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향해 '쓰레기' '똥개' 비난, 극한 혐오 감정 드러낸 김여정
김현주의 일상 톡톡
北, 격한 어조로 남한 당국에 탈북단체 대북 전단 살포 막으라고 요구 /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 노동신문에 보도된 담화에서 북한 겨냥한 전단 조치 촉구 / 대북 전단 대하는 북의 극도로 민감한 반응 처음 아냐 / 정부, 남북 관계 돌파구 마련하려고 의지 다지는 시기에 표출된 비난이어서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 /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까지 마련, 관계 개선 공 들이는 국면 / 北 호응은 커녕 되레 압박하는 모양새 / 북미 비핵화 협상 경색, 남북 관계 정체 국면…또 하나의 부정적 변수 작용 가능성
북한이 격한 어조로 남한 당국에 탈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막으라고 요구해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자 대변인 격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노동신문에 보도된 담화에서 북한을 겨냥한 전단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다.
김 제1부부장은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은 개성공단 완전 철거,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군사합의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면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 살포 등 모든 적대 행위를 금지키로 한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지난해 남북군사합의 조항도 언급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북 전단을 대하는 북한의 극도로 민감한 반응은 처음이 아니지만, 정부가 남북 관계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의지를 다지는 시기에 표출된 비난이어서 예사롭지 않다.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까지 마련하며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는 국면에서 북한은 호응은 고사하고 새롭게 압박하는 모양새다. 북미 비핵화 협상 경색과 남북 관계 정체 국면에서 또 하나의 부정적 변수가 아닐 수 없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달 말 김포에서 이뤄진 탈북단체에 의한 대북 전단 살포를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탈북민을 겨냥해 '쓰레기' '똥개' 등으로 비난하며 극한 혐오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담화는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만 실린 이전과 달리 전 주민이 보는 노동신문에도 게재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전단살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인 셈이다.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달 31일 김포시 월곶리 성동리에서 '새 전략핵무기 쏘겠다는 김정은'이라는 제목의 대북 전단 50만장, 소책자 50권, 1달러 지폐 2000장, 메모리카드(SD카드) 1000개를 대형풍선 20개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고 1일 밝혔다. 연합뉴스 |
북한이 4일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에 불쾌감을 표하며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이에 청와대는 대북전단 살포가 "백해무익한 행동"이라며 단호한 대응을 천명했고, 정부는 전단 살포를 막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북전단 살포를 원천 차단하면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와 입법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대북전단 살포…靑 "백해무익한 행동"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이날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한 담화에서 "남조선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북남(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제1부부장은 이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삐라 살포 등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판문점 선언과 군사합의서 조항을 모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방치된다면 남조선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나는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라며 "광대놀음을 저지할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도록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달 31일 김포에서 대북전단 50만장 등을 대형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낸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대북전단에는 '7기 4차 당 중앙군사위에서 새 전략 핵무기로 충격적 행동하겠다는 위선자 김정은' 등의 문구가 적혀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에 청와대와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가 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를 막을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삐라(대북전단) 살포는 백해무익한 행동"이라며 "안보에 위해를 가져오는 행위에는 정부가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 논란…지성호 "삐라 보내는 행위 잘못됐다고 볼 수 없다"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위협을 초래하는 행위"라고 규정하며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 이후부터 이를 법률을 통해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고 밝혔다.
판문점 선언 2조 1항에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금지 법안과 관련, "접경지역 평화적 이용을 위한 법률, 한반도 평화기반 강화·구축하는 것과 관련한 여러 법제를 검토하고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법안에 전단 관련 내용도 포함하려 한다"고 말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연합뉴스 |
그러나 그간 역대 정부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막으려 했지만 표현의 자유에 해당해 손대지 못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탈북민 출신의 미래통합당 지성호 의원은 "삐라를 보내는 행위가 잘못된 행위라고 볼 수 없다"면서 "북한 주민의 알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정부도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라면서도 "이것이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 안전과 전단으로 인한 환경 오염 등 법익들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윤건영 "대북 전단지 살포, 국익에 아무런 도움되지 않는다"
이를 놓고 여야 정치권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출신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북한의 방식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매우 크다"면서도 "물론 북한 입장에서는 충분히 문제 제기가 가능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윤 의원은 "대북 전단지 살포는 대한민국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대부분의 대북 전단지는 북한땅까지 가지도 못한다. 대다수가 고스란히 우리 땅에서 발견된다. 실제 효과는 거의 없고 상대만 자극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심지어 그 행위가 국내 환경 오염만 가중시키고 있다. 고스란히 한강 하구에 쌓이고 해양 생태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누구를 위한 전단지 살포냐"라며 "오히려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탈북민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4일 담화를 냈다. 사진은 2016년 4월 2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탈북자 단체들이 대북 전단을 날리는 모습. 연합뉴스 |
같은 당 김홍걸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지금 북측은 코로나19 위기로 나라 사정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자존심과 체면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먼저 노골적으로 남측에 교류 재개를 제안할 수도 없다"며 "이번 성명은 협박이라기 보다 우리 측에게 '성의를 보여주면 다시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북측의 말은 항상 '최악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겠다'는 협박보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그들이 우호적인 태도로 바뀔 수 있다는 숨은 메시지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같은 당 한정애 의원은 "대북전단 살포는 쓰레기 대량 투기와 같다"며 "표현의 자유라고는 하지만 대다수 대북 전단지는 바다에 떨어지거나 흘러들어 해양오염을 야기시킨다. 쓰레기 투기는 단속 대상"이라고 말했다.
