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그대에게, 중국 쓰촨
선량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웃는다. 복잡하고 이기적인 문명 속에서 ‘현대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이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의 여유와 낭만이 마냥 부럽다. 하나라도 놓칠까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마음속 깊숙이 그들의 순수함을 담는다.
지금 살고 있는 세상과 전혀 다른 곳으로 떠나는 여행. 익숙하지 않은 것을 가까이하고 조금씩 알아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응당 즐거워야 할 여행이 짜증나고 허탈해질 때가 많다. 함박웃음으로 다가오지만 정작 물건 팔기에 급급하거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몇 푼의 돈을 요구할 때가 그렇다. 중국 쓰촨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곳 사람들은 달랐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인의 삶과는 대조적으로 푸른 하늘과 초원, 하늘, 호수, 바람 등을 벗 삼아 대륙의 품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낯선 여행자를 진심으로 반기고 걱정하고 앞날을 축복한 다. 덕분에 중국 쓰촨에서 보낸 시간은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여행이 되었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뤄부자이
(좌) 장삿속 없는 순박한 상인 덕분에 더욱 탐스러워 보였던 과일 (우) 황허주취디이완에서 랑무쓰로 향하는 길에 만난 소수민족 여인 |
아슬아슬한 비탈길을 따라 올라간 창족(羌族·강 족) 마을 뤄부자이(蘿蔔寨·라복채)는 순수한 사람들의 모습에 매료당하기 충분한 곳이다. 해발 1900m, 차가 없다면 올라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 높이에 떡하니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오르는 내내 아찔하게 펼쳐지는 풍경에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한번 마을에 오르면 평생 내려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무슨 재미로 살까’ 싶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그게 속 편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든다. 삶의 희로애락이 꼭 문명과 이어져야 할까. 그 속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으면 그만인 것을.
창족 사람들은 아주 밝다. 여행자 한 명 한 명의 손목에 환영한다는 의미로 붉은 끈을 묶어주고 피리로 흥을 돋우며, 날카로운 총성으로 인사한다. 골목마다 낯선 이방인을 반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가 그렇듯 그들도 우리가 신기한 모양이다. 온화한 미소와 손짓 발짓으로 하는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는 친절함, 창족 사람들은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을 대한다. 흥겨운 놀이 한판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처음 접하는 춤과 노래 지만 차근차근 따라 하니 어깨춤이 절로 난다. 땀 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릴 정도로 신명나게 놀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모두 함께 즐길 수 있었던 시간. 짧지만 우리는 따뜻함을 나눴다.
대초원은 멈추지 않는다
(좌) 황허를 끼고 펼쳐지는 평야를 사람들은 말을 타고 달린다 (우) 초록빛 들판 위로 보랏빛과 노란빛 야생화가 피어 있는 황허주취디이완 |
“애당초 차마고도를 따라가는 여행은 ‘느림’과 ‘불 편함’을 경험하는 일이다. 차마고도에서 너무 늦게 가는 것을 탓한다면, 차마고도를 따라갈 이유가 없다. 서울에서 출근하듯 여행하기를 바라는가.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인생은 충분히 짧다. 마땅치 않은 숙소를 탓하거나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탓해 서도 안 된다. 본래 여행이란 제 입맛대로 굴러가기가 어려운 법이다. 다른 건 몰라도 차마고도에서 나는 느림과 불편과 덜컹거림과 숨참을 즐긴 것만큼은 확실하다.”
<티베트, 차마고도(茶马古道)를 따라가다>라는 책을 펴낸 이용한은 책 속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중국 쓰촨 여행 역시 이와 같은 느낌이었다. 뤄부자이를 지나 홍위안(紅原·홍원), 황허주취디이완(黃 河九曲第一灣·황하구곡제일만), 랑무쓰(郎木寺· 랑목사), 그리고 화후(花湖·화호)로 이어지는 길은 실로 대장정이다. 3~4시간은 기본, 때로는 6시간을 내리 달려야 마을다운 마을이 등장한다. 끝없이 펼쳐진 자연을 가로지르는 건 오직 한길로 뻗어 있는 도로뿐. 버스는 푸른 하늘과 구름을 따라, 그리고 바람을 따라 달린다. 느닷없는 고산병으로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속은 메슥거렸다. 버스가 출발한 이상 전진은 있되 후진은 없는 상황. 아프더라도 참아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이 고산병의 고단함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힘차게 달리던 버스도 비경 앞에서는 숨을 고르고 멈춰 서니 여행자의 눈은 즐겁기만 하다.
랑무쓰 천장대를 말을 타고 오르는 소수민족 여인 |
뉘엿뉘엿 지는 일몰이 아름다운 홍위안에서 쉬어 감은 당연한 일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풍경. 햇살이 사라지는 시각, 빛과 자연의 조화가 환상적인 일몰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람들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누가 찍어도 멋진 작품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홍위안의 일몰이 아름 다웠다면 황허주취디이완과 화후는 초록빛 초원이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을 타고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린 야생화들. 초록빛 들판 위로 보랏빛과 노란빛으로 움직이는 꽃들은 황허주취디이완을 오르는 사람들을 웃음 짓게 만든다.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한 화후 역시 푸른 풀내음이 코를 간질인다.
