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저장한 세상에 이런 '맛'
당신의 여행을 더욱 즐겁게 만든 음식이 있나요?
여행 중 발견한 내 인생 최고의 음식, 그 맛에 대하여.
프라하 : 굴라시와 흑맥주
권일억은 중학교 도덕교사로 트레킹을 즐긴다. 네팔 히말라야, 아이슬란드 라우가베구르 트레킹 등 여러 트레일을 걸으며 삶의 소중한 순간을 기억한다. |
체코 프라하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구시가지도 매력적이지만 내가 반한 건 특히 음식과 맥주였다. 프라하에는 유명한 레스토랑이 여럿 있는데, 그중 우 플레쿠(U fleku)를 매우 좋아한다. 2015년에 이어 2019년에도 그곳을 방문했다. 이곳의 매력은 단연 분위기.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에 사람들이 늘 신나 있다. 아코디언을 부는 악사의 연주는 분위기를 더욱 좋게 만든다. 체코 전통 음식 굴라시와 흑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굴라시는 빵과 곁들여 먹는 소고기 스튜로 부드러운 소스에 담백한 소고기의 조화가 훌륭하다. 우 플레쿠에서 직접 양조한 흑맥주는 약하면서도 쓰고, 조금은 달달하며, 마시고 나면 개운하다. 오직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 우 플레쿠의 분위기, 음식, 특별한 맥주는 종종 체코를 그립게 한다.
로마 : 에스프레소
신정은은 책을 만드는 편집자로 매일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기획안과 씨름한다. 야근과 주말 근무에 대한 보상은 늘 여행, 어디론가 떠나야 숨이 트인다. |
평소 에스프레소를 ‘사약’ 취급하며 살아온 1인이다. 회사에서는 달달한 믹스 커피를, 카페에서는 카페라테나 카페모카처럼 커피 본연의 맛과는 거리가 있는 메뉴를 선택하곤 했다. 그런데, 이탈리아 로마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한 잔이 나의 확고했던 커피 취향을 바꿀 줄이야. 사실 홧김에 주문한 메뉴였다. 이탈리아는 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느냐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못할 바엔 그 어떤 커피라도 상관없다는 ‘웃픈’ 생각에서다. 손가락도 잘 들어가지 않는 귀가 달린 작은 잔을 조심스레 들어 눈을 질끈 감고 후루룩 마셨다. 코끝으로 퍼지는 그윽한 향기, 혀끝으로 퍼지는 묵직한 맛. 아, 이것이 진정 커피란 말인가! 사약처럼 여겨졌던 에스프레소는 마약이 되어 여행 내내 나를 에스프레소 찬양론자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여행의 시작은 무조건 에스프레소 한 잔부터!
가오슝 : 장어덮밥
기여옥은 여행과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그때그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해피리안’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시작했고, 아직 1년이 되지 않은 새내기다. |
그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인생’ 장어덮밥을 만난 곳은 타이완 남부의 최대 도시 가오슝이다. 얼마 전 수능이라는 대장정을 마무리한 남동생과 함께 떠난 첫 여행! 처음엔 타이완 음식에 적응하느라 고생을 좀 했다. 타이완 음식 특유의 생강 향이 진하게 올라와 도저히 먹기 힘든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현지인 친구가 추천한 춘수이탕(春水堂)은 달랐다. 우리나라 여행객에게도 꽤 알려진 춘수이 탕은 버블 밀크티로 유명하지만 정통 타이완 음식까지 맛볼 수 있어 현지인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그리고 내 기억 속의 춘수이탕은 두말할 필요 없는 장어덮밥 맛집이다. 살짝 구운 장어에 달달한 칠리소스를 골고루 발라 비릿한 냄새를 없애고, 생강을 살짝 올려 매콤함을 살려내다니! 이렇게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목포 : 홍어삼합
문수비는 서울에서 ‘달여사요리’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따뜻한 봄에는 냉이와 달래, 쑥 등 봄나물을 이용한 한식 요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
육아에 지친 엄마들끼리 ‘하루 외박’이라는 황홀한 자유권을 얻어 목포행 기차에 올라탔다. 식도락의 천국, 미식의 도시, 목포 하면 역시 음식 아닌가. 우리의 먹방 투어는 끝날 줄 몰랐으니! 마치 몇 끼를 굶은 사람처럼 맛있다고 소문난 맛집을 도장깨기하듯 정복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남도음식명가 목포음식명인 제1호로 지정된 ‘인동주마을’이다. 홍어삼합을 비롯해 짭조름한 간장게장, 제철 식재료로 만든 반찬, 된장국 등이 한 상 푸짐하게 나오고, 음식 하나하나에 정성이 느껴진다. 특히 인동초를 숙성해서 만든 인동초 막걸리는 술이 아니라 달큼한 약이었던 걸로!
