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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낭만의 도시 춘천으로 떠나는 봄맞이 근교여행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겨울을 맞이했던 것도 잠시였다. 캐롤과 함께였던 크리스마스도, 떡국과 함께했던 설날도 모두 지나갔다. 아직 길가에 꽃은 피지 않았지만, 꽃내음은 가득하다. 학사모를 쓴 이들의 손에 쥐어진 꽃다발이 대학가를 밝힌다. 학교를 떠나는 선배들을, 동기들을, 후배들을 보는 나에게, 꽃의 향기는 그리움이다. 매년 그렇듯, 그들을 보내는 아쉬움이 새로운 이들에 대한 반가움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계절도 그러하다. 첫눈을 기대하며 맞이했던 겨울도 끝자락에 들어섰다. 단돈 천원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던 붕어빵을 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따사로운 봄볕과 싱그러운 봄내음 한껏 뿜어내며 길가에 필 꽃들에 대한 기대 속에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해본다.

예술과 낭만의 도시 춘천으로 떠나는

예술과 낭만의 도시 춘천으로

걸음걸음 마다 봄향기 뽐낼 나들이 장소를 찾던 중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다. 청량리역에서 약 한 시간 밖에 소요되지 않는 곳이었다. 봄이면 떠나는 MT 장소로 빠지지 않는 곳이지만, 혼자서는 내디뎌 본 적 없는 곳이었기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이었다. 이름부터 청춘스러운 'ITX-청춘'을 타고 향한 곳, 바로 '춘천'이다.

김유정 문학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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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X를 타고 춘천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김유정 역이었다. 김유정 역은 최초로 역명에 사람의 이름을 새겨 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역이다. 29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며, 김유정의 작가 생활은 단 2년에 그쳤지만, 역명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고향을 대표하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여전히 춘천 속에 살아 숨쉬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경춘선에서 내려 김유정 역을 나와 철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걷다 보면 유정이야기숲이 나온다. 유정이야기숲의 입구를 지나 옛 경춘선무궁화호가 달리던 기찻길을 걸어보았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처럼, 떨어지지 않고 기찻길 위 선로를 걸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으로는, 과거엔 내가 서있는 철로를 달렸을 무궁화호 열차가 이제는 유정북 카페가 되어 멈춰있는 것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김유정뿐만 아니라 강원도 출신 문인들의 책들이 배치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정북카페 맞은편으로는 과거 속에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구)김유정 역이 있었다. 역 안에 있는 비디오 테이프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간이역을 지키던 역장님들의 흔적들과 함께, 누군가에게는 잊혀져가던 간이역의 추억을, 누군가에게는 겪어보지 못했던 시대를 보여주는 간이역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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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김유정역 다음으로 향한 곳은 김유정 문학촌이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 구입 후 김유정의 생가로 향했다. 문을 넘어선 순간 가장 먼저 맞아준 이들은 소설 동백꽃의 주인공들이었다. 김유정 생가 안에는 동백꽃 이외에도 봄봄의 상황이 재연된 동상도 볼 수 있었다. 설치된 동상들이 마치 손위에 책을 올려놓고 걸음을 내딛는 것처럼 소설 속 향수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김유정 기념 전시관 안에서는 소설가 김유정에게 생소한 사람이라도 문학촌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끔, 생애와 작품설명 등이 자세히 전시되어 있었다. 기념 전시관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부담 없이 김유정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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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생가를 나와서는 김유정 이야기집으로 향했다. 그의 소설로 인해 만들어진 또 다른 예술세계들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김유정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는 영화, 연극, 오페라, 애니메이션, 무용극은 물론 게임과 광고로 변주되어 우리 곳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유정 이야기집 안, 몇 번이고 나의 발걸음을 향하게 한 곳이 있었다. 자리를 떠난 후에도 다시 발길을 돌리기를 반복했다. 바로 옛날 전화기가 놓여 있는 테이블이었다. 의자에 앉아 테이블 위 수화기를 귀에 갖다 대면 성우들이 재연해 놓은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한쪽 수화기에선 이상이 김유정을 찾아와 동반자살을 제의했던 날의 대화가, 다른 쪽 수화기에선 김유정의 사랑을 매정하게 거절하는 박녹주와의 대화가 녹음되어 있었다. 생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으려는 김유정이, 완강한 박녹주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외쳤던 김유정이, 수화기 저편에 있을 것만 같았다. 단편문학의 최고봉이라고 일컬어지는 김유정이라는 소설가가 가장 보통의 사람답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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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이라하면,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문인이지만, 그동안 나에겐 시험을 위해 공부해야 했던 대상일 뿐이었다. 당연히 고등학교 졸업 이후 잊혀져 가던 존재였다. 하지만 수능을 위해 소설 속 의미를 해석해가던 그때는 알지 못했던 김유정의 모습이 보였다. 김유정 문학촌 방문을 통해, 멀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30년대 문학작품과 문인에 이토록 호기심을 느끼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20살의 나이에 사랑을 외쳤던 김유정을, 20대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고통받았던 김유정을, 교과서 속에선 알 수 없었던 그의 삶을 알고 싶게 만든 시간이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세상에 서툴었던 것은 그 시대 청년도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 조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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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문학촌 다음 목적지는 KT&G 상상마당 춘천이었다. 상상마당으로 가기 전, 근처에 자리잡은 공지천 조각공원에 들러보았다. 아직 공원나들이를 나오기에는 꽤 쌀쌀한 2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춘천시민들이 가족, 연인, 친구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공원 내에는 곳곳에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김수학의 <동심>, 김의웅의 <풍경>, 유영교의 <결실> 등 총 29개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이곳에서도 김유정 문학비가 설치되어 있어 문학촌에서의 여운을 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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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가득 채운 벚꽃나무들을 보면서는, 바람에 흩날릴 벚꽃잎들을 맞을 봄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봄꽃이 만발할 때는 공원 일대의 강변을 채운 벚꽃나무들을 따라 걸어도 좋을 듯 싶었다.

