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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 스시와 숙성 사케의 조합

[명욱의 술 인문학]

얼마 전 제주도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하나 열렸다. 숙성 스시의 대가인 권오준 셰프의 쿠킹 클래스 및 디너 토크, 그리고 사케 세미나. 제주 소통협력센터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박성희 ㈜인페인터글로벌 대표와 대한민국 최고인 서래마을 숙성 스시 전문점 타쿠미콘이 공동 주최하고, 주제주일본총영사관과 스시렌 제주가 협력한 행사였다. 여기에 인기 유튜버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의 마츠다 부장도 특별 게스트로 참여했다. 행사의 주인공인 권오준 셰프는 일본에서 17년간 요리사로 활동, 늘 최고의 식자재를 찾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숙성 스시는 어떻고, 또 어떻게 탄생했을까.


의외로 숙성 스시의 역사는 오래됐다. 아니 현존하는 지금 일반 스시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즉 스시의 원조는 신어 및 활어가 아닌 숙성을 통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스시는 2세기 동남아시아에서 출발 8세기에 일본에 전파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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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 스시의 대가인 권오준 셰프가 선보인 6개월 이상 숙성한 고등어 스시. 푸드 디렉터 김유경 제공

초기의 스시는 밥 위에 올리는 형태가 아니었다. 반대로 생선 위에 밥을 올렸다. 밥을 숙성시켜 신맛을 내게 한 후 생선 위에 올리는 형태였다. 소금에 절인 생선 위에 밥을 올리면 기존의 선어 및 활어회와 완전히 다른 음식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냉장 및 저장 시설이 없던 시절 생선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다만 밥이 너무 삭아진 나머지 섭취는 어려웠다. 즉 초기의 스시는 생선만 먹던 것이다. 여기서 밥으로 식초와 같은 맛을 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자체가 천연 방부제인 것이다.


17세기 일본의 중심지가 교토에서 도쿄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지금 스시의 형태인 에도즈시가 탄생하게 된다. 에도는 도쿄의 옛말이다. 숙성 기간이 1일로 바뀌기도 한다. 이것은 식초의 발명 덕분에 가능해졌다. 굳이 밥을 가지고 식초로 만들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그러면서 살균 기능을 하는 와사비(고추냉이)가 들어가게 되었고, 간장을 찍어 먹게 된 것도 이러한 맥락 중 하나다.


결과적으로 숙성 스시란 아직 냉장고가 발달하기 전의 전통 기법으로 만든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권오준 셰프의 숙성 스시는 아직 냉장고가 발달하기 전의 에도마에즈시다. 간장, 소금, 다시마 등으로 간을 한 형태로 그 감칠맛이 남다르다. 이번에 제공된 스시 중에서는 6개월간 숙성시킨 고등어 회도 있었다. 전혀 비린 맛이 없는 감칠맛과 산미의 앙상블이 멋진 조화를 이뤘다.


이러한 숙성 스시에 어울리는 술은 바로 숙성 사케. 일반적으로 사케(일본식 청주)는 100일 전후로 숙성한다. 하지만 최근에 숙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3년 이상 숙성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을 고슈(古酒)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사케는 물같이 투명하지만 이 숙성 사케는 다르다. 당분과 아미노산의 결합으로 호박색으로 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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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마치 오래 숙성한 스시처럼 오묘한 맛이 느껴지는 것. 주류와의 페어링 중에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강한 맛을 지닌 음식에는 강한 맛의 주류, 여린 맛의 음식에는 비교적 가벼운 주류를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기름진 스테이크와는 진한 레드 와인이 어울리며, 흰 살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리는 것이다.

오래 숙성한 숙성 스시가 모든 사람의 입맛에는 맞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숙성 사케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오랜 시간을 품은 음식과 술을 맛본다는 것은 그 안에 세월이란 가치를 함께 느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꼭 한 번은 경험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적어도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도 맡았으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에는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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