스페인 : 파에야
안이슬은 매일매일 신랑에게 불시착하고픈 새댁이다. 결혼한 지 이제 1년, 경기도와 경상도에서 각각 직장생활을 하느라 주말마다 SRT를 타고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
결혼 1주년을 기념해 떠난 7박 9일의 스페인 여행. 음식이 죄다 느끼하고 짭짤해 실망하던 차에 ‘유일한 희망’으로 떠오른 메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스페인 전통 쌀요리 파에야였다. 스페인의 작고 아담한 도시 론다에 방문했을 때에는 파에야가 너무나 먹고 싶어 여행 가이드가 강력 추천한 소꼬리 음식마저 미련 없이 포기했을 정도. 폭풍 검색 끝에 찾아간 곳은 푸에르타 그란데(Puerta Grande)라는 레스토랑으로 역시나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해산물이 듬뿍 든 먹물 파에야의 은혜로운 자태에 두 눈이 휘둥그레, 광대 절로 승천, 먹는 내내 엄지 척! 이제 우리에게 론다는 소싸움으로 유명한 도시가 아닌 파에 야가 맛있는 도시로 각인되어 있다.
충주 : 된장찌개 백반
박동현은 웹툰작가 토박으로 레진코믹스에서 ‘지금은 가난중’을 연재했다. 동물과 캠핑, 자전거를 좋아하고, 세상을 부유하며 창작하는 디지털 노마드를 꿈꾼다 |
하던 일에 크게 좌절해 무기력하게 지내던 어느 여름, 작은 성취감이라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인천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국토종주여행을 떠났다. 자전거를 타고 하루 몇 km씩 달리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았고, 식당을 찾지 못해 굶는 경우도 허다했다. 충북 충주 수안보를 지날 때다. 컵라면으로 끼니나 때울 겸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나의 도전을 격려하던 편의점 직원이 단골 백반집을 소개했다. 늦게나마 먹게 된 점심식사. 메뉴는 흔한 된장찌개였지만 웬만한 일품요리 부럽지 않은 최고의 맛! 허겁지겁 반찬을 입으로 쓸어넣는 내게 주인아주머니께서 공깃밥을 하나 더 서비스로 주셨다. 물론 그것도 남김없이 다 쓸어버렸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앞으로 내디딜 힘을 얻었던 순간. 어찌 보면 대단한 친절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가끔 그때의 여행을 회상하면 구수한 된장찌개와 공깃밥 1+1이 가장 먼저 스친다.
타이베이 : 곱창국수
문상아는 부산 기장에서 레스토랑 ‘리바타’를 7년째 운영 중이다. 요리가 일상, 전국 방방곡곡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맛집블로거 ‘문콩’으로도 활동한다. |
타이완 타이베이 시먼딩에서 곱창국수 맛집으로 소문난 아종멘센(阿宗 麵線)을 찾아가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워낙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지 않았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맛’이 기다리고 있더라.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북적, 국숫집 앞에 다들 서서 한 손에 곱창국수를 들고 호로록 호로록 소리를 내며 먹는다. 친구와 나도 스탠딩 먹방 시작! 간단히 먹을 생각으로 소짜를 주문했는 데, 양도 많고 곱창도 듬뿍 들었다. 걸쭉한 국물에 부드럽게 씹히는 면발, 누린내 ‘1’도 없는 큼지막한 곱창까지 잘 어우러진다. 왜 하필 여행 마지막날 그곳에 갔던 걸까? 타이완 여행하시는 분들, 두 번 드세요! 아니, 세 번드세요!
