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불거진 병역특혜 논란, 28년된 특례기준의 변화가 필요하다
아시안게임 야구 슈퍼라운드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지난달 3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켈로라 붕 카르노(GBK) 야구장에서 열렸다. 박해민, 임찬규, 오지환(왼쪽부터)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병역특례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병역법 시행령 제68조11에 따르면 ‘올림픽에서 3위 이내 입상자’와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만이 체육요원 병역특례 대상자가 될 수 있다. 병역특례 대상자는 군입대 대신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만 받고 해당 분야에서 2년 10개월간 봉사활동을 하게 되면서 사실상 병역면제 혜택을 받아왔다. 체육요원 병역특례와 관련된 논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과 같이 국제종합대회가 열릴때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병역혜택 논란이 있었다.
28년째 바뀌지 않은 병역특례 관련법, 이젠 손 볼때도 됐다
병역특례의 기준은 그동안 몇차례 변화가 있었다. 처음 법제화가 된 것은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던 1973년 3월이다. 스포츠를 통해 국위선양하는 선수들이 해당분야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로 제정이 됐다. 처음 법이 시행될때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은 물론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유니버시아드까지 각종 국제대회에서 3위 안에 입상을 하면 병역혜택을 받았다. 체육요원 병역특례 관련된 법은 사실상 28년째 변화가 없다. 현재 병역특례 기준이 적용된 것은 1990년 4월이다. 이전에 광범위했던 특례 기준을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에게만 한정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2002한일월드컵 4강 진출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진출로 인해 한시적으로 두 대회가 특례 기준에 포함되기도 했지만 2008년 1월 다시 제외됐다 (표 참조). 30년전이나 지금이나 스포츠가 국민들에게 전하는 감동과 짜릿함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국민들이 스포츠를 보는 눈높이가 높아졌고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의 기준과 의미도 이전과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 체육요원 병역특례 제도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병역면제의 창구가 된 아시안게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통해 체육요원 병역특례에 대한 문제점들이 다시 수면위로 올라왔다. 먼저 세계선수권대회보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에게 병역혜택을 부여해야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축구를 예로 들면 병역특례의 여부만으로 볼 때 A대표팀이 참가하는 월드컵이나 아시안컵보다 23세 이하 선수들이 주를 이루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 더 중요한 대회다. 현행법 상으로는 월드컵에서 세계 제패를 하거나 아시아 정상에 올라도 병역특례와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대회에서는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군 입대 연령을 넘긴 일부 선수들로 인해 대회 자체가 병역혜택의 창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야구대표팀의 오지환(LG)과 박해민(삼성)은 상무와 경찰청 입대 시기를 넘기면서까지 사실상 아시안게임을 통한 병역특례를 기다려왔다. 이들에게는 야구 인생을 건 ‘승부수’였지만 팬들의 눈에는 병역 기피의 ‘꼼수’로 비쳐졌다. 이번 대회에서는 전원 프로 선수로 구성된 한국이 대회 전부터 사실상 우승팀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만큼 대표팀 승선이 곧 병역면제라는 공식이 성립되면서 오지환과 박해민에 대한 팬들의 비난도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축구도 아시안게임은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확률 높은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대회마다 23세 초과 선수인 와일드카드로는 대부분 군 입대를 눈앞에 둔 만 25~27세 선수들이 선발됐다. 이왕이면 병역면제에 대한 간절함이 강한 선수들을 선발해 팀 전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모두가 인정하는 문제점들, 합리적인 개선안이 필요하다
체육요원 병역특례와 관련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런던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한 축구대표팀의 김기희가 마지막 경기에서 4분간 경기를 뛰고 병역혜택을 받았다. 이듬해 4월 병무청은 병역혜택 기준을 입상제에서 점수제로 바꾸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세계선수권까지 포함한 대회별 순위에 따른 점수를 획득해 합계 점수가 기준을 초과하면 병역혜택을 주겠다는 것이 개선안의 골자였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올림픽 동메달만으로는 한번에 병역혜택을 받지 못하는 기준이 제시되자 체육계가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1년 이상 끌어온 개선안 논의는 백지화됐다.
야구의 박찬호와 추신수, 축구의 박지성과 손흥민 등 해외 무대 활약을 통해 한국을 세계에 알린 스포츠 스타들은 모두 체육요원 병역특례의 수혜자들이다. 이들이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20대 후반에 해외진출을 마감했다면 세계 톱리그에서 활약한 아시아 최고 선수라는 평가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체육요원 병역혜택이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이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자는 의견은 거의 없다. 다만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새롭게 마련해 선의의 피해자나 억울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아시안게임이 마무리 된 뒤 체육요원 병역특례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자 병무청과 정치권이 앞다투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병무청은 체육예술분야 병역특례 제도의 재검토 입장과 함께 개선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몇몇 국회의원들도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4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국무회의를 통해 병역특례 개선방안 마련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 어느때보다 병역특례 개선을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관심이 줄어들기 전에 법 개정 움직임이 구체화돼야한다. 무엇보다 폭넓은 의견 수렴이 중요하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합리적인 병역특례 개선안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스포츠서울 도영인기자] dokun@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