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면서 꼭 새겨야할 ‘말’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10만㎢ 남짓의 국토에서 극명하게 다른 문제들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사람들이 너무 밀집한데 따른 각종 도시문제가 넘쳐난다. 반면 지방은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드는데 따른 농촌문제가 심각하다. 모두 해결이 쉽지 않은 당면과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바로 청년들의 귀농이다. 하지만 이 역시 농사는 물론, 여러 사람 사는 문제와 얽혀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사위크>는 청년 귀농의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여기, 그 길을 걷고 있는 용감한 90년대생 동갑내기 부부의 발자국을 따라 가보자. [편집자주]
귀농해서 시골에 살다보면, 도시와는 다른 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아무래도 사람들과의 관계나 처신도 다를 수밖에 없다. /청양=박우주 |
귀농을 해서 살다보면 도시와는 달리 이런 일 저런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난다.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지지고 볶고 싸우기도 하고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참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렇게 많은 일들을 겪어오면서 우리는 몇몇 ‘명언’들을 깊이 새겨왔다. 귀농을 생각하고 있거나 실행 중이라면, 한 번쯤 참고해봐도 좋을 듯하다.
내 편이 아니라도 적을 만들지 마라.
적을 만들지 마라. 어쩌면 당연한 말일지 모르지만, 시골에선 정말 중요한 말이다. 굳이 친하고 가깝게 지내진 않더라도 적어도 ‘적’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어느 정도는 두루뭉술하게 관계를 가져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어느 날, 누군가 대뜸 우리 집에 찾아와 동네사람이라며 뭘 빌려달라고 한 적이 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빌려줬는데, 알고 보니 새로 이사 간 동네 이장님 사모님이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장님과도 인사를 나누고 안면을 트게 됐다. 만약 그때 지나치게 경계했다면 ‘실세’인 이장님 댁과 조금 어색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우리 집은 모르는 사람이 말도 없이 찾아와 귀농에 대해 물어보는 일이 종종 있다. 주소가 인터넷에 나와 있고, 유튜브도 하다 보니 귀농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분들이 그렇게 찾아오시곤 한다. 그럴 때면 어느 정도만 대화를 나눈 뒤 바쁘다고 하고 돌려보낸다. 대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문자로 보내달라고 하고, 문자가 오면 성심성의껏 답장을 해준다. 아내는 이런 상황을 싫어해서 빨리 보내려고 하는데, 나는 그래도 적정선까지는 응대를 해준다. 그렇게 하다 보니 몇몇 분들은 귀농교육을 하러 가서 교육생으로 만나기도 했다. 또 그중엔 실제 청양 지역으로 귀농한 분도 있다. 썩 달갑지 않은 불청객이라도 적을 만들 필요까진 없다는 걸 다시금 말해준다.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집 바로 위에서 농사를 짓는 분이 있는데, 그 땅은 비가 내리면 항상 무너져 우리가 피해를 본다. 재작년에도 땅이 무너져서 배수로가 다 막혀버리는 바람에 고추가 물에 잠기고 말았다. 그래도 동네 분이고 친절하고 좋은 분이어서 별말 안하고 그냥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 집에 상수도가 연결 될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마을 정비사업이라고 해서 상수도가 없는 지역에 기본비용만 받고 놓아주는 건데, 이번에 우리 집이 포함된 것이다. 너무 좋은 기회였다. 문제는 상수도를 놓기 위해선 그 위 땅을 다 파고 공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분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좋은 기회를 놓칠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우리가 피해를 입었을 때 그분을 적으로 만들었다면, 아마 우린 상수도를 놓지 못했을 거다.
시골에 살면 아무래도 적을 만들지 않고 두루뭉술한 게 좋다. 그렇다고 장식을 벗어난 호의는 베풀면 안 된다. / 청양=박우주 |
착함과 호구는 다르다.
이렇듯 시골에서는 두루뭉술하게 살아야 한다. 그게 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식을 벗어나는 호의는 베풀면 안 된다. 좋은 게 좋은 건 어디까지나 상식선에서다.
평균적으로 나이가 60세 이상인 분들이 대부분인 우리 마을에서 우리는 한창 어린애다. 그래서일까. 몇몇 어르신들은 조금 선을 넘는 행동을 하시기도 한다. 언젠가 한 번은 우리가 농작물을 말리고 있는데, 한 어르신이 멀리서부터 계속 담배를 피우며 다가오셨다. 그래서 큰소리로 한마디 했다.
