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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 대신 냉정, 허성태의 배수진

지난 2011년 직장인이던 허성태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연봉 7000만 원인 직장을 관뒀다. 당시 그의 나이 35세, 누구보다 절실하던 그는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했고 전진했다. 비로소 허성태는 배우가 됐다.

위안 대신 냉정, 허성태의 배수진

사회적으로 남자 나이 35세이면 대부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자신의 경력을 한창 쌓을 시기다. 변화를 위한 뜻밖의 도전은 잠시 접고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게 익숙해질 타이밍. 물론 삶의 무수한 질문지엔 강요는 없고 선택이 모든 걸 좌우한다. 영화 <밀정>, <남한산성>, <범죄도시> 에서 선 굵은 연기를 펼치며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배우 허성태는 7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한다. 당시 SBS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 <기적의 오디션>에 지원한 것. “약간의 취기가 있는 상태로 집에 왔는데 문득 그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어릴 적부터 배우가 꿈이었기에 기대 반, 재미 반으로 지원을 했다. 결코 술에 취해 지원한 건 아니다, 주량은 강한 편이다 (웃음).” 이후 그는 그 프로그램에서 TOP 5까지 진출하며 세미파이널 무대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연기라고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본 것밖에 없는 직장인의 고군분투기는 시청자의 심금을 울렸다. 그리고 그는 배우가 되기 위해 회사에 사표를 냈다.

 

허성태가 배우가 된 이야기는 많은 미디어에 노출된 바 있다. 샐러리맨의 도전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지만 그만큼 또 금세 잊히고 만다. 그래서 이 기사는 자신을 마주하는 ‘냉정한 시각’이란 무엇일까 라는 물음을 전제로 두고 읽으면 좋을 것이다. 허성태라는 인물의 핵심은 마음속 거울을 들여다보는 용기에서 시작한다. 실속 없는 자기 위안은 삶을 길게 봤을 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발로 뛰며 배운 인생 공부

지난 2012년 출연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부터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범죄도시>까지 허성태가 출연한 영화를 본 관객수를 합치면 2000만 명이 넘는다. 정식으로 연기 한 번 배워본 적 없는 그의 활약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당연하다. 이는 허성태의 성격에 기인한다. “유년 시절부터 무언가 시작하면 반드시 끝을 봐야 했다. 예를 들어 학급에서 나랑 안 친한 누군가가 나보다 공부를 잘하면 티를 안 내고 혼자 열심히 공부해 그 친구를 성적으로 이겨야 직성이 풀렸다.” 부산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20대 시절 서울로 올라와 LG전자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대우조선해양 기획조정실로 옮겨 커리어를 쌓았다.

 

돌연 그가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고등학생 때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최민수 선배가 옥상에서 목젖이 크게 흔들릴 만큼 소주를 부어 마신 뒤 하늘에 뿜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 감동을 받아 수없이 혼자 연습했다(웃음). 영화 <해바라기> 역시 계기가 됐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누군가가 해할 때 드러나는 감정선. ‘제발 우리의 행복을 깨뜨리지 마, 어라? 내 사람을 괴롭혔어? 그래, 너희 이제 큰일 났다’ 라며 끓어오르는 감정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삶에 자신감이 붙은 그였지만 32평 아파트의 달콤한 신혼집은 원룸으로 줄었고 생활비를 위해 보험과 적금까지 해약하는 아픔이 수반됐다.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니 자괴감마저 들었다. 다행히 아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그 월급으로 생계를 이었다. 내 선택에 가장 용기를 준 사람이다”라면서 힘들었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서울로 올라온 그는 함께 배우 준비를 하는 연습생들과 함께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그 과정에서 허성태는 오디션 접수 및 관계자 미팅과 같은 프로세스를 배우며 1년을 보냈다. 값진 시간이었다. “현장에 가면 나보다 나이 많은 단역 배우가 정말 많다. 겸손해질 수밖에 없고 열심히 해야할 자극이 된다. 초기엔 단편 영화에 출연을 많이 했다. 예산이 부족하니 김밥과 컵라면만 먹으며 3일 만에 촬영을 마치는 경우가 잦아 밤을 새우는 건 기본이었다. 그러나 일단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을 십분 살려 그 과정을 견뎌냈다. 물론 즐거워서 한 일이다(웃음)”라면서 현재에 몰입해야 하는 마인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위안 대신 냉정, 허성태의 배수진

조급함은 열정이 되어

허성태는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내실을 다져나갔다. 남과 다른 컬러를 띠는 그의 연기는 독학의 힘으로 이뤄졌다. “늦은 나이라 조급했다. 그래서 그 과정을 빨리 깨치고 열정으로 넘어가야 했다. 조급과 열정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가진 위력은 천지차이다. 중요한 건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려는 자세가 조급함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능력을 잘 알지만 ‘내 능력은 훨씬 더 높다’고 자위만해서는 열정으로 나아갈수 없다. 진심으로 자신의 한계를 안다면 그 지점에서 채찍질하며 한 단계씩 높여야 한다. 매번 힘든 과정을 무시한 채 높은 곳에 있을 자신만 상상하면 조급함에 평생 시달린다”라면서 홀로 체득한 열정의 본질을 토로했다.

눈앞의 ‘적’부터 쓰러뜨리자

열정을 가진 이에겐 좋은 인연이 찾아간다. 허성태에게 깊은 도움을 준 건 배우 송강호와 이범수. “잘 보이고 싶어서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아니라 송강호 선배는 내겐 정신적으로 든든한 버팀목이다. 영화 <밀정>을 촬영할 때 상하이에서 두 달 동안 수많은 얘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후에도 작품 시나리오나 고민거리가 있을 때 전화를 하면 ‘내가 바쁜데 나중에 연락 할게’라며 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내 고민을 들어주며 배우 인생의 나침반이 됐다.”

 

이범수 역시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좁은 시야를 확장해 허성태의 조급함을 열정으로 이끌었다. 그는 “언젠가 이범수 선배가 10가지 일을 한 번에 해결하려는 나를 보고 ‘성태야, 인생이란 공터에서 10명의 불량배에게 둘러싸여 한 번에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골목길에서 10명을 만나 한 명씩 차례대로 쓰러뜨리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하면 약 8명까지 때려눕히고 나머지도 이겨낼 수 있다’고 조언해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고 말했다. 허성태의 말마따나 모든 걱정의 대다수는 일어나지 않는다. 눈앞의 일부터 해결하자는 그의 솔루션은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되새김질 할 만하다.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는 현재 1월 말쯤 tvN에서 방영 예정인 드라마 <크로스>와 영화 <창궐>을 촬영 중이다. 게다가 디지털 기기 CF에도 출연하며 그야말로 광고계까지 주목 하는 배우가 됐다. “산을 타는 게 취미인데 얼마 전부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산에 올라가도 알아보는 팬이 늘었다(웃음), 그럴 땐 감사한 마음으로 사인을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삶의 일부분이 이전과는 달라 졌지만 인기는 한때일 것이고 이게 내 연기보다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부수적인 것에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는 요즘 ‘허성태 신드롬’을 담백하게 받아들였다. 2018년, 그의 계획은 무엇일까? “영화 <남한산성>의 이시백과 같은 캐릭터의 배역을 맡아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슈트 CF도 찍어보고 싶은데 대스타들만 출연하는 거라 잘 모르겠다, 하하하.”

 

글 유재기 사진 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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