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부자는 많습니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 나보다 나이라도 많으면 그나마 위안을 삼을 텐데, 어린 나이에 억만장자가 된 어린 부자들의 소식도 종종 들려오죠. 지난해에는 킴 카다시안의 이복동생 카일리 제너가 22세의 나이로 약 1조 원의 재산을 일구며 여성 최연소 부자에 등극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카일리 제너의 재산도 이 사람 앞에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2016년, 15세의 나이에 13조 원을 물려받으며 전 세계 최연소 갑부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 영국의 휴 그로스베너 공작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로스베너 가문은 영국에서 손꼽히는 귀족 가문입니다. 휴 그로스베너의 아버지 제럴드 그로스베너는 6대 웨스트민스터 공작, 어머니 나탈리아 필립스는 러시아 시인 푸시킨의 직계 자손이죠. 또한 휴의 첫째 누나인 타마라 그로스베너는 윌리엄 왕자의 가장 친한 친구인 에드워드 밴 컷셈과 결혼한 바 있습니다.
91년생인 그로스베너 자신은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사이에서 태어난 조지 왕자의 대부입니다. 아버지인 제럴드 그로스베너가 갑작스레 타계하면서 공작 작위도 물려받아, 이제 제7대 웨스트민스터 공작이 되었죠.
그가 가늠이 어려울 정도로 큰 재산을 물려받으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도 부친인 제럴드 그로스베너가 2016년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부터입니다. 그가 물려받은 유산은 런던 부촌에 자리한 대지와 부동산 회사인 ‘그로스베너 그룹’ 등인데요. 이 모든 것의 가치를 모두 합하면 총 93억 파운드, 한화 약 13조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당시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이 상속으로 휴 그로스베너 영국에서 3번째, 전 세계에서 68번째로 많은 재산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보도했고, <블룸버그>는 400대 부호 리스트에 그의 이름을 올렸죠. 항간에는 “런던 땅의 절반이 그의 소유”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휴의 아버지 제럴드 그로스베너는 아들이 그렇고 그런 상속자들처럼 망가지지 않기를,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휴가 태어난 직후 “가장 긴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다. 그러나 그것만 빨면서 인생을 보낼 순 없다”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죠.
이런 아버지의 교육관 때문인지 휴 그로스베너는 귀족 자제들이 선택하는 비싼 사립학교 대신 자택 인근의 공립학교를 다녔고, 뉴캐슬대를 거쳐 커피 찌꺼기를 친환경 연료로 만드는 ‘바이오 빈’이라는 스타트업에서 회계사로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아버지 마음에 쏙 드는 아들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12년에는 자신의 21세 생일파티에 무려 5백만 파운드(한화 약 74 74억 원)을 쓰며 각종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죠. 또한 클럽에서 여성들과 파티를 즐기는 모습도 자주 포착돼 ‘바람둥이 억만장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의 재산은 상속 이후에도 계속해서 불어났습니다. 상속 당시 93억 파운드였던 그의 재산은, 2019년 5월 발표된 <선데이 타임즈 리치 리스트>에 따르면 101억 파운드까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죠. 그는 또한 전 세계에서 30세 미만 중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가 소유한 주택은 무려 6,782채입니다. 그러나 이 중 411채가 빈집으로 남아있어 주택난에 시달리는 서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반면 작년 4월, 그로스베너는 자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대응을 위해 1250만 달러 (약 153억 4250만 원)을 기부하며 이전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는 “그로스베너 에스테이트에 있는 직원과 가족들을 대신해 뛰어난 NHS 직원들과 의료 최전방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라고 전하며 영국 자선 단체에 기부한 사실이 알려지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 사례로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철부지 같은 이미지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바람대로 커가고 있는 듯한 그의 행보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