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주택에서 결정적으로 좋은 점이 뭐냐면요
1.
제가 목조주택을 지어 살고 있으면서도 모순적이게도 목조주택에 대해 안좋은 얘기들을 줄줄이 썼는데요. 결정적으로 좋은 점이 하나 있으니, ‘내진’입니다.
흙막이가 붕괴하며 건물이 기울어졌던 상도유치원, 기울어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울어진 쪽은 1층이 아주 폭삭 내려앉았고, 넓은 건물기초의 중간이 개미허리처럼 뚝 부러져 있는 장면을 보셨을 겁니다. 보기만 해도 섬칫하죠?
목조주택은 정말, 정말로 어지간해선 그런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지진 등으로 지반이 붕괴되었을 때 건물이 왕창 내려앉는 것은 지진의 진동 때문이 아니라 건물 자체의 자중(자체 무게)가 엄청나서입니다. 엄청난 무게를 버티고 있는데 밑이 무너지니까 내려앉는 거고요. 무게를 제외하고 생각하면, 지진이 났을 때 사람은 비틀거려도 서 있는데 사람보다 버티는 힘이 압도적으로 강한 콘크리트 건물이 내려앉는 건 말이 안 되죠. 사실 건물이 무너지는 건 진동보단 대부분 자체 무게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진 났을 때는 신속히 건물 밖으로 나가라고들 하는 겁니다.
1994년 Northridge 지진 때문에 파괴된 목조건물 주택. 상당히 일그러졌지만 집 자체는 가라앉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 출처: Earthquake Safety.com |
목조주택은 그렇게 내려앉지 않습니다. 같은 규모일 때 목조주택은 콘크리트 주택에 비해 자중이 수십 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내려앉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건물기초가 부서져 건물이 쩍 갈라지는 경우도 드뭅니다. 미국에선 기초 고정을 제대로 해놓지 않은 목조주택이 허리케인에 통째로 떠밀려가기도 하는데, 무너지지 않고 그 형태 그대로 밀려간 사례들이 아주 많습니다. (물론 제대로 고정하지 않은 것도 역시 부실시공입니다만, 그렇게 부실시공한 경우에도 집 자체는 무너지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죠)
2.
목조주택이 지진에 강한 것은, 단지 구조체가 가볍다는 이유 외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목구조는 콘크리트 구조에 비해 탄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강한 충격에도 쩍 갈라지거나 뚝 부러지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지진 충격에도 탄성으로 튕기기 때문에 잘 부서지지 않는 거죠. 이런 이유로 목조주택은 강풍에도 강합니다.
물론 지진으로 지반이 내려앉거나 기울면 집이 무너졌든 안 무너졌든 어차피 집은 못 쓰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무너져내리지만 않으면 안에 있는 사람이 훨씬 안전하다는 겁니다. 설령 지진을 못견뎌 구조가 부서지는 경우에도, 완전히 무너져내리지는 않고, 또 일부가 무너져도 콘크리트 구조물에 비해 사람이 즉사할 정도의 무거운 부재가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목조주택 구조에는 보강철물들을 적절히 사용해주면 구조의 강성이 대폭 높아져 지진에 더더욱 강해지는데요. 아쉽게도, 국내의 목조주택 목수들은 이런 보강철물 사용을 극히 꺼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로지 못질만으로 구조체 조립을 끝내버리죠.
목조주택 작업에서 못질은 망치가 아니라 타정기(프레임 네일러)로 쏘는데(망치는 재밌게도 대부분 못 뽑을 때만 씁니다), 이 프레임네일러는 정확한 위치에 쏘지 못하고 상하좌우로 상당한 오차가 생기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두꺼운 철판으로 된 철물에 있는 못구멍을 맞출 수가 없고, 따라서 손으로 못을 쳐야 하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무지하게 느려집니다.
그런데 국내의 목수들은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이, 미국에는 이런 철물 전용의 타정기가 있습니다. 행어 네일 건(Hanger Nail Gun), 더 정확하게는 메탈 커넥터 네일러(Metal Connector Nailer)이라는 것인데요. 일반 타정기 프레임 네일러와 달리 철물의 작은 못구멍에 맞춰서 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걸 쓰면 보강철물 작업이 획기적으로 빨라집니다. 그런데 국내 목수들 대부분은 존재조차 모릅니다.
이렇게 생긴 녀석 / 출처: Paslode |
저는 집을 지으면서 외관이나 편의성보다도 내구성을 최고의 목표로 잡았기 때문에, 당연히 보강철물을 엄청나게 많이 썼습니다. 보강철물 자체는 얼마 안 합니다. 전부 다 해도 그 자재비가 수십만 원 정도밖에 안됩니다. 문제는, 역시 골조작업을 할 목골조팀에서 보강철물 작업을 꺼린다는 거죠.
그래서 위에서 말한 행어네일건과 전용 못을 미국에 주문해서 골조팀에 ‘선물’했습니다. 신세계라고 매우 즐거워하며 그 많은 철물을 다 박았답니다. 저희집에 다 쓰고나선 기분 좋게 챙겨갔답니다. 그 행어네일건과 전용못에 총 60만원 정도 썼습니다. 제 집 지으면서 가장 보람차게 썼던 비용들 중의 하나였죠.
아들들한테 장담을 했습니다. 지진이나 태풍으로 이 동네 집들이 다 무너지고 마지막에 한채가 남는다면 그건 우리집일 거라고요.
필자 박지훈 (블로그)
가평 사는 시골 SW 개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