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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망쳐보겠다"던 김은숙 작가, 작두탄 임지연 "미움 받을수록, 되게 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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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희대의 악녀 박연진을 연기한 배우 임지연. 제공|넷플릭스

“연진이가 미움을 받으면 받을수록 극 중 동은(송혜교 분)의 대사처럼 되게 신이 난다.”


‘연진이’는 지난 3개월간 전 국민의 미움을 받는 이름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고교 시절 학교폭력을 당한 주인공 동은이 가해자 연진을 향해 편지 형식의 내레이션으로 복수심을 다질 때 썼던 “연진아”가 온라인에서 ‘밈’이 되며 국민 유행어로 회자된 것.


덩달아 연진 역을 연기한 배우 임지연의 주가도 껑충 뛰어올랐다. 2011년 영화 ‘재난영화’로 데뷔, 영화 ‘인간중독’(2014)에서 파격적인 노출로 한 차례 화제를 모았지만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12년차 배우는 “이제 엄마도 집에서 ‘연진아’라고 부른다”라며 “임지연이 아니라 연진이가 대세”라고 한껏 들뜬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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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같은 얼굴에 숨겨진 악마의 모습…김은숙 작가 “내가 널 망쳐보겠어”


‘더 글로리’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와 만남은 2021년 겨울이었다. 악역이 처음인 임지연에게 김은숙 작가는 “이제 이 얼굴에서 악마가 나올거야”라며 “내가 널 망쳐보겠어”라고 자신했다.


“작가님은 연진이를 미화하거나 어떤 서사도 부여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오히려 그런 부분이 더 좋았다. 나도 최선을 다해 연진이를 표현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은숙 작가가 요구한 연진의 캐릭터는 겉으로 보기에 착하고 우아한 인물이다. 임지연은 연진 역을 연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쳤다.


“처음에는 사이코패스처럼 아무 감정 없는 인물처럼 설정했다가 아예 미친 여자처럼 표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내 안에 정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존에 보지 못한 임지연만의 빌런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썹이 짙고 미간에 주름이 있는 자신의 얼굴을 활용했다. 입이 크고 한쪽으로 웃는 버릇이 연진의 섬뜩함을 연기하는데 도움됐다.


고교 시절 친구였던 스튜어디스 혜정(차주영 분)에게 “알아들었으면 끄덕여”라고 차갑게 명령하는 장면, 동은이 딸 예솔의 담임교사인 사실을 알게 된 뒤 “어디 한 번 해봐, 파이팅”이라고 비꼰 뒤 홀로 담배를 피우며 초조해하는 연기는 이런 임지연의 노력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뿐만 아니다. 입에 착 붙는 욕설 연기도 혼자 있을 때, 동창들을 만날 때, 동은과 만날 때를 구분해 썼다. 담배 피우는 장면 역시 혼자 있을 때와 남편 앞이 다르다. 기상캐스터 원고는 밥 먹을 때도, 화장실 갈 때도, 운전할 때도 달달 외워 아직까지 입에 맴돌 정도다.


임지연은 “욕을 찰 지게 못 하면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사는 집 여자의 욕은 어떻게 다른지 고민했다. 특히 동은 앞에서는 단전에서 우러나오는 욕설을 뱉었다. 담배도 상황에 따라 맛깔나게 피우려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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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임지연. 제공|넷플릭스

◇송혜교 뺨 때리고 저도 모르게 멱살, 교도소 장면 촬영 뒤에는 울컥


그렇게 1년 여 연진에 푹 빠져 살다보니 연기할 때도 불쑥불쑥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일례로 체육관에서 송혜교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송혜교의 멱살을 잡았다. 교도소에 면회 온 송혜교와 얘기하다 끌려 나갈 때는 자신이 아는 오만가지 욕설을 내뱉으며 광분했다. 모두 대본에 없는 내용이었다.


임지연은 “대본에는 한 단어의 욕이었는데 단어 하나로 끝내기 어려워 할 줄 아는 욕을 다했다”며 “내가 너무 흥분해 힘을 줘서 그런지 교도관 배우 분들이 못 끌고 나가 애를 먹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마지막 촬영은 연진의 교도소 생활이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연진은 다른 재소자들 앞에서 기상캐스터처럼 날씨를 전달한다. 애써 웃지만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일평생 그늘 한 점 없이 환한 백야에서 살아온 박연진의 처절한 몰락이다. 임지연은 “그 장면을 촬영한 뒤 울컥했다”고 말했다.


“매 번 화려하게 세상을 밑으로 바라보던 연진이가 철저하게 무너지고 좌절하던 신이었다. 나도 그 장면을 촬영한 뒤 공허해지면서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연진이 편을 들어주지 못했지만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로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연진으로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글로벌 악녀로 거듭난 그의 차기작은 배우 김태희와 함께 출연하는 tvN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이다. 공교롭게도 남편에게 매 맞는 여자 역할이다. 임지연은 “사람들이 그 역할이 연진이라고 상상도 못할 것이다. 임지연인걸 아예 못 알아봤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항상 배우로서 자격지심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던대로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칭찬받는 게 신기하다. 하지만 연진 역이 강렬하다고 그 이미지를 버리겠다는 생각은 안 한다. 지금까지 한 계단씩 차근차근 성장 스토리를 쌓아왔기에 연진이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퀘스트를 깨나가듯 연기 도전을 하는 즐거움이 생겼다. 지금 되게 신난다. 하하(웃음)”


[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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