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 스튜디오에 앉은 어떤 사람 Y
오직 하나뿐인 그대
윤상은 스튜디오에 앉아서 쉬지 않았다.
세상엔 참 다양한 음악가들이 있지만, 상당수를 ‘록스타형’과 ‘스튜디오형’으로 나눌 수 있다. 록스타들이 무대 밖에서 활개를 칠 때, 스튜디오형 음악가들은 무대에서도 진지하게 음악을 ‘잘 연주하는 것’에 더 집중한다. 우리나라에서 록스타형 음악가들이 더 조명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진지하고 성실한 음악가들이 존경을 받는 것은 일단 좋은 일이다. 윤상이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그에게도 조금 다른 시절이 있었다. 갖고 싶던 신시사이저를 살 만한 금액을 계약금으로 준다는 말에 덜컥 계약하고 데뷔 음반을 냈던 1990년이었다. 치렁치렁한 머리, ‘도시적 우수’를 담은 목소리와 눈빛으로 그는 단시간에 스타가 되었다. 그리곤 예능 방송에 출연하면서 말 그대로 스타의 길을 걸었다. 어쩌면 ‘한국의 사카모토 류이치’ 같은 것을 스스로도 생각했을까? 훌륭한 아티스트지만 방송에 나오면 웬만한 개그맨들보다 과격하게 망가지는 사카모토가 주는 매력적인 ‘갭’이, 90년대 초반 윤상에게서도 보였다. 그리고 한국의 많은 음악가들이 경력을 전환하는 방식대로, 입대. 1996년 제대 후 활동을 재개했지만 TV에서 그를 이전처럼 보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는 보다 ‘스튜디오형’에 가까워졌다.
윤상은 그의 나직한 보컬처럼, 라디오에서 적당히 수줍은 듯 말하는 말투처럼, 조용했다. 남들처럼 자신의 기획사를 차리거나, 후배들을 데뷔시키거나, 방송에 나와 입담을 과시하거나, 어린이 음반 기획자가 되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규모 스펙터클이 쏟아지는 공연을 열거나, 프라모델이 가득한 집을 공개하는 것도 아니었다. 은둔자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행보는 요란하지 않았다. 드문드문, 그러나 꾸준히 자신의 음반을 내는 것과 별개로, 라디오 DJ를 제외하면 ‘가수’보다는 ‘작곡가’인 경우가 많았다. 타인의 음반에 곡을 수록하고, 음반 이외의 음악감독을 하더라도 다른 유명 작곡가들이 그리 많이 시도하지 않는 게임이나 다큐멘터리 등이었다.
조용하다고 훌륭한 음악가는 아니다. 중요한 건 조용한 가운데 뭘 하느냐다. 2008년 발매된 < Song Book > 앨범은 윤상에 대한 후배들의 트리뷰트 앨범처럼 보이는 일면이 있지만 ‘Play With Him’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윤상이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존경받는 선배’를 위해 ‘후배들’이 동원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윤상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윤상과 다른 아티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인 모양새였다. 이후 그는 익히 알려졌듯 2009년 일렉트로닉 트리오 모텟(mo:tet)을 결성해 잠시 활동했고, 최근에는 프로듀스 팀 원피스(One Piece)를 조직해 러블리즈의 곡을 담당했다. 당연히 세 기획 모두 윤상이 전면에 노출됐고 그로 인해 보다 많은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그 작업의 실체는 윤상이 일대 다로 맺는 파트너십에 가까워 보였다.
아이돌을 중심으로 보면 이런 선택의 이유를 좀 더 선명하게 짐작할 수 있다. 아이돌 시대 이전의 아이돌이라 할 만한 강수지를 만들어낸 것이 윤상이었다. 이후에도 알로,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가인, 아이유, 레인보우 블랙 등의 음반에서 그의 곡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각자 가수들의 팬덤에게 상당히 사랑받았고, 때론 팬덤에 자부심을 더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상업적 성공과는 조금씩 거리가 있었다. 당대 윤상 음악세계의 상당 부분이 쏟아져 들어가면서 가수 자체의 매력의 중심을 구성했던 강수지만이 예외였다. 말하자면 이후의 아이돌계에서 히트하기에는, 윤상의 곡이 뭔가 부족하다는 판단의 근거일 수도 있다.
물론 음악적인 결함이 아닌 성향 문제일 테다. 가인의 < Step 2/4 > 미니앨범에는 윤상의 오리지널인 ‘진실’과, 그것을 이민수가 재작업한 ‘돌이킬 수 없는’이 함께 수록돼 있는데, 이를 비교해 들어보면 확실한 차이가 난다. 한편 원피스가 프로듀스한 러블리즈의 < Hi~ > 앨범 수록곡들은 다르다. 어떤 곡은 ‘더 윤상 같고’ 어떤 곡은 ‘덜 윤상 같다’고 해도 될 정도로, 윤상은 그의 지문을 선명하게 남겨 두었다. 하지만 곡들은 대부분 어느 아이돌의 음반에 들어가더라도 납득할 만한 지금 아이돌의 ‘뭔가’를 갖고 있다.
그렇게 윤상의 파트너십은 그에게 부족할 수 있는 부분들을 다른 이들에게 공급받아 현재성을 확보하고, 윤상이란 플랫폼에 다른 이들을 올려 태운다. 다른 음악가를 지휘하거나 키워주는 형태와는 사뭇 결의 차이가 있다. 90년대를 풍미한 많은 아티스트가 있고 그들 중 많은 이가 여전히 좋은 음악을 하지만, 윤상처럼 활동하는 이는 없다.
그가 존경받는 것은 ‘스튜디오형’ 음악가이기 때문이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그는 ‘음악만 하고 살고 싶어요’라며 조용히 앉아있지 않았다. 90년대와는 다른 음반 시장 상황에 좌절해 다른 방향성을 찾거나, 자신의 나이 듦을 투정하지도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그의 답은, 무대의 조명이 닿지 않는 곳으로 다른 사람들을 불러들였다가 내보내며 자신을 갱신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계속해나가기 위해서. 어쩌면 아이돌 음악이야말로 그의 오랜 꿈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윤상은 스튜디오에 앉아 있다.
글. 미묘(음악가, 'idology', 'we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