카자흐스탄 : 샤슬릭
김정흠은 일상처럼 여행하고, 여행하듯 일상을 살아가는 여행작가. 길에 흩뿌려진 이야기를 수집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취미로 삼다가 벌써 몇 년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세상 모든 음식에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다. |
샤슬릭을 처음 먹어본 것은 러시아 여행 때였다. 중앙아시아에서 널리 즐긴다는 샤슬릭은 비주얼만으로도 나를 자극했다. 그러나 첫 샤슬릭은 실패. 겉은 타버렸고, 속은 퍽퍽했다. 아쉬웠다. 언젠간 제대로 된 샤슬릭을 맛보리라. 일 년 후, 카자흐스탄의 한 시골에서 두 번째 기회를 만났다. 식당 입구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위구르족 아저씨에게 양고기 샤슬릭이냐고 물은 뒤, 주저 없이 주문했다. 다른 요리도 시켰지만 그저 곁들이기 위함이었을 뿐. 이윽고 쇠꼬챙이에 꽂힌 양고기 덩어리들이 등장했다. 한 입 베어 물자 입 안 가득 육즙이 스몄고, 고소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세상에, 이건 인생 최고의 양고기야! 나는 샤슬릭을 먹는 내내 몇 번이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시원한 맥주도 이 영롱한 순간을 함께했다.
보라카이 : 레촌
박애진은 여름과 바다를 사랑하는 여행작가다. 열아홉 살, 호주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조금 일찍 여행에 눈을 떴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부지런히 배낭을 꾸린다. |
레촌은 새끼돼지를 통으로 구운 필리핀의 전통 바비큐 요리다. 축제나 특별한 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대부분의 만남이 그렇듯 레촌 역시 첫 소개팅이 중요하다. 잘못 요리하면 돼지 특유의 잡내가 많이 나고 느끼하기 때문. 나 역시 보라카이에 사는 지인이 ‘찐’을 맛보여주기 전까지 맛없는 음식이라 오해하고 있었다. 10시간 이상 장작불에 돌려 구운 진짜 레촌은 기름기가 쫙 빠져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육즙 가득 촉촉한 맛이 일품이다. 새콤한 깔라만시를 짜서 넣은 간장에 매운 고추까지 잘라 섞으면 특제 소스가 완성된다. 갈릭 라이스와도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레촌을 더 맛있게 먹는 나만의 레시피는 바로 초장을 곁들이는 것! 돼지고기와 초장이라니, 의외의 조합이지만 맛보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산미구엘 맥주가 술술 들어가는 건 안 비밀!
푼힐 : 오렌지주스
김정원은 여행과 사진, 글, 맥주, 그리고 보라색을 사랑한다. 어디라도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100% 보헤미안 감성의 프로여행러! |
배낭여행 한 달째, 인도에서 네팔로 이동하던 중 배탈이 났다. 범인은 분명 길거리에서 팔던 석류주스다. 네팔 포카라에 도착하자마자 계속되는 구토와 설사로 어쩔 수 없이 여행을 멈추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며칠을 보냈다. 그런데, 몸이 근질근질하다. 빨리 떠나고 싶다. 결국 아픈 몸을 이끌고 3박 4일 트레킹을 강행하는 의지의 1인! 해발 3200m의 푼힐 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은 ‘험난’ 그 자체였다. 심지어 속이 좋지 않아 감자와 콜라로 버텼더니 ‘자동 다이어트’가 따로 없다. 겨우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작은 온천마을에 들렀다.
