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 선진국으로 향하는 마지막 고비
1.
요즘처럼 한국에 가고 싶은 적이 또 있었던가 싶다. 위대한 혁명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우리 인생에 이런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명예혁명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떨린다.
2016년 촛불혁명이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되면, 모르긴 해도 세계사에 가장 위대한 혁명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백 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온 친일독재부패보수 기득권 세력의 수장이자 아이돌 같은 상징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끌어내리는 믿지 못할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두 살배기 어린아이, 백 살 된 할머니가 광장에 함께 나온 사례를 11월 촛불항쟁 아니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할 것이다. 정말 위대한 시민들이다.
2.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위대한 심성과 지성과 이성을 가지고 있는데, 왜 그동안 그토록 자기 비하에 시달렸는지 모르겠다. 앞서 언급한 친일독재부패보수 기득권 세력의 공작에 많은 이들이 속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광장에서 선 시민들이 속았다고 속속 증언하는 바다.
국민들을 속이는 공작의 가장 유력한 기제는 빨갱이(종북) 색칠과 지역, 세대 편 가르기다. 공작에 영혼을 빼앗긴 이들이 목소리를 드높였고 그 목소리에 편승해 박의 무리는 온갖 패악질과 부패를 일삼아왔다. 깨어 있는 대다수 시민들이 자기 비하감에 젖어 드는 것은 당연한 일. 그것은 정치 혐오로 귀결된다. 정치혐오보다 더 무서운 것은 패배주의와 자기 비하다. “헬조선” “이민 가고 싶다”는 말이 안 나오면 이상하다.
3.
나처럼 외국에 살아보면 안다. 한국의 위상이 지난 10년 사이에도 엄청나게 높아졌다. 외국 사람들은 코리언을 딱 알아본다. 예전에는 사우스코리아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고, 알아도 중국의 한 변방으로 취급하던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한국 사람만 만나면 한류 아이돌 그룹과 드라마를 이야기한다. 메이드인코리아가 ‘고급’으로 통한 지는 오래됐다. 메이드인코리아 딱지만 붙이면 같은 물건이라도 값이 오른다.
그런데, 딱 하나 부족한 것이 남과 북의 정치문제였다. 외국 사람들은 처음에 세월호 사태가 북한에서 벌어진 줄로 알고 있었다. 남한이라고 하니 입을 딱 벌렸다.
대형 사고야 어디서나 터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고를 어떻게 수습하고 희생자를 어떻게 대우, 위로하느냐 하는 것이 그 나라의 수준을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박의 정부는 최저, 최악이었다. 세월호 사태에 대해서는 외국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말해도 사우스코리아가 그랬으리라고 믿지 않는다.
4.
고급 이미지와 최악의 정치. 바로 그 간극 때문에 외국 사는 나 같은 한국 사람은 괴로웠다. 박으로 대표되는 무리가 만들고 이용해온 저 저열한 정치문화, 사람들을 자기 비하에 빠뜨리는 바로 저거 하나만 바뀌면 정말 대단한 나라, 행복한 나라가 될 것 같은데 시대를 거꾸로 돌리는 반동의 세력은 너무나 간교하고 강고했다.
캐나다라고 모든 것이 다 좋은 천국이 아니다. 그저 상식이 보편적으로 통하는 나라일 뿐이다. 따지고 보면, 박의 무리 때문에 한국 문화에 요구되는 바로 그 평범한 상식이 통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괴로워하고 자조하고 자기를 스스로 깎아내렸던 것이다. “씨발, 우린 안 돼” 하고 자기 비하하는 사람들이 문화 시민으로서의 품격이고 나발이고 챙길 여유가 어디 있나.
5.
이제 촛불혁명은 8부 능선쯤 넘어선 것 같다. 박의 무리를 끌어내리는 것은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 긴장 늦추지 말고 반동세력의 역습을 차단하면서 단단하게 밀고 나가면 캐나다 부러워할 일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외국살이를 동경한다는데, 그래도 부모 형제 있는 내 나라가 살기 편하고 돈 벌기도 수월하다. 한국에서는 죽겠다 죽겠다 하지만, 외국 나오면 진짜 죽는 수 있다.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의 공기마저도 ‘기득권’이다.
마지막 고비 잘 넘기고 촛불혁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한국은 진짜 선진국으로 금세 접어든다. 부패한 정치와 정경유탁 같은 것 빼고 나머지 조건은 다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자부심이 자조와 자기 비하를 대신할 터이니 문화와 시민 의식의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그리되면 한국으로의 역이민이 줄을 이을 것이다. 이민은 조금 더 살기 좋은 나라로 가는 것.
필자 성우제 페이스북
옛 시사저널 창간 멤버로 기자 생활 시작. 주로 문화부에서 일하다가 13년 만에 사표내고 캐나다로 이민. 토론토 생활 15년째. 《단행본 느리게 가는 버스》 《커피머니메이커》 《외씨버선길》 《폭삭 속았수다》 《딸깍 열어주다-멋진 스승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