놀랍고 흥미로운 소수민족의 문화
(좌)독특한 장례 의식이 펼쳐지는 랑무쓰 천장대 (우)이곳 사람들은 시신을 독수리가 먹으면 승천한다고 굳게 믿는다 |
중국 쓰촨성과 간쑤성의 경계, 해발 3600m 고지 대에 위치한 랑무쓰에 도착했다. 랑무쓰는 티베트의 라마교를 신봉하는 사원으로 운이 좋으면 독수 리가 시신을 먹도록 하는 장례 의식인 천장(조장)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천장대로 향하는데,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천장을 직접 보진 못했다. 하지만 그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썩어가는 사람 손가락은 물론 치아, 두개골, 갈비뼈 등이 뒹굴고, 바람을 타고 시체 썩는 냄새가 코끝을 진동한다. 천장대의 머릿돌에는 붉은 피가 선명하고, 뼈를 잘게 부수는 데 사용했을 도끼와 망치가 아무렇지 않은 듯 버려져 있다. 우리 문화와 비교하면 한없이 잔인 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장례 문화이지만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곳 소수민족에게 성스러운 존재인 독수리에게 더 이상 쓸모없는 육신을 바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까.
창족과 짱족(藏族·장족)의 결혼문화 또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상에서 쉽게 닿을 수 없는, 즉 대문이 없는 가옥 2층에서 생활하는 창족 처녀들은 남자가 힘을 길러 벽을 타고 2층 방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합방이 가능하다. 또한 짱족 사회에서는 한 여자가 한집안의 남자들과 모두 결혼할 수 있다. 가령, 삼형제가 있다면 첫해는 큰아들과 결혼하고, 해가 바뀌면 둘째 아들, 다음엔 셋째 아들과 짝을 바꿔 생활한다. 이 얼마나 놀랍고 흥미로운 결혼 풍습인가.
여행을 하며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은 나를 깨뜨리는 작업이다. 중국 소수민족의 장례나 결혼 문화는 특히 신앙과 생활 방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므로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따져보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은 곧 문화를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 과정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주자이거우, 푸른 호수와 마주하다
주자이거우에서 수행 중인 어린 승려 |
“황산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을 보지 않고, 주자이거 우의 물을 보고 나면 다른 물은 보지 않는다.” 예로 부터 중국인은 황산(黃山)과 주자이거우(九寨溝· 구채구)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영화 마니아라면 장예모 감독의 영화 <영웅>을 떠올려도 좋다. 이연걸과 양조위가 호수 위에서 결투를 벌이던 장소가 바로 이곳! 그토록 보고 싶었던 주자이 거우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순간이다.
눈부시게 푸르고 아름다운 물빛에 빠져드는 주자이거우 |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주자이거우는 중국 쓰촨성 북부 산간지대의 거대한 협곡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기 다른 풍경으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9개 짱족 마을이 모여 있어 주자이거우라 불리는데, 중국에서 가장 폭이 넓은 러르랑(落日郞·낙일랑) 폭포를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창하이(長海·장해)와 우차이츠(五彩 池·오채지), 오른쪽으로는 우화하이(五花海·오화 해)와 전주탄(珍珠灘·진주탄) 폭포, 아래로는 수정자이(樹正寨·수정채)가 펼쳐진다. 투명하지만 이상하리만치 파랗다. 누군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푸른 물빛은 눈이 부시도록 오묘하고 신비롭다. 보고도 믿기지 않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볼 정도. 가능하다면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계를 풀어버 리고 천천히 걷고 싶다. 하루가 걸리든 이틀이 걸리든 아무렴 어떠랴. 푸른 물빛에 취하면 세상 근심 따윈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노란 용이 계곡을 타고 승천하는 모습 같다는 카르스트 지형의 황룽 |
해발 3500m, 노란 용이 계곡을 타고 승천하는 모습 같다는 황룽(黃龍·황룡) 역시 굽이굽이 흐르는 물줄기가 주자이거우 못지않은 풍경이다. 석회질이 침전된 강바닥에 물이 고여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연못인데, 어디서 그런 옥색 빛깔이 뿜어져 올라오는지 참으로 놀랍다. 넋을 놓고 바라보다 결국 황룽 정상에 위치한 우차이츠를 포기해야 했다. 시간이 부족해 중턱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 아쉽지만 고이 남겨둔다. 하나쯤 볼거리를 남기고 가야 다시 돌아올 구실도 생기니까.
좌)주자이거우에서 만난 전통 의상의 소녀 (우)주자이거우의 짱족 마을 중 가장 규모가 큰 수정자이 마을 |
여행자는 늘 세상의 신비로움을 찾아, 독특함을 찾아, 문명 너머의 고요한 세상을 두드리고 현지인의 삶을 엿보려 한다. 우리가 느끼는 특별함, 그것은 인위적이고 과장된 아름다움이 아닌 그들의 평화 롭고 순박한 삶이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들의 빠른 변화를 멈추게 만들고 싶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 우리의 짧은 방문이 자칫 그들의 평범한 일상에 변화를 주진 않았는지 조심스러운 마음을 품으며 간절히 바라본다. 먼 훗날 이곳을 다시 찾을 때에도 지금의 때 묻지 않은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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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