통합당 "우리 정부는 왜 북한에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가"
반면 황규환 미래통합당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북한의 적반하장 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며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판문전 선언과 군사합의서 조항을 모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김여정의 말, 그대로 돌려주고 싶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황 부대변인은 "문재인 정부는 우리 GP에 북한군의 총알이 날아와도, 김정은의 친서 5일만에 방사포를 발사해도 '의도적 도발은 아니다'라면서 감싸기에만 급급하다"며 "우리 정부는 왜 북한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역시나 우리 정부는 대북 전단지 중단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도 남북군사합의를 먼저 어긴 북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며 "계속되는 위협과 침묵만 지키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고 주장했다.
미래통합당 지성호 의원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북한 인권 관련 외신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윤상현 무소속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6월4일은 북창남수(北唱南隨) 기념일로 기억될 만하다. 김여정이 대북전단 비난 담화를 내자마자 통일부가 이 전단을 금지하는 법률을 만들겠다고 나섰다"라며 "그 법률은 초거대 집권 여당이 국회에서 단독으로 의결하면 그만"이라고 비꼬았다.
윤 의원은 "탈북민이 북한에 전단을 보내는 이유는 북한 땅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정보의 자유를 얻기 위한 것이다. 통일부가 말하는 전단 금지 이유는 궁색하기보다 민망하고 서글픈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무엇보다 국민의 민주적 총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북한정권 넘버투의 불호령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에 굴욕과 참담함이 앞선다"고 말했다.
김근식 "잘못은 잘못이라고 단호하게 북에 말해야 대화도 협력도 가능"
한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4일 우리 정부의 대북 전단 금지 추진과 관련해 "대한민국 정부가 맞나. 우리 정부가 아니라 김여정의 지시를 따르는 북한 기관 같다"고 비판했다.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서울 송파병 후보로 출마했던 김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여정의 대북 삐라 노여움 한마디에 청와대, 통일부, 국방부가 그 뜻을 받드느라 일사불란한 모습"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김 교수는 "통일부는 전단살포를 막는 법률을 만들겠다고 하고, 국방부는 대북 풍선이 군사분야합의서 상의 '기구'에 해당된다며 우리가 합의 위반했음을 인정하는 듯하다"며 "청와대는 대북 삐라가 백해무익한 안보 위해행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고 전했다.
이어 "남쪽을 향해 고사포를 쏜 북한이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키고 군사적 도발을 한 것이지, 어떻게 대북 전단이 긴장 고조의 원인이 되느냐"라며 "본말전도에 불과하다. 정당한 전단 살포에 대해 과잉대응으로 군사 도발한 북한을 규탄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전단살포가 '백해무익한 안보 위해 행위'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인식은 정말 놀랍고 위험하다"라며 "전단 살포가 부작용이 있고 효율성이 논란이긴 하지만 백해무익은 아니다. 김정은에게 치명적인 두려움을 준다. 전단 살포 행위는 대한민국이 아니고 북한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여정 담화 직후에 정부가 나서서 전단금지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도 시기적으로 오해를 살 만하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타이밍이 절묘하다"라며 "누가 봐도 김여정이 화내자마자 정부가 적극 나서 노여움을 푸려는 눈치보기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체의 대화와 협력을 싫다고 거부하는 북한에 대해 끝까지 매달리며 환심을 사려 하는 문재인 정부는 그야말로 짝사랑과 외사랑을 넘어 이제는 '스토킹' 수준"이라며 "잘못은 잘못이라고 분명하고 단호하게 북에 말해야 한다. 원칙이 서야 대화도 협력도 가능하다"고 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