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on King & Golf King
레전드 골잡이에서 골프 사업가로 변신한 ‘오둥이 아빠’ 이동국
K리그의 전설 이동국은 8, 228, 548 등의 숫자로 설명된다.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고 K리그 여덟 차례 우승을 이끌었고 통산 548경기에서 역대 최다인 228골을 넣었다. 2020년 은퇴 후에는 다른 숫자들을 얘기할 기회가 더 많아졌다. 73(타), 250(m) 등 주로 골프와 관련한 숫자들이다. 서울경제에 골인한 이동국을 소개한다.
‘라이언 킹’ 이동국이 골프와 만나면? 골프킹! 인천 송도에는 ‘이동국 골프킹 GDR 아카데미’가 있다. 한국 축구 레전드 골잡이 이동국이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실내 골프 아카데미다. 송도 최대인 31타석 규모라는 이곳. 평일 낮인데도 빈 타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뿜고 있었다. 물론 이동국이 골프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전문 레슨 프로 6명이 레슨을 담당한다. 하지만 이동국도 ‘한 골프’한다. 골프 실력은 TV 골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이동국 아카데미에서 ‘골프킹’ 이동국과 골프 이야기를 나눴다. 즉흥적으로 드라이버 샷 거리도 측정해봤다. ‘오둥이 아빠’로 유명한 만큼 자녀 교육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으며 2022 카타르 월드컵이 다가온 만큼 월드컵 이야기도 잠깐 나왔다.
“베스트 스코어는 73타, 한 라운드 최다 버디는 6개”
2020년 11월 은퇴 후 거의 2년이 됐다. 어떻게 지내는지.>>>
은퇴 직후에는 하루 세 끼도 선수 생활 때랑 같은 시각에 맞춰서 먹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새로운 것들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있다. 골프는 물론이고 테니스도 하고 하루하루 재밌게 살아가고 있다. 골프 아카데미랑 축구 교실 ‘이동국FC'에도 거의 매일 나와 본다.
실내· 외 풋살 구장 3개를 갖춘 이동국FC에도 아이들이 많다. 수익은 어느 쪽이 나은지.>>>
아무래도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골프 쪽이 수익은 더 나온다. 오픈 1년쯤 됐는데 누적 회원은 700~800명, 현재 회원은 400명 정도다.
골프 아카데미를 차릴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사실 축구가 ‘메인’이긴 했다. 그런데 저희가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다 보니 부모님들 대부분이 아이 운동하는 동안 내내 기다려야 했다. 부모님들이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골프면 좋겠다 싶었다. 지금은 아이 출석시키고 옆에서 골프 연습하는 부모님들이 상당히 많다.
이름을 걸고 골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은퇴 전에 주변에서 이름을 빌려 달라는 요청이 굉장히 많았다. 이름을 내걸면 뭐가 됐든 내가 직접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어서 요청에 응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이곳이 집 근처기도 하고 이름을 걸면 스스로 책임감 있게 시스템을 돌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별명이 라이언 킹이니 자연스럽게 골프킹이라고 한 거고.
수준급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실제로 골프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베스트 스코어는 73타, 한 라운드 최다 버디는 6개다. 영광CC에서 전반에 5개, 후반에 1개 했다. 요즘 핸디캡은 10~12 정도다. 73타는 화이트 티잉 구역 기준이고 은퇴 후에는 블루 티나 블랙 티에서 친다.
구력은? 생애 첫 라운드 기억도 나나.>>>
선배들 권유로 2000년 무렵에 클럽부터 사 놓았다. 그러다 군대 제대하고 나서 2005년부터 치기 시작했으니 구력은 18년 쯤 되겠다. 첫 라운드는 이듬해 스페인 전지 훈련 가서 하루 쉴 때 나갔을 것이다.
매장에 2008년 받은 싱글패와 2010년 받은 이글패가 있더라. 두 라운드 모두 동반자 중에 김상식 전북 현대 감독의 이름이 있던데.>>>
2005년이면 20대 중반이니 또래 중에 골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요즘이야 스크린골프 영향으로 20대 분들도 골프 많이 치지만. (김)상식이 형은 저랑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골프를 배워서 자주 라운드 나가는 멤버였다. 지금은 감독이라 자주는 같이 못 치지만. 누가 더 잘 치냐고? 엎치락뒤치락 한다.
