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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살려고 먹고, 죽어선 가는길 대접하는 음식. 육개장

전국 식당에서 가장 많이 틀리는 이름은 육개장. 왜 자꾸 틀리냐면 가운데 글자를 ‘계’로 쓰기 때문이다. 육개장은 한자와 한글의 조합이다. 육개장(肉개醬)이다.


질겁하지 마시라. 육개장은 사실 개장에서 나온 이름이다. 보신탕의 또다른 이름인 개장국에 개 대신 소고기를 넣고 끓였대서 생겨난 이름이다.(제주도를 제외한 우리나라에선 그저 육이라 하면 소고기를 뜻한다.)


여름과 겨울날, 폭염에 몸이 허하고 혹한에 으슬할 때 이를 견뎌내기 위한 보신용으로 챙겨먹는다. 고기와 나물을 넣고 들들 끓인 매콤한 고깃국에 밥 한 그릇을 말면 왠지 허약한 몸이 대번에 살아날 듯 하다. 영양학적으로도 거뜬하다.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 역시 육개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살아남기 위해 먹는 음식이다. 반면 아이러니 하게도 죽은 자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음식이다. 장례식장 조문객을 대접할 때 대부분의 경우, 육개장을 차린다.


국내에선 매운 음식을 즐기는 대구 지방의 별미로 그 유래가 알려졌고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국’요리으로 세계에 퍼져나간 것이 바로 육개장이다.(최초로 라면화 된 국이기도 하다) 얼큰하니 맛좋고 든든한 육개장집을 묶어서 소개한다.

서울 주교동 ‘우래옥’

살아 살려고 먹고, 죽어선 가는길 대

우래옥 ‘육개장’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70년 전통을 우직하게 지켜낸 서울 최고의 냉면집으로 꼽힌다. 한우 양지와 사태살을 고아 낸 진한 육수에 메밀향을 가득 품은 면발. 냉면 좀 먹어봤다 하는 사람들에겐 냉면의 성지로 불리는 바로 우래옥이다. 사실 이 집은 냉면의 유명세에 가려서 그렇지 불고기를 비롯해 장국밥, 육개장, 갈비탕까지 모두 하나같이 맛있다. 맛도 맛이지만 좋은 식재료를 쓰는 집이다. 한우 만 쓴다. 밑반찬은 물론 마늘과 고춧가루 등 갖은 양념까지 모두 국내산을 고집한다. 이 집 육개장도 그렇다. 진한 사골육수에 한우 양짓살을 찢어놓고 대파, 고사리, 토란대, 당면 등을 가득 넣고 끓여낸다. 진하고 묵직한 맛이 느껴지는 그야말로 명품 육개장이다. 매워 보이는 벌건 국물은 보기와 달리 순하고 부드럽다. 결대로 찢어지는 부드러운 양짓살과 대파, 토란대, 고사리 등이 풍성한 식감과 풍미를 펼쳐낸다. 하얀 쌀밥을 말아 깍두기를 얹어 먹는 육개장 맛은 그야말로 꿀맛. 여름 보양식이 따로 없다.

  1. 가격=육개장 1만2000원, 장국밥 1만1000원, 갈비탕 1만4000원

서울 마포구 망원동 ‘육장’

살아 살려고 먹고, 죽어선 가는길 대

육장 ‘육개장’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서울의 핫 플레이스 망원동에 자리한 육개장 전문식당이다. 맛집이 몰려있는 망리단길에서 벗어나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했다.

살아 살려고 먹고, 죽어선 가는길 대

서울 마포구 망원동 ‘육장’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1층 가게는 외부와 내부를 모두 나무 판재로 둘렀다. 일본 식당에 들어선 느낌이다. 정갈하게 정돈된 실내는 바 형태의 테이블과 한쪽에 4인용 좌식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즉석’ 육개장이다. 냄비에 양지 육수를 붓고 느타리버섯과 양파, 대파, 숙주나물 등 각종 채소와 함께 미리 삶아 먹기 좋게 찢어놓은 양지를 올려 한소끔 끓여낸다. 라면같은 속성 조리법에 ‘깊은 맛이 과연 날까?’ 우려도 잠시, 진하고 칼칼한 국물맛은 그야말로 반전이다.

살아 살려고 먹고, 죽어선 가는길 대

서울 마포구 망원동 ‘육장’ 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아삭아삭 씹히는 숙주나물이 맛을 돋운다. 여느 집에서 느껴보지 못한 이채로운 식감이다. 혀에 착 감기는 국물 맛의 비밀은 육수와 특제소스다. 이 집은 사골육수 대신 양지 육수를 쓴다. 외할머니로부터 3대째 전해오는 비밀 특제소스가 더해진다. 특제소스는 고춧가루와 생강, 마늘 등을 소기름에 넣고 볶은 후 일정기간 숙성을 시켜 만든다.