오렌지 나무 아래 뜨끈한 야외온천탕에 들어가 주스를 한 잔주문했는데, 웬걸? 메뉴에 없단다. 이렇게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데 주스가 없다고? 그러자 주문을 받던 사내가 쏜살같이 나무 위로 올라가 큼지막한 오렌지를 따더니 즉석에서 갓 짜 내놓았다. 달콤상큼한 맛이 입 안에서 마구 터진다. 이것이야말로 100% 레알 순수 오우뤤지주스! 멀찍이 달아났던 입맛은 다시 살아났고, 다이어트 역시 끝이 났다.
보성 : 꼬막정식
이서정은 글쟁이다. 가끔은 연예인을 인터뷰하고, 가끔은 문화 관련 글을 쓰고, 가끔은 다큐멘터리 방송을 구상한다. 브랜드 컨설팅 및스토리텔링 자문까지, 뭐든 도전한다. |
전남 보성에 머물며 녹차만 실컷 마실줄 알았더니 웬걸, 맛집도 꽤 많다. 지역민을 붙들고 보성 곳곳의 맛나다는 곳을 찾아다닌 끝에 발견한 나의 ‘원픽’은 읍내에 위치한 수복식당의 꼬막 정식. 꼬막찜, 꼬막부침, 꼬막튀김을 비롯해 각종 해산물과 향토음식 10여 가지가 한 상 가득 나온다.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운이 좋은 날은 그 귀하다는 ‘참꼬막’도 맛볼 수 있다. 꼬막까기용 특수 가위로 껍데기 뒷부분을 탁탁 쳐서 벌릴 때에는 손맛도 기가 막히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마다 그 손맛에 까르륵 웃음이 터져나온다. 꼬막을 삶는 법에도 요령이 있겠지만 삶은 듯 안 삶은 듯 그 경계에서 터지는 육즙은 가히 일품. 이 집을 최고로 꼽는 또 다른 이유는 전라남도 향토음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는 것. 갓김치를 비롯해 각종 나물과 찌개 등 제대로 집밥 맛을 낸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꼭 맛을 봐야 한다던 간장새우는 안 먹었으면 어쩔 뻔. 덕분에 ‘보성앓이’는 지금도 진행 중.
플젠 : 스비치코바
신지영은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반 동안 실컷 여행과 휴식을 즐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행이 좋다. 현재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생활 중이며, 늘 어디로 떠날지 궁리한다. |
체코 플젠에서 발견한 레스토랑 우 살츠만(U Salzmannu˚). 솔직히 얻어걸렸다는 표현이 맞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영업을 하지 않아 문을 연 곳을 겨우 찾아 들어갔는데, 그곳이 바로 383년 역사를 지닌 플젠 최고의 레스토랑이었던 것. 얼떨결에 대박을 친 셈이다. 체코인들이 가정식으로 즐겨 먹는 스비치코바와 베이비립, 필스너 우르켈은 정말이지 최고의 조합. 특히 소고기 안심과 빵, 생크림 등을 곁들여 먹는 스비치코바의 소스는 예술 그 이상이었다. 정말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을 정도! 베이비립 또한 입에서 사르르 녹아내렸으니 가히 인생 맛집으로 불릴 만하다.
후아힌 : 찜쭘
최민기는 여행 마케터로 북유럽을 담당하고 있다. 인생은 여행이라는 모토로 늘 아내와 두 아이 호야와 두리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다. |
태국 왕실의 휴양지로 불리는 후아힌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후아힌의 맛집 부자는 반 쿤퍼(Baan Khun Por) 로컬 푸드 코트.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현지인은 물론 여행객에게도 필수 코스다. 테이블 위로 돼지고기 꼬치구이 무삥, 돼지 등뼈탕 렝쌥 등 주문한 태국 요리가 속속 올라온다. 그중 맛도 비주얼도 정점을 찍은 건 태국식 샤부샤부 요리 ‘찜쭘’. 숯불 화로 위에 황토 빛깔 도기 그릇을 올리고 펄펄 끓는 육수에 채소와 고기, 해산물 등을 넣고 푹 익혀 먹는데, 얼큰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고기와 해산물을 날달걀에 버무려 육수에 넣는 것도 찜쭘만의 매력. 맥주가 한 잔, 또 한 잔, 실로 술을 부르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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