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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세계일보

아이스 커피의 유행, 신의 의지였나

커피를 지구온난화 속의 인류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본다. 61만년 전 에티오피아의 작은 숲에서 아라비카 종이 탄생했을 때, 그 존재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육체는 영혼을 위하여, 영혼은 신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에 선다면 아라비카 커피에도 목적이 있겠다. 염색체의 수가 다른 카네포라와 유게니오이데스의 자연교배를 통해 아라비카 종이 탄생한 것은 사실 기적이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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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균 기온이 영하 6~7도인 스웨덴에서도 계절을 가리지 않고 아이스 커피를 마시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스웨덴 로베르즈 커피 제공

왜 아라비카가 만들어진 것일까.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작금의 이상기온 속에서 비로소 아라비카 커피가 ‘신의 선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라비카는 로부스타나 리베리카 종과 비교했을 때, 고무나 약품과 같은 이취가 없고 깨끗한 신맛과 단맛이 우수한 덕분에 차갑게 마시기에 좋다. 전 세계가 아이스 커피에 빠져들고 있는 현상은 아마도 아라비카의 탄생부터 예견된 시나리오였을지 모른다.


미국 소비자 조사에서 커피 음용자 4명 중 1명이 2023년부터 매일 아이스 커피를 마신 것으로 나타났다. 커피애호가로 소문난 스웨덴인의 15%가 6월 한 달 동안 아이스 커피를 마셨다는 소식도 외신을 탔다. 특히 18세에서 29세 사이에서는 그 수가 36%로 두 배 이상 많았다. 스웨덴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아이스 커피가 카페라테보다 더 인기가 있다는 지표이다.


네슬레도 최근 전 세계에서 팔리는 커피 다섯 잔 중 한 잔이 아이스 커피라는 자료를 냈고, 스타벅스가 올해 2분기에 미국에서 판매한 음료의 약 63%가 차가운 음료인 것으로 조사됐다. 비영리 단체인 ‘커피 사이언스 파운데이션’의 피터 줄리아노 이사는 “기온이 뜨거워지면서 아이스 커피가 일 년 내내 마시는 음료가 됐다”며 “2030년에는 아이스 커피가 음료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커피 업체도 차가운 커피 대응에 분주하다. 물을 끓이지 않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머신이 등장했고, 추출한 뒤 3분 내로 영하 12도로 떨어지는 캡슐커피 머신이 개발돼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인스턴트커피도 차가운 물에 빨리 녹는 과립형이 소비자의 손을 타기 시작했다.


차가운 커피는 바다를 끼고 있어 습기로 인해 불쾌지수가 치솟는 반도나 해변 국가에서 기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냉장 기술이 발전하면서, 여러 나라가 커피를 상쾌하게 즐기기 위해 얼음을 넣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아이스 커피는 20세기 초 특히 북동부와 남동부 지역에서 일반화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은 여름이 덥고 습하기 때문에 뜨거운 커피를 즐기기 어려웠다.


급속한 지구온난화로 차가움이 주는 관능적 인상을 추구하는 욕구가 뚜렷해지고 있다. 또 일의 강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체온이 통제의 범위를 넘기 쉬운데, 이를 빨리 식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안정감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얼음은 매우 요긴하다. 냉동 기술이 보편화하지 않았을 땐 열을 식히기 위해 휴식이 필요했지만, 이젠 아이스 커피가 있다.


아이스 커피가 근로자에게 위로가 되어야지, 쉴 틈 없이 일하는 도구로 쓰여서는 곤란하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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