“아니 고추 말리는데 왜 담배를 피우면서 가까이 오세요? 이거 다 사람들한테 파는 건데 이건 아니잖아요!”
참고로 그분은 귀농귀촌을 한 어르신이었다. 생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퇴직 후 여생을 보내며 소일거리로 농업을 하는 쪽이었다. 이런 분들은 심심해서인지 자주 찾아오시곤 했는데 큰소리를 한 뒤에는 무안해서인지 안 오신다.
또 우리 집 바로 아래엔 저수지가 있어 낚시꾼들이 많이 온다. 그런데 어느 날 몇몇 낚시꾼들이 올라와 물 좀 받아가겠다며 예전에 살던 사람은 하게 해줬다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래서 “우리가 왜 그래야하는지 모르겠고, 여기는 사유지이니 나가주세요”라고 쫓아냈다.
그리고 우리 집 마당은 처음에 길과 경계가 없었다. 그렇다보니 차를 돌리기 위해 들어오거나 심지어 주차를 하기도 했고, 그러다 마당에 깔아놓은 자갈이 패이거나 흐트러지곤 했다. 결국 참다못한 아내가 바리게이트를 사서 막아 놓았다. 그때부턴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못 한다. 대신, 큰 차가 못 돌리거나 할 때는 잠시 바리게이트를 치워주기도 한다.
우리부부 성격을 보면 나는 좀 너그러운 편이고, 아내는 칼 같다. 그래서 둘의 호흡이 잘 맞는다. 내가 좀 너그럽게 대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도움이 된 적도 있고, 아내가 칼 같은 성격은 우리에게 크게 필요 없거나 선을 넘는 사람들을 대하기에 좋다.
도시에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선’과 ‘매너’, ‘상식’이 시골에서는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 부터는 우리만의 규칙을 만들게 됐고, 편해졌다. 그래서 아내는 청양에서 앙칼지고 똑 부러지는, 새침한 새댁으로 통한다.
귀농해서 몇 년 정도 지나면, 필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잘 모르겠는 사람으로 부류가 나뉘곤 한다. / 청양=박우주 |
겸손한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호감을 산다.
겸손해야한다. 낮은 자세로 배우려고 하고 받은 게 있으면 베풀어야한다. 겸손한 사람에게 막하는 사람은 없다. 겸손한 자세로 임하면 사람들이 잘 도와주기 때문에 귀농귀촌에 적응하기도 쉬워진다. 그리고 시골 소문은 무섭게 빠르게 퍼져나간다. 엄청 부풀려지기도 한다.
시골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이번에 수확 잘 했어?”라는 말을 인사치레처럼 하곤 한다. 이때도 겸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괜히 으스대는 건 물론이고, 잘됐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도 좋지 않을 수 있다. 그 말이 부풀려지고 빠르게 퍼져서 시기질투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적을 만들게 된다. 아무리 잘 됐어도 “항상 힘들다” “그냥 그렇다”고 말하는 게 뒷말도 없고, 특히 귀농귀촌인에겐 더 바람직한 자세인 것 같다.
끝으로 귀농을 하고 몇 년 정도 지나면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1.나에게 필요한사람 2.나에게 필요 없는 사람 3.잘 모르겠는 사람.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대부분 현지농업인이다. 이분들은 현지 실세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우리는 대표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현지 농업인분들이 약 5명 정도 있다. 굳이 많을 필요는 없고, 정말 필요한 사람들과 관계를 꼭 잘 맺어두는 게 좋다.
나에게 필요 없는 사람은 대부분 귀농귀촌인이다. 나이가 맞고, 대화가 통하고, 배울게 있는 귀농귀촌인이라면 다르지만 내가 사는 청양에서는 딱히 없었다. 특히 이룰 것 다 이루고 여생을 보내려 오신 귀농귀촌인들은 우리 같은 청년농부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래도 굳이 적을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에 적당한 관계만 맺고 있다.
잘 모르겠는 사람은 굉장히 애매하다 그래서 보자마자 빨리 파악해야한다. 일반인이라면 적당히 예의를 갖추면 된다. 이상한 사람이면 그 자리를 벗어나던지 교류가 없게 딱 잘라서 끝내야한다.
박우주·유지현 부부
-1990년생 동갑내기
-2018년 서울생활을 접고 결혼과 동시에 청양군으로 귀농
-현재 고추와 구기자를 재배하며 ‘참동애농원’ 운영 중
-유튜브 청양농부참동TV 운영 중 (구독자수 4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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