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글자글’ 뚝배기에 담긴 순두부… 추억은 ‘몽글몽글’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어릴적 아버지와 등산 후 먹던 순두부
청량산 입구 언덕 위치 고즈넉한 가게
30년 세월 흔적에 마음까지 포근해져
뜨끈한 순두부 간장 더하면 식욕 돋워
입안 콩의 고소한 풍미에 감칠맛 일품
깻잎지·무절임 등 밑반찬과 궁합 최고
어릴 적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순두부. 등산 후 먹던 뜨끈한 그 맛은 어린 시절엔 잘 몰랐던 어른의 맛이었다. 인천 연수구 청량산 근처의 ‘어머니 순두부’는 그런 내 어릴 적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맛이다.
◆ 청량산 ‘어머니 순두부’
어머니순두부 |
오랜만에 청량산을 찾았다.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청량산은 그 이름만큼이나 청량한 느낌이 났다. 청량산 초입의 산바람은 설레는 마음까지 들게 한다. 약속 시각까지는 시간이 남아 청량산 공원을 산책했다. 공원 너머 주택가 언덕길 초입에 보이는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포근한 햇살, 산에서 내려오는 선선한 바람 그리고 소음 하나 없는 동네의 정겨운 정적까지 새로운 골목을 탐험하기 좋은 날이었다.
산 입구에 위치한 동네의 분위기는 몽환적이기도 하다. 산안개가 내려오는 날 습하지만 맑은 풀 내음이 진동하고 한여름에는 종종 쏟아지는 시원한 소나기가 두들기는 나뭇잎 소리가 정겹다. 겨우내 펼쳐진 설산을 바로 앞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음식점은 어떤 곳일까.
어머니순두부 외관 |
골목 언덕까지 천천히 올라가면 ‘나는 원래부터 그저 이곳에 있었어’라고 말을 거는 듯한 고즈넉한 가게가 보인다. 어머니 순두부는 옛날 할머니 댁에 가면 볼 수 있을 법한 골목길에 있는 음식점 같다. 향수를 일으키는 초연한 모습으로 여름을 기다리는 따뜻한 햇살을 한가득 받는 풍경은 마치 오래된 사진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가게 내부로 들어갔다. 세월의 흐름으로 허름해 보일 수는 있지만 지저분하지는 않은 것이 노포의 특징이듯, 어머니 순두부가 그랬다. 이곳의 메뉴판은 두부를 좋아하는 내게는 반가운 이가 보낸 초대장 같아 설레게 만든다. 어머니 순두부는 30년이 넘은 오래된 가게다. 안쪽에는 가정집이 있는 듯한 구조로 가게 앞뒤로 창문이 배치되어 있는데 밖으로는 고즈넉한 채광이 안으로 밀려들어 와 햇빛이 비치는 공간은 마치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어머니 순두부는 이른 시간에 문을 열고 일찍 문을 닫는다. 오후 2시 어쩌면 아직은 한창인 점심시간이지만 내가 마지막 손님인 듯했다. 푸근한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두부가 주인공인 메뉴들이 가득한 메뉴판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청국장이 눈에 들어왔지만 한번 꾹 참고 오늘은 이곳 메뉴의 근본인 순두부를 먹기로 했다.
◆ 순두부 정식
어머니순두부 밑반찬 |
어릴 적 아버지와 등산을 다녔던 기억은 나이를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추억 중 하나다. 초봄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던 때 이른 시간 등산을 하고 내려오던 길 먹거리가 조성된 길목, 저 멀리서부터 김이 모락모락 나던 리어카에서는 따끈한 순두부와 막걸리를 팔았다. 아버지와 손잡고 다니던 어린 시절이라 그 맛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새하얀 순두부 국물의 뜨끈함, 특히 그 순두부에 간장을 조금 넣었을 뿐인데도 올라오는 감칠맛과 그 아찔한 향이 정말 좋았던 것 같다.
어머니 순두부는 그때의 잊고 지냈던 추억을 일깨워 주는 맛이다. 직접 만든 하얀 순두부가 자글거리며 뚝배기에 가득 담겨 나왔다. 몽글몽글한 순두부는 마치 갓 만든 모차렐라 치즈처럼 순백의 색을 뽐내며 참을 수 없는 향을 내뿜었다. 뜨거운 순두부를 한입 먹으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입안에서 콩의 고소한 풍미가 어깨춤을 추며 식욕을 돋웠다. 간이 된 듯 아닌 듯, 그 고소함과 순두부의 감칠맛에 내 혀와 뇌가 속은 것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순두부는 완벽했다. 참 소박한 이 순두부 한 그릇에서 내가 추구해야 할 음식이란 무엇일까 되뇌며 그릇을 비워 갔다. 깻잎지와 무절임, 두부 부침, 김치까지 순두부의 맛을 해치지 않는 그 자극적이지 않은 반찬들까지 ‘정식’이라는 메뉴명의 ‘정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두부와 순두부
콩물을 응고하여 압착을 한 것을 두부라고 하고 압착하지 않고 그냥 만든 것을 순두부라고 한다. 바닷물, 간수로 굳혀낸 순두부는 결이 단단하면서도 입안에서는 뭉글뭉글 퍼지는 식감이 참 좋다. 순두부는 일반 두부보다 부드럽기에 이가 약한 사람이나 환자식으로 먹기에 좋다. 또 매콤한 고추기름을 넣은 순두부찌개는 직장인들의 단골 점심 메뉴이기도 하다. 콩의 풍미를 그대로 살린 하얀 순두부탕도 있다.
순두부탕 하면 초당 순두부가 가장 유명한데, 허균의 아버지 허엽 선생이 삼척부사로 근무할 당시 강릉의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그 맛이 훌륭해 강릉 일대에 퍼지면서 허엽 선생의 호를 붙여 ‘초당’ 순두부로 명명했다고 한다. 그 후로 여러 두부요릿집이 생기면서 지금까지 초당 두부촌을 이루고 있다.
■ 순두부 크림소스를 곁들인 치킨 파스타
순두부 크림 치킨 파스타 |
재료
순두부 100g, 휘핑크림 50㎖, 우유 100㎖, 파르메산 치즈 10g, 삶은 펜네면 120g, 닭가슴살 100g, 모렐 버섯 3개, 마늘 2톨,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약간, 소금 약간, 면수 50㎖, 버터 50g
만드는 법
① 순두부는 휘핑크림과 우유를 넣고 곱게 간다.
② 팬에 버터를 두르고 닭가슴살, 마늘, 모렐 버섯을 볶는다.
③ 향이 올라오면 펜네를 넣는다.
④ 면수를 넣어 끓인 후 닭가슴살이 익으면 1번 순두부 크림을 넣는다.
⑤ 끓기 시작하면 간을 하고 가루 파르메산 치즈를 뿌려 풍미를 더하고 접시에 담는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을 두른다.
김동기 다이닝 주연 오너 셰프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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