KT&G 상상마당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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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조각공원에서 20분 남짓한 거리를 걸어 도착한 춘천나들이의 종착지는 상상마당 춘천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 주는 의암호를 옆에 두고 있었다. 상상마당 춘천은 주변 경치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예술이 가득한 낭만이 흐르는 곳이었다. 벽돌건물 특유의 느낌 또한 이곳의 운치를 더했다.

 

손끝에 닿는 벽돌의 감촉을 느끼며 상상마당에 들어가자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누구나 연주할 수 있도록 마련된 피아노는 벽돌로 쌓인 공간을 울리며 상상마당을 찾은 사람들의 발길을 잡고 있었다. 이 피아노 또한 작가의 '작품'으로서 상상마당을 찾은 이들과 소통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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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에서는 '트렌드에 맞는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디자이너들에게 홍보 및 판매의 기회를 제공하여, 국내디자인사업의 육성 밑거름'이 되고자 함을 추구하는 '디자인스퀘어'가 보였다. 독립디자인 브랜드 및 신진 디자이너들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접할 수 있는 일상제품부터 패션소품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다양한 제품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방문 당시에는 '근원의 조각' 전이 한창이었다. 세상을 지탱하는 근원적 물질인 '흙, 돌, 나무' 본연의 아름다움을 쥬얼리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쥬얼리에서는 흔히 접할 수 없는 소재이지만, 쥬얼리라는 일상의 제품을 통해 일상 속에서 예술품을 만날 수 있게 했음에 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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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이어진 복도를 따라 올라간 갤러리에서는 지난 1월 26일부터 오는 3월 19일까지 '상상BOX 인디살롱'이 진행 중이다. 독립출판물과 인디레이블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마켓형 기획전이다. 갤러리 안은 '정보•조언', '웃음•해학', '위로•격려' 등의 다양한 주제별로 나뉜 작품들 옆으로 CD플레이어와 테이블을 놓아 출판물과 레이블들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대형 서점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색다름에 발길을 멈추고 테이블에 앉아 책을 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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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다리를 건너 넘어간 갤러리에는 'ART SHOP'이 마련되어 있다.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진행한 시각예술 장르 전시의 아트상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굿즈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독립출판물을 만나볼 수도 있다. 이외에도 신진작가들과 다양함에 대한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상상마당 답게 열정, 패기, 신선함을 담은 신춘문예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따스한 햇살 아래 봄꽃들이 세상을 물들였을 때 더 아름다울 춘천이었다.

 

자연이 주는 휴식과 위안을 만끽하고 싶을 때, 예술이 주는 낭만과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을 때, 김유정의 소설 속으로, 벚꽃과 어우러질 조각공원 속으로, 자연과 예술이 함께하는 상상마당 속으로 들어가 보기를, 누구나 편히 찾을 수 있는 장소, 춘천의 감성을 더 많은 이들이 느껴보기를 바란다.

 

글. 김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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