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복수극의 원조 ‘701호 여죄수 사소리’
연인에게 배신당하고 감옥에 들어간 사소리(카지 메이코)는 강간과 구타를 당하는 등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겪는다. 남자밖에 없는 간수들은 죄수들을 폭력적으로 대하고, 소장의 총애를 받는 몇몇 죄수들은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주황색 죄수복을 입고 감옥 일을 도우며 권력을 얻는다.
감방 동료와 탈옥을 시도한 사소리는 다시 잡혀 들어와 고통받는다. 그러던 중 교도소 안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사소리는 그 틈을 타 탈옥해 배신한 연인과 그의 동료들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이토 슌야의 〈여죄수 사소리 1 – 701호 여죄수 사소리〉는 일본 장르 영화 중 여성 복수극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주연을 맡은 카지 메이코는 〈여죄수 사소리〉 시리즈에 이어 〈수라설희〉까지 출연하며 후대에 등장할 대부분의 여성 복수극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당연하게도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을 보면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여죄수 사소리 1 – 701호 여죄수 사소리〉 역시 다른 여성 복수극과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멋지고 잔혹한 여성 캐릭터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폭력과 착취의 과정을 거친다. 주인공이 여성 캐릭터라는 이유로 이러한 폭력은 대개 성적인 폭력으로 이어진다. 많은 여성 복수극 영화가 여성 캐릭터의 행동 동기를 만들어낸다는 이유로 폭력의 과정을 전시한다.
〈여죄수 사소리 1 – 701호 여죄수 사소리〉의 러닝타임은 87분으로 절반 이상을 주인공과 감옥의 여죄수들이 겪는 폭력을 전시하는 데 소비된다. 물론 이 영화 속 사소리라는 캐릭터는 폭력을 당하고만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다른 죄수들에게 뜨거운 국을 쏟는 등의 복수를 하기도 하고, 그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유도해 간수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한다.
폭력과 착취의 전시 사이사이 등장하는 이러한 장면은 사소리라는 냉철한 복수심을 품은 캐릭터를 쌓아가는 도구가 된다. 하지만 너무나도 많고 긴 폭력들 대신 복수의 비중을 늘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의 후반부가 되고 나서야 사소리의 본격적인 복수가 시작된다.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검은 롱코트와 큰 페도라를 쓰고 배신한 연인과 그의 동료를 찾아가 잔혹하게 살해하는 장면은 여성 복수극의 인정처럼 남았다.
저예산에 어딘가 쌈마이하지만 수많은 관객에게 각인된 그 이미지는 영화를 비롯한 많은 매체에서 반복되었다. 상술한 〈킬 빌〉을 비롯해서 박찬욱의 〈친절한 금자씨〉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화에서 그 영향력을 찾아볼 수 있다. 부천영화제를 통해 그 원전을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어 즐거웠지만, 초-중반부의 긴 착취의 전시가 주는 불편함은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 보는 영알못. 영화 블로그에 이런저런 감상들을 써보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