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영원히” 메시지 남긴 펠레… 천상의 그라운드로
‘축구 황제’ 펠레 1940∼2022
15세 산투스FC 입단 660경기 643골
17세 월드컵 최연소 득점·우승 대기록
브라질에 월드컵 우승컵 3차례 안겨
은퇴 후에도 장관·친선대사 등 ‘명망’
문선명 총재가 창설한 ‘피스컵’ 고문
네이마르·메시·호날두 등 후배들 추모
한 분야에서 ‘역대 최고’를 꼽을 때 단 한 명의 이름만 언급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이뤄낸 성과뿐 아니라 역사적 의미, 후대에 미친 영향력과 심지어 인품까지 모두 인정받아야만 가능한 일. 전 세계 축구계에서 그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축구 황제’ 펠레다. 브라질을 넘어 전 세계의 축구 스타였던 펠레가 천상의 그라운드로 떠났다. 브라질 매체들은 29일(현지시간) 오후 3시27분 펠레가 브라질 상파울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82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고 보도했다. 병원 측은 “앓고 있던 질병들과 대장암의 진행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이 사망 원인”이라고 밝혔다.
사진=AFP연합뉴스 |
펠레는 지난해 9월 오른쪽 결장에 암 종양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은 이후 화학치료를 받으며 병원을 오갔고, 지난달 심부전증과 전신 부종, 정신 착란 증상 등으로 재입원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호흡기 증상 치료까지 받으며 힘들게 투병했다. 전 세계 축구팬이 쾌유를 빌었지만 끝내 하늘의 별이 됐다. 고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생전 환하게 웃는 모습의 사진과 함께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인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라. 영원히”라는 문구가 게시됐다.
펠레는 1940년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소도시인 트리스 코라송이스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1956년 명문 산투스FC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고 만 15세에 프로축구 선수가 됐다. 곧이어 브라질 국가대표로 선발돼 브라질 대표팀 최연소(16세 259일) A매치 득점을 기록했다. 아직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이는 서곡에 불과했다. 펠레는 열 일곱 살에 참가한 스웨덴 월드컵에서 조국에 사상 첫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안기며 세계적 스타로 떠올랐다. 펠레는 이 대회에서 월드컵 최연소 득점·멀티골·해트트릭·우승 같은 대기록을 세웠다. 이후 1970년 멕시코 대회까지 월드컵 본선에 네 차례 연속 출전해 총 14경기를 치르는 동안 12골을 넣었다. 이 기간 네 차례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세 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세계를 열광하게 한 바이시클킥 펠레가 1968년 열린 한 축구경기에서 예술적 바이시클킥을 시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펠레는 클럽축구에서도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1974년까지 줄곧 산투스에서 뛰며 만든 공식전 골 기록이 660경기 643골에 달한다. 이는 단일 클럽 최다골 기록으로 오랫동안 축구 역사에 남았다가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가 바르셀로나(스페인) 소속이던 2020년 12월 경신됐다.
17세에 세계 정상에 펠레(가운데)가 17세 때인 1958년 스웨덴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팀 동료에게 안겨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펠레는 1975년 미국 내 축구붐 조성을 위해 북미사커리그(NASL) 소속 뉴욕 코스모스에 입단해 세 시즌을 뛴 뒤 그라운드를 떠났다. 은퇴 후에는 축구해설가, 친선대사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1995년 흑인 출신 최초 브라질 체육부 장관으로 임명돼 3년 동안 브라질축구 개혁법안인 이른바 ‘펠레법’을 마련해 축구계 혁신을 주도하기도 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각별하다. 1972년 산투스FC 일원으로 방한해 차범근이 뛰었던 한국대표팀과 맞붙어 한 골을 뽑으며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은퇴 후에는 프랑스월드컵을 앞둔 1998년과 2002한일월드컵 조추첨이 열린 2001년 내한해 우리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2003년에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문선명 전 총재가 개최한 국제 클럽 축구대회 ‘피스컵’ 고문으로 위촉됐다. 2009 피스컵에서도 국제자문위원으로 활약했고, 2012년 문 전 총재가 별세하자 조전을 보내기도 했다.
문선명·한학자 총재와 함께 펠레가 국제 클럽축구 대회 ‘피스컵’ 창설 발표를 앞둔 2002년 6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창설자인 문선명 총재의 서울 한남동 자택을 찾아 대화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펠레, 김흥태 소로카바축구단 회장, 문선명·한학자 총재, 델네로 브라질축구협회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
펠레 사망 소식에 전 세계 축구팬은 물론 그의 뒤를 잇는 축구 슈퍼스타들도 애도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 펠레의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은 네이마르(파리 생제르맹)는 자신의 SNS에 펠레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펠레 이전에 10번은 하나의 번호에 불과했다’는 문구를 어디선가 봤는데, 이 아름다운 문장은 미완성이다. 나는 ‘펠레 이전 축구는 단순히 스포츠에 불과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적었다. 이어 “펠레는 모든 걸 바꿨다. 그는 축구를 예술로, 엔터테인먼트로 바꿨다”고 강조했다.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각각 SNS에 “편히 잠드소서”, “그는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어제도, 오늘도, 언제나 기준이 되는 존재”라며 추모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