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보고 알바 뽑았다… 자리 없어서 줄세운 역대급 가게들의 근황
떠올리는 것만으로 향수를 자극하는 장소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자주 가던 놀이터, 대학 새내기 시절 강의실보다 더 열심히 들락거렸던 카페... 특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친구들과 본격적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다녔던 장소들은 쉽게 잊히지 않죠.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서 10년의 세월을 이기고 추억의 장소가 남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식음료 분야의 유행이 눈 깜짝할 새 달라지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한때 대한민국 번화가를 모두 점령할 만큼 인기가 좋았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어진 가게들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출중한 직원들의 따듯한 서비스, 민들레 영토
최근 카공족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음료 한 잔만 시켜놓고 몇 시간이고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것이 카페나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죠. 하지만 '민들레 영토'에서라면 카공족도 조금 더 당당해질 수 있을 겁니다. 기본요금을 지불하면 음료를 리필 받으며 3시간 동안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까요.
출처: 노컷뉴스 |
민들레 영토는 목사 출신인 지승룡 대표가 만든 카페입니다. 신촌에 1호점을 연 뒤 전국 대학가, 번화가를 중심으로 퍼져나갔죠. 줄여서 '민토'라고 부르기도 하던 민들레 영토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연상케 하는 직원 유니폼, 대학생들이 팀플 모임을 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으로도 유명했는데요. 무엇보다 아르바이트생들의 평균 외모가 매우 출중해 '얼굴 보고 뽑는다'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외모 커트라인을 통과한 직원들이라 그런지 시급도 당시 기준으로 높은 편이었죠.
하지만 이천 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민토의 인기는 점점 사그라듭니다. 번화가마다, 대학가마다 들어섰던 지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종로점과 경희대점 밖에 남지 않았죠. 남아있는 두 지점도 메뉴 구성이나 운영방식은 예전의 민토와는 조금씩 다르다고 하네요.
화이트 초코 케이크, 크라운 베이커리
1988년 크라운 제과에서 탄생해 같은 해 10월 분사한 크라운 베이커리는 국내 빵 프랜차이즈의 원조격입니다. 제과제빵 업계 최초로 유명 배우를 기용한 TV CF를 내보내며 90년대를 주름잡은 브랜드죠. 당시에는 동네마다, 번화가마다 크라운 베이커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고, 화이트 초콜릿을 얇게 슬라이스해 케이크 윗면에 잔뜩 얹은 '화이트 초코 케이크'가 대표 메뉴로 자리 잡으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출처: MTN |
언제까지나 승승장구할 것 같던 크라운 베이커리였지만 IMF의 타격은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크라운 베이커리가 휘청대는 동안 경쟁업체인 파리바게뜨와 후발주자 뚜레쥬르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죠. 매출액도, 매장 수도 IMF 전과 비교할 수없이 줄어들자 크라운 제과는 크라운 베이커리의 철수를 선언하고, 크라운 베이커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냄새만으로 올킬, 로티보이
출출한 채로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어느샌가 델리 만주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갓 구운 빵과 달콤한 크림의 풍미가 못 말리게 유혹적이니까요. 그런데 2007년 3월, 델리 만주의 아성에 도전하는 뉴페이스가 나타납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출발해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등을 거쳐 서울 이대 앞에 도착한 '로티보이'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로티보이에서 판매하는 식품은 다름 아닌 '번'이었습니다. 버터 필링이 들어있는 생지를 발효시킨 후 커피크림을 넣고 오븐에 굽는 과정을 거치는 로티 번의 냄새는 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만들었죠.
첫 선을 보인 지 1년 만에 100호점을 돌파하며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주었던 로티보이에도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2012년 운영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모든 영업점이 본사의 지사로 변경되었고, 매장 수도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이죠. 현재 로티보이 매장은 전국에 20여 개밖에 남아있지 않다는데요. "아직도 커피를 마실 때마다 로티 번이 생각난다" 며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네요.
1년의 영광, 대왕 카스테라
출처: 시빅뉴스 |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운 과거로 돌아가 볼까요? 2016년 한 해를 뜨겁게 달궜던 간식을 하나만 고르라면 대만 카스테라를 꼽으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대만 단수이에서 시작된 지역 특산물인 대만 카스테라는 보들보들하고 촉촉한 식품이 특징인데요. 특히 한국에서 대만 카스테라의 유행을 선도한 '대왕 카스테라'는 커다랗게 구운 카스테라를 통째로 꺼내놓고 눈앞에서 썰어주어 기다리는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했습니다. 2017년 상반기 대왕 카스테라의 한국 매장 수는 17개, 대왕 카스테라의 인기에 힘입어 대만 카스테라를 표방하는 카스테라 집이 전국에 400개 이상 생겨났죠.
출처: 채널 A |
그러나 대만 카스테라는 위에 언급한 어느 프랜차이즈보다도 빠르게 추락합니다. 채널A에서 방영하는 <먹거리 X파일>에서 '대만 카스테라가 그렇게 보들보들할 수 있는 건 식용유와 식품 첨가물을 대량으로 넣기 때문이라고 보도한 것이 발단이었죠. 보도 이후 제과 업계는 "부드러운 식감을 위해 식용유를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라며 반론을 제기했지만, 이미 돌아선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한 동네에 두세 개씩 도 있었던 카스테라 집은 빠른 속도로 문을 닫았죠.
적어도 1~2년은 더 흥할 줄 알았던 대만 카스테라가 급격히 몰락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가맹점주들이었습니다. 적어도 1~2년은 더 잘 될 줄 알았던 가게의 매출이 방송 한 번에 큰 폭으로 줄어들었으니까요. 이후 대만 카스테라와 먹거리 X파일 사건은 언론의 책임, 그리고 한국의 기형적인 프랜차이즈 유행 현상을 논할 때 자주 오르내리는 예시가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