“골프는 상대와 싸우는 게 아니다. 시작과 끝을 사실상 혼자서 다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핑계 댈 게 없다”
골잡이 이동국 하면 2004년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터뜨린 발리슛 득점 아닌가. 골프에서도 ‘인생샷’이 있을 텐데.>>>
첫 이글이 아닐까. 파4 홀이었고 140m 거리의 두 번째 샷이 운 좋게 들어갔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김태훈 선수랑 같이 나갔던 라운드라서 더 짜릿했다. 프로 선수 앞에서 이글을 하다니. 김 선수가 1부 투어로 막 올라가려 할 때여서 격려 차원으로 모인 거였다. 근데 제가 눈치 없이 샷 이글을 해서 운을 다 가져가 버린 건 아닌지 미안했던 기억도 있다.
친분 있는 골프 선수가 여럿인 것 같다.>>>
김태훈 선수 아버지가 당시 피팅숍을 하셨다. 그래서 김 선수를 알게 됐다. 허인회, 문경준, 김형성, 김봉섭 선수와도 친분이 있다. 프로 선수들하고 같이 필드 가면 풀백티, 그러니까 블랙티에서 쳐야 한다. 풀백티에서 스코어? 80대는 치는 것 같다.
축구계 최고수 골퍼는 누구인가.>>>
내가 아는 한은 김기동 포항 스틸러스 감독이다. 포항에 있을 때 기동이 형이 제 골프 스승이었다고 보면 된다. 가족끼리 골프 여행도 가고 그랬다. 그 형은 언더파도 몇 번씩 쳤다. 퍼터고 드라이버고 아이언이고 그냥 다 잘한다.
반대로 축구계에서 안타까운 실력의 골퍼는.>>>
방송으로 보셨으면 알겠지만 조원희다. 내일도 라운드 나간다고 하는데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왜 나가는지 모르겠다.(웃음) (안)정환이 형도 경험이 좀 더 쌓여야 하지 않을까.
축구와 골프를 비교해 본다면.>>>
축구는 내 컨디션이 안 좋아도 동료 중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많다. 내가 안 좋아도 동료들이 잘하면 이기는 거고 반대로 내가 컨디션이 최고라도 동료들 몸이 무거우면 질 수도 있다. 그런데 골프는 상대와 싸우는 게 아니다. 시작과 끝을 사실상 혼자서 다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핑계 댈 게 없다. 그런 부분에서 유독 멘탈이 강조되는 스포츠인 게 아닐까.
유독 기억에 오래 남은 동반자는 누구인지.>>>
필드 나가면 누구와 함께하든 정말 모든 순간이 다 소중하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다양한 시각의 얘기를 들을 수 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동반자를 가리는 골퍼를 좋아하지 않는다. 주변에 전화해서 ‘이날 라운드 있는데 나갈래?’라고 물었을 때 ‘누구랑 치는데?’라고 되물어오는 사람과는 같이 치고 싶지 않다. 누가 있으면 좋고 다른 누가 있으면 못 나간다는 건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 있는 거리는? ‘이 거리 남기면 가장 자신 있다’ 하는.>>>
110m. 50도 웨지로 치면 딱이다. 꽤 잘 붙이는 편이다.
선호하는 골프용품 브랜드는.>>>
타이틀리스트를 쓰고 있다. 특히 T100 아이언이 저와 잘 맞는 것 같다.
드라이버 샷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
평균 250m(약 273야드) 정도. 정말 세게 때리면 280m(약 306야드)까지도 나오지만 필드에서 그렇게 칠 일은 없다.
((이쯤 해서 이동국을 타석에 서게 했다. 처음 3개 정도 칠 때는 230m 안팎이 찍혔는데 그 이후로 계속 250m를 가볍게 넘겼다. 제대로 몸 풀 시간도 없이 드라이버를 손에 들렸는데도 5개쯤 칠 때부터 제 거리가 나오고 공도 똑바로 갔다.))
프로 골퍼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나.>>>
이대로가 좋다. 대회에서 친다고 하면 그때부터 골프가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 같다. 23년 동안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오다가 은퇴했다. 꼭 프로 도전이 아니더라도 ‘70대 스코어를 무조건 쳐야지’ 이런 마음으로 접근하고 파고드는 것도 마찬가지로 스트레스일 것이다. 저한테 골프는 여러 사람들과 마음 편히 즐기는 스포츠다.
아마추어 골퍼로서 목표는.>>>
아웃 오브 바운즈(OB) 안 내는 거. 다들 그렇지 않나. 퍼트를 조금 더 잘 하는 것도 숙제다. 결국 스코어를 결정짓는 것은 퍼트니까. 퍼터를 바꾸는 데는 별로 관심 없다. 일자형 하나로 쭉 쓰는 중이다.
