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하면서도 놀랐다 “우리나라 고액 체납자가 어느 정도냐면요”
대한민국 헌법 제38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가 부과하는 세금의 의무를 이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돈이 많은 자산가일수록 납세의 의무를 피하려 든다고 합니다. 특히 2억 원 이상의 세금을 내지 않은 고액 체납자가 약 3만 명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어떤 이야기인지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2억 원 이상의 세금을 1년 이상 내지 않은 고액 체납자는 3만 8천여 명입니다. 고액 체납자들이 내지 않은 세금은 37조 원에 달하는데요. 이는 지난해 서울시 1년 예산인 31조 원 보다 더 많은 액수입니다. 전체 체납 발생 금액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2018년도 총 체납 발생액은 29조 623억 원으로, 2015년(26조 5857억 원)에 비해 9.3% 증가했습니다.
특히 고액 체납자들은 서울·경기 등의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었는데요. 경기 용인, 고양, 수원, 성남, 서울 강남 순이었습니다. 특히 국내 대표적인 부촌으로 꼽히는 강남 3구는 강남구 중에서도 세금 체납액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지방국세청이 각 구별 체납액을 살펴본 결과 강남 3구에 39%가 몰려있었는데요. 2억 원 이상을 상습 체납한 사례의 3분의 1이 강남 3구로 43%를 차지했습니다.
실제로 고액·상습 체납자에 대한 세금 징수는 전체 체납액의 1~2%에 불과하다고 관계자들은 말했습니다. 국세청이 체납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등의 수단을 동원했지만 이들은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선 이에 대한 제도적 한계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국세청은 최근 고액의 세금을 상습적으로 내지 않은 6천여 명의 명단을 공개했는데요. 이와 더불어 고액·상습체납자의 주거지를 수색해 압류하는 영상도 공개했습니다. 이들은 집에 있으면서 문을 안 열어주는 것은 기본이고 되레 큰소리를 치며 돈이 없다고 발뺌했습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집안 여기저기서 현금과 골드바, 귀금속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급하게 숨긴 인형 밑에선 수천만 원의 현금다발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전직 건설 업체의 대표 A 씨는 종합소득세 수십억 원을 체납하면서 고액의 미술품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서초구에 위치한 고급빌라에 거주하면서 외제차를 타며 귀금속을 구매하는 등 호화생활을 즐겼는데요. 국세청의 수색 결과 그의 집 안에는 1캐럿 다이아몬드 반지와 18.95g 자수정 금목걸이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또 다른 고액 체납자 D 씨는 국세청 전산 자료 상 저소득자로 분류되어 있었는데요. 알고 보니 그는 서울 강남에서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있던 변호사였습니다. D 씨는 경기도 주상복합 아파트에 월세로 살며 외제차를 끌고 다닌 사실이 적발되었는데요. 그는 많은 돈을 벌면서 수입 내역을 숨기며 소득세 등을 제대로 내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국세청이 사무실과 집을 수색한 결과 순금과, 명품 가방, 돈다발, 골프 회원권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수십 억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고액 체납자들, 이들이 이렇게 버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액체납자들이 신상정보 공개에도 굴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바로 국가가 독촉·납부최고 등의 세금 징수 권리를 일정 기간 행사하지 않을 시 징수 권리가 소멸하는 국세징수권 소멸시효 때문이었습니다. 국세기본법 제27조에 의하면 국세징수권의 소멸시효는 체납액 5억 원 미만 시에는 5년, 체납액 5억 원 이상은 10년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국세징수권 소멸시효가 도과하면 국가는 체납자에게 세금 징수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사라지는데요. 고액체납자들은 이런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수천 억대의 세금을 체납한다 하더라도 10년만 버티면 체납자 명단에서 빠지게 됩니다. 고액 체납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체납자 명단에서 제외되는데요. 이에 대해 국세청은 체납자 명단에만 사라지는 것이지 징수 권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습니다. 또한 체납액의 30%를 납부하면 체납자 명단에서 제외됩니다. 이로 인해 이른바 ‘꼼수 납세’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고액의 재산을 숨기고 납세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악의적 고액체납자들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부터 정부가 체납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것인데요. 기존 국세징수법에서 고액·상습 체납자는 체납 자료 제공, 재산조회 및 체납처분 활용 등이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신체적 자유를 빼앗는 감치 명령은 규정되지 않았었는데요. 이는 형사재판 없이 신체적 자유를 구속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20년부터 이러한 양심 불량 체납자들을 유치장에 감금할 수 있는 제도가 신설되었습니다. 체납액이 2억 원 이상이거나 3회 이상 체납의 경우 최대 30일 유치장에 감금이 가능합니다. 또한 여권 미발급자에 대한 출국도 금지되는데요. 여기에 가족, 친인척 금융정보도 조회가 가능하게 됩니다. 정철우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은 “악의적 고액·상습 체납자를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말하며 이어 “신고자에게는 최대 20억 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으니 적극적인 신고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