의 정서가 꼭 그렇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라고 노래할 때 이소라가 노래하는 이별은 하나의 예술이 된다. 이 곡이 수록된 음반 < 눈썹달 >(2004)의 첫 곡 ‘Tears’ 역시 마찬가지다. 이별을 견뎌내고 있는 화자가 “동굴 같은 방 먼지 같은 나”라고 스스로를 자학적으로 호명할 때 듣는 이들은 자기 의지가 아니더라도 심쿵할 수밖에는 없다. 과연, 이 두 곡만 보더라도 이소라는 윤종신과 함께 1990년대가 배출한 최고의 작사가다.

가을, 이소라, 이별

가수 이소라, 출처 : mbc '음악여행 라라라'

언뜻 듣기에, 이소라의 음악은 참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이건 그의 음악적인 형식이 (록을 시도한 8집을 제외하면) 대부분 발라드나 그도 아니면 (팝) 재즈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노래말을 세심하게 곱씹어보면, 이소라 음악에서의 화자가 얼마나 ‘처절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바람이 분다’ 역시 마찬가지다. 이 곡에서 이소라는 “곧 누군가 좋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거짓 위로하지 않는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며 내면의 격랑을, 그 엇갈림과 사무침을, 자신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진실만을 고통스럽게 토해낸다 .


그러니까, ‘바람이 분다’의 이별 속에 장밋빛 미래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괴로운 현재만이 도돌이표처럼 중첩되어 쌓여갈 뿐이다. 그야말로 진짜배기 이별인 것이다. 이 와중에 희망 따위 존재할 리 없다 . 이게 바로 내가 이소라 음악을 애정하는 가장 큰 이유다. 헛된 희망 따위 남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요든 팝이든, 이보다 더 시(詩)적으로 써진 이별을 나는 많이 만나지 못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Tears’나 ‘바람이 분다 ’뿐만이 아니라 ‘금지된 분노’(1998) 같은 곡을 들어보면, 이소라의 노래 속 화자들은 고통스러운 현재를 호소할 때에도 그것이 치유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아니, 더 나아가 그들은 적극적으로 그 증상을 ‘향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조금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실상은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사랑과 이별이라는 과정 속에서 우리 모두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기에 차라리 이별 뒤의 증상을 향유하면서 조금이라도 떳떳해지기를 욕망한다. 적시해서 설명하자면 “이별에 있어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결코 내가 아님을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수많은 이별들이 떠오른다. 믿지 못하겠지만 나도 이별이라면 좀 해봤다 . 돌이켜보건대 이별 뒤에는 언제나 술을 마셨고, 그 술을 마시면서 친구들에게 주절주절 떠들어댔고, 그 주절주절의 대부분은 자기 변호에 급급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별에 당당하게 맞설 줄 아는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하긴, 그 누가 처절한 이별 앞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랴.


자전하는 슬픔 속에서 감히 이별과의 전면전(全面戰)을 불사할 줄 아는 이소라의 음악은 이 가을 밤, 더 깊게 내 마음을 울린다.

가을, 이소라, 이별

p.s. 이 글의 일부는 제 책 < 청춘을 달리다 >에서 빌려왔습니다. 더 자세한 얘기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조심스레 추천합니다. 책 더 팔려고 이러는 거 절대 아님. 이미 많이 팔렸어요.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청춘을 달리다’ 저자, SNS 냉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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