“대박이는 요새 골프 선수도 하고 축구 선수도 하면 안 되느냐고 되묻는다”
자녀들도 골프 치나. 소질이 있어 보이는 아이는 누군지.>>>
우리 나이로 아홉 살인 시안이(대박이)가 열심히 하고 곧잘 친다. 여기 매장에 와서 축구하고 타석에서 골프 연습하고 레슨도 받아보고 그랬는데 골프를 더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나중에 뭐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예전에는 축구 선수 할 거라고 했는데 요새는 골프 선수도 하고 축구 선수도 하면 안 되느냐고 되묻는다. 최근에 엄마랑 아이들이 전부 미국에 갔는데 영상 보내오는 거 보면 시안이가 필드 라운드를 꾸준히 나가고 진심으로 즐기는 것 같더라.
운동 선수 중에는 자녀가 운동하는 걸 말리고 싶어하는 부모도 많다.>>>
저는 아니다. 운동 선수의 길이 워낙 힘든 것도 있지만 공부는 안 힘든가.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하면 굳이 말릴 이유는 없다고 본다. 방송에서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게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 있는데 꼭 그런 이유는 아니더라도 어떤 일이든 특별한 노력 없이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걸 아이들이 알았으면 한다.
((15세 딸 재아는 주니어 테니스 선수다. 지난해 아시아테니스연맹(ATF) 14세 국제주니어대회 단·복식 우승을 휩쓸고 ATF 14세 이하 랭킹 1위에도 올랐다. 전 세계를 돌며 경기하는 투어 프로그램에 합류해 현재 미국에서 개인 코치와 함께 꿈을 키우고 있다.))
자녀 교육 철학은.>>>
아이들 키우면서 공부 좀 하라는 말을 해본 적 없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경험에 노출시키면서 자기가 원하고 잘하고 싶어하고 재밌어하는 것들을 스스로 찾게 했다. 남들이 잘하는 걸 보고 따라잡으려는 노력보다는 내가 기쁘게 잘하는 걸 찾아서 그 일에 있어 독보적인 최고가 될 수 있게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그쪽으로 교육한다.
드라마 ‘우영우’가 방영되기 훨씬 전에 발달장애인들을 초대해 골프와 축구 체험하는 시간을 마련했던데.>>>
비장애인과 비교해 불편함은 있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스포츠라는 것을 알려주고 이를 통해 다양한 경험으로 인도하려는 계획으로 마련했던 거다. 현재 레슨 프로와 축구 코치들 포함해서 직원이 20여명인데 의미 있는 이벤트로 어떤 걸 진행하면 좋을지 다들 신경을 많이 쓴다.
축구 중계를 많이 보나, 골프 중계를 많이 보나.>>>
원래 TV를 거의 안 보는 편이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서는 축구 중계 보는 게 정말 재밌더라. 보면서 ‘와, 축구가 진짜 힘든 스포츠구나’ ‘보는 스포츠로도 꽤 매력이 있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선수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다. 축구든 뭐든 어느 위치에서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지에 따라서 완전히 달리 보인다는 걸 실감한다.
선수 생활 중 잊히지 않을 순간은.>>>
은퇴하던 그 순간이 계속 생각난다. 프로 생활은 23년 했지만 축구 입문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치면 32년 동안 공을 찼더라. 그 세월을 마무리하는 순간이었던 거다. 90분 풀타임을 뛰고 우승을 확정 지으면서 관중석을 올려다봤는데 울컥했다.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축구장에서 이렇게 밑에서 위를 보는 건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겠구나.’
축구 해설자이기도 하다. 11월 카타르 월드컵을 전망해 본다면.>>>
16강 가려면 1승 2무는 해야 하지 않을까. 늘 첫 경기가 중요하지만 이번은 더 그렇다. 쉽지 않은 상대인 우루과이에 지지 않아야 한다. 첫 경기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축구 말고 뭘 할까.>>>
취미로 꾸준히 골프를 즐기는 가운데 테니스를 치열하게 하고 있을 것 같다.
은퇴 선수 이동국의 다음 스텝은.>>>
새로운 스포츠 종목을 최대한 많이 경험해보는 것. 선수 때 좋아만 할 뿐 직접 해보지 못했던 운동들을 다 해보고 싶다. 그런 도전들을 영상으로 남겨 유튜브 채널(‘이동방송국’)을 통해 공유하고 있다. 유튜브를 하려면 아무래도 그냥 하는 것보다 준비를 더 열심히 해야 할 테니 그런 면에서 효과가 있다.
PROFILE
출생: 1979년 I K리그 데뷔: 1998년
통산 득점: 548경기 228골(A매치 105경기 33골)
주요 수상: 2000년 아시안컵 득점왕,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득점왕, K리그 MVP 4회
양준호 기자 ·정문영 기자 사진=성형주 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