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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즈데이 프로젝트 Vol.5 고상지 소극장 콜라보

수요일엔 빨간 탱고를

매주 수요일, 고상지가 반도네온을 품에 꼭 안는다.
웬즈데이 프로젝트 Vol.5 고상지
도쿄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80년대 훵크/AOR 음반 커버에 캘리포니아 또는 중남미 지역을 동경하는 듯한 야자수, 해변 등의 요소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신기하게 여긴 적이 있다. 본래 훵크는 도시의 거리나 공연장이 더 어울리는 음악일 테지만, 일본 훵크의 선구자들에겐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워낙 도쿄가 대도시인 탓이었을까? 거기서 벗어나려는 의지 정도로 이해하곤 했다. 하필 더운 곳을 찾았다면 그보다 가까운 태평양의 섬이나 동남아의 열도도 있었을 테지만, 완전히 지구 반대편의 그 먼 곳으로.

맥락이 좀 다르긴 해도 고상지의 음악에서 비슷한 모험심을 느낀다. 반도네온이란 악기 자체가 워낙 서울과 동떨어진 곳에서 주로 쓰인 탓이기도 하나, 멜로디나 곡의 전개에 어떤 호기심이 보인달까? 하기야, 웬만한 용기가 아니었다면 반도네온이란 악기를 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상지는 애니메이션 마니아다. 첫 정규음반 < Maycgre 1.0 >의 속지 문구에 따르면, 그녀는 수록곡들을 “대부분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과 장면으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작업”했으며, “암호 같은 낯선 이름의 앨범 제목(maycgre)은 곡에 영감을 준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이니셜 조합으로 탄생되었다.” 여전히 탱고를 연주하는 채로, 음악가가 아닌 자연인 고상지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음악에 묻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반도네온을 처음 접하게 된 이유가 < 드래곤퀘스트3 >의 OST 때문이었다니, 안 그래도 격정적인 탱고가 더욱 흥미진진하게 들린다. 일본 게임과 애니메이션 OST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칸노 요코의 < 대항해시대 > OST가 문득 떠오르는 순간.

이제 겨우 첫 음반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이미 고상지는 반도네온을 떠올렸을 때 반사적으로 생각나는 이름이 되었다. 물론 탱고를 무척 아끼고 그래서 탱고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은 그녀 전에도 있었다. 그들이 탱고란 장르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국내에 새로운 종류의 음악을 정착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면, 고상지는 그런 탱고의 기반을 더욱 탄탄히 다지는 동시에 꾸준히 타 장르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무대에 올랐다. 김동률이나 정재형 같은 ‘빅 네임’과의 협업과 함께 고상지 밴드를 결성해 전국의 공연장을 방방곡곡 쉴 틈 없이 누볐다.

물론 여전히 고상지는 탱고 곡을 쓰고, 반도네온을 연주한다. 재즈와 마찬가지로 탱고 역시 ‘스탠다드’를 연주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관객들은 아름다운 원곡을 듣는 만큼 뛰어난 창작곡을 기대하기 마련. 연주자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상지의 음반에선 부담감보다 그런 ‘스탠다드’의 벽조차 이겨내겠다는 기백이 보인다. 얼마나 많은 연주자들이 재즈에서 비스듬히 비껴난 ‘재지’ 또는 ‘퓨전’이라는 형용사 뒤에 숨어 모호한 음악을 연주해왔는지를 떠올려보면 쉽다. 그녀가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반도네온 연주자가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취가 깃든 탱고 음악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바, 그 결실은 그녀의 음반에서 속속들이 드러난다. 장르의 음악적 특질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규칙이나 구성 대신 몸이 먼저 체감하는 ‘그루브’와 화성에서 알아채는 법. 고상지의 음악은 다름 아닌 탱고임에 확실하다.

한편 반도네온과 탱고에선 반사적으로 시각적인 경험을 기대하곤 한다. 대체 뭘 누르고 얼마나 부풀리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악기의 움직임, 반도네온이 부채처럼 커질 땐 입을 슬쩍 벌리고, 작게 오므라들 땐 그 주름을 따라 미간을 찌푸리는 연주자의 얼굴, 그리고 그 음악만큼 뜨거운 탱고 춤까지. 사실 제대로 본 적도 없으면서 상상은 그렇게 멀리까지 뻗친다. 그러니 탱고에 대해 잘 알든 잘 모르든, 공연장이야말로 탱고를 맛보기에 가장 적절한 곳이 아닐까?
웬즈데이 프로젝트 Vol.5 고상지
7월 1일부터 (7월 29일을 제외한)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 고상지 소극장 콜라보 >에서 그녀는 5번의 공연을 연다. 요일과 횟수에서 짐작할 수 있듯, KT&G 상상마당의 < 웬즈데이 프로젝트 >의 다섯 번째 뮤지션으로 선정된 것이다. 고상지에게 낯선 무대는 아니다. 이미 < 웬즈데이 프로젝트 >의 첫 번째 주자였던 최고은의 공연에서 합동 공연을 펼친 적이 있어서다. ‘콜라보’라는 이름을 붙인 만큼 여러 뮤지션과의 협업이 예정되어 있다. 지난 5월에 내놓은 싱글 < Koh Sangji X Voice Exp.1 >에서 ‘Good Night’을 부른 연진(라이너스의 담요)과의 첫 무대를 시작으로, 하림과의 반도네온 앙상블, 드럼을 더한 고상지 밴드, 다시 < 웬즈데이 프로젝트 >로 돌아온 최고은, 클래식 기타리스트 서정실과의 듀엣 공연 등등. 면면이 서로 완전히 다른 만큼, 다섯 번의 연이은 무대엔 다섯 종류의 각기 낯선 탱고 선율이 드러날 것이다. 앉아서든 서서든 탱고 춤은 관객의 몫인 채로.

글. 유지성(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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