양지육수가 감칠맛을, 특제소스가 깊고 진한 맛을 책임진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하나 둘씩 몰리는 손님들로 금세 만석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온 중년 여성부터 회사원과 혼밥러까지 찾는 손님들도 다양하다. 오가는 대화를 듣자하니 대부분이 단골이다. 식당은 동네 사랑방 분위기로 왠지 정겹다. 이 집은 육개장을 말고도 양지대신 갈비를 넣어 끓인 육갈탕과 밥 대신 라면사리를 넣은 육라면도 별미다.

  1. 가격=육개장 8000원, 육갈탕 1만2000원.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을지육개장

살아 살려고 먹고, 죽어선 가는길 대

을지육개장.

이름은 ‘을지’인데 본점 위치는 봉천동이다. 깔끔한 인테리어라 언뜻 생긴지 얼마안되는 집 같지만 장소는 옮긴 대신 대를 이어 경영하는 맛집이다. 12시가 안됐는데 벌써 인파로 북적인다. 이 폭염 속에 뜨거운 육개장 한 뚝배기로 속을 채우러 온 회사원 들이다.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는 뜨끈한 육개장이 나온다. 버섯과 대파, 당면, 무, 찢은 양지살이 뚝배기 안을 그득 채운 것이 일단 척 보기에도 푸짐하다.


당면부터 먹어야 하지만(그래서 ‘당면과제’라 하는걸까?) 국물부터 떠먹었다. 한 두 숟가락에도 다양한 맛이 느껴진다. 화끈한 매운 맛으로 포장을 두른 진한 국물, 그리고 잔 맛은 시원하다. 누구나 한국인이면 원하던 맛이며 ‘어른들의 국물’이다.


밥을 말아 다시 먹었다. 밥에는 수분이 많지만 워낙 국물이 진해 싱거워지지 않는다. 단단한 국물에 졸깃한 건건이가 넉넉히 들어 씹는 맛이 좋다. 밥 한공기와 국물의 균형이 좋아 마지막 한 방울과 밥풀 하나까지 싹싹 비우게 만든다. 야들야들 잘 삶아낸 보쌈도 있고, 육개장과 보쌈을 몇 점 내주는 정식도 있다.

  1. 가격=육개장 7000원, 육개장 정식 1만원, 육우동 7000원(오후 1시 이후부터 판매)

대구 중구 달성공원로 옛집식당

살아 살려고 먹고, 죽어선 가는길 대

대구 옛날집.

그야말로 옛날식이다. 음식 맛은 물론이며 가게 건물이며 심지어 이름도 그렇다. 대구 달성공원 사거리 인근 옛집식당에선 정갈하면서도 근사한 육개장을 맛볼 수 있다. 이름처럼 단아한 고가 기왓집 상에 앉아 자개농을 벗삼아 기다리노라면 진짜 ‘손님’이 된 듯하여 황송할 따름이다.


질그릇에 담은 육개장 한 사발. 양지가 아닌 사태를 써서 고기가 부드럽다. 붉지만 그리 맵지않은 국물, 그리고 국물에 녹아 시원함과 단맛을 더하는 대파 등. 김을 모락모락 내며 목으로 흘러들어가는 육개장 국물에 한여름의 고단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옛집식당은 들어가는 길부터 예사롭지 않다. 골목 안을 헤집으면 오랜 한옥집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제대로 된’ 육개장을 만날 수 있다. 주문을 따로 할 필요없다. 70여년 째 단일메뉴다.

  1. 가격=육개장 8000원.

서울 중구 다동 부민옥

살아 살려고 먹고, 죽어선 가는길 대

부민옥 육개장

서울에서 60년 이상 영업해왔지만 기본이 경상도식이다보니 육개장을 제대로 끓여내는 맛집으로 알려졌다. 보기보단 맵지않고 시원한 국물을 낸다. 양지 살코기를 삶아 국물을 우려낸 다음 일일이 찢어 얹어 낸다. 고기가 수북해 꽤 육향이 진할 듯 하지만 대파를 뭉텅 썰어 충분히 끓이고 콩나물까지 더하니 시원한 맛으로 변한다.


폭염의 나날 속 냉한 커피로 오전 내내 채웠다면, 뜨끈한 점심 한끼로 균형을 잡기에 안성맞춤이다. 국물도 넉넉하게 잡아주니 먼저 한모금 주욱 들이켜며 매콤시원한 국물을 즐기다, 나중에 밥을 말아 허한 속을 달래기에 좋다. 보기에도 실한 깍두기를 하나씩 얹어 먹으면 단맛을 보강한다.

  1. 육개장=9000원.

글·사진=스포츠서울 이우석 식도락전문기자·황철훈기자 color@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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