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을 접수한 국내 영화 원작 소설 4
소설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은 언제나 책덕후들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아름다운 문장이 장면이 되고, 흥미로운 스토리가 영상으로 태어나는 순간의 감동이란! 오늘은 '스크린을 접수한 국내 영화 원작 소설' 4편을 소개해드릴게요.
1.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제일 먼저 소개해드릴 작품은, 명의 영화로 개봉한 『살인자의 기억법』입니다. 책을 펼친 자리에서 다 읽을 정도로 재미있게 본 소설이라 영화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김영하 작가는 문단에 처음 등장할 때부터 화제가 된 작가입니다. 아직도 '김영하' 하면 ‘문학상 시상식장에 최초로 노란 염색과 귀걸이를 하고 나타난’ 작가라는 수식어가 떠오를 정도입니다. 비단 겉모습으로만 화제가 된 건 아닙니다. 파격적이고 신선한 소재,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출간하는 소설마다 주목받았죠. 아직까지 ‘젊은’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2013년 출간된 『살인자의 기억법』 역시, ‘치매에 걸린 연쇄 살인범’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30년간 살인을 저지르다가 (잠정적) 은퇴를 한 김병수. 왕년엔 서릿발 같은 기세로 살인을 저지르던 그도 세월에는 당해낼 수 없었는지, 일흔에 접어들며 알츠하이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즈음, 마을에선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김병수는 살인범이 딸을 노린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됩니다. 딸을 지키기 위해서 김병수는 사라지는 기억과 사투를 벌입니다. 어디까지가 김병수의 망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속에서, 독자는 책을 읽는 내내 김병수의 기억을 함께 헤매게 됩니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컷 |
개인적으로는 빠르고 흡인력 있는 전개가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는 복잡한 설정 없이 한 사람의 시점으로, 하나의 사건에만 집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조금 걱정을 했습니다. 신선한 소재와 반전 요소 등 영화에 적합한 재료는 고루 갖췄지만, 영화로 구현하기에는 살짝 단조롭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죠. 역시나, 영화에서는 새로운 캐릭터와 장치를 보태 드라마를 훨씬 풍성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설경구, 김남길 등 연기파 배우들의 밀도 있는 연기로 영화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졌다고요.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을 읽는다면, 영화와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저자 김영하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3.07.24.
2. 7년의 밤 (정유정)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이었다.
첫 문장에서 이미 독자를 녹다운시키고 시작하는 소설입니다. 7년 전, 살인자 아버지로 인해 세상 끝으로 내몰린 아들과 하나씩 밝혀지는 살인 사건의 전말을 다룬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인데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장면 묘사가 정말 디테일합니다. 카메라로 장면 곳곳을 천천히 훑는 듯한 치밀한 묘사로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영상이 그려질 정도죠. (그래서 더 무서웠... 자꾸 뒤돌아보면서 읽게 되는 소설...) 장면 묘사뿐 아니라 심리 묘사도 탁월합니다. 특히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현수가 미쳐가는 장면은 저에게까지 그 고통이 전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주인공 시점으로 끌고 가는 『살인자의 기억법』과는 달리 이 소설은 각 주인공의 시점을 널뛰듯 넘나듭니다. 마치 영화에서 각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장면 전환을 하는 것처럼요. 거기에 탄탄한 스토리, 치밀한 묘사까지. 이 소설의 영화화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을 수도 있겠네요. 영화는 올해 하반기에 개봉한다고 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이 원작과 다른 점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면, 이 영화는 소설을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일 것 같습니다.
7년의 밤
저자 정유정
출판 은행나무
발매 2011.03.23.
3. 핑거스미스 (사라 워터스)
세 번째로 소개해드릴 작품은, 아름다운 영상미와 배우들의 파격적 연기로 화제가 된 영화 <아가씨>의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입니다. 소설의 무대는 1870년대 영국입니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서인지 처음엔 <아가씨> 주인공들의 이미지가 자꾸 겹쳐졌는데요, 읽다 보면 『핑거스미스』만의 캐릭터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무엇보다 영화의 ‘아가씨’ 히데코는 몽환적이고 신비한 느낌이었다면 소설 속 ‘아가씨’ 모드 릴리는 티 없이 밝고 순수한 숙녀의 느낌이죠.
이야기는, 런던의 빈민가 도둑 소굴에서 자란 수전이 젠틀먼이라는 남자로부터 제안을 받으며 시작됩니다. ('핑거스미스'는 ‘도둑’이라는 은어입니다.) 한 부자 아가씨의 하녀로 들어가서 그녀와 자신의 결혼을 성사시켜달라는 것이죠. 젠틀먼이 노리는 것은 아가씨의 유산입니다. 한몫 두둑이 챙겨준다는 말에 수전은 아가씨 모드 릴리의 하인으로 위장 취업을 합니다. 하지만 어느새 수전과 모드는 친밀해지고, 둘 사이엔 묘한 기류마저 생기죠.
영화 '아가씨' 스틸컷 |
영화에서도 허를 찌르는 반전이 있었지만 소설은 그야말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아가씨>에서 보여준 반전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아가씨>의 격정적인! 배드신도 영화만큼 자극적으로 묘사되지 않았고요. 책만 보고는 압도적인 분량에 헉~할 수도 있지만, 다 읽는 데 며칠 안 걸릴 정도로 가독성이 뛰어난 책이니 영화를 인상 깊게 보셨던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이래서 드라마와 영화로 리메이크 됐군!’하고 수긍할 수 있을 거예요.
핑거스미스
저자 사라 워터스
출판 열린책들
발매 2016.03.15.
4.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당시에도 굉장히 센세이션한 작품이었는데요, 지금 읽어도 여전히 파격적인 소설입니다. 너무 매력적이라 누가 빼앗아갈까 두려운 여자, 인아. 그녀를 열렬히 사랑한 덕훈은 그녀와 (힘겹게) 결혼에 골인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녀가 내 것이 됐다고 생각한 순간, 아내가 결혼을 하겠다고 합니다. 이혼을 하고 결혼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남자와 ‘또’ 결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뭐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있나 싶지만, 인아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하죠. 그로부터 한 여자의 두 집 살림(?)이 시작됩니다.
책에서도 여주인공 인아는 완벽한 여성으로 그려지지만, 영화에서 손예진이라는 찰떡같은 배우를 만난 덕에,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에 약간의 설득력을 확보했습니다. (너무 사랑스럽잖아요...) 2008년 개봉한 영화의 흥행으로 소설까지 다시금 조명 받았으니 소설과 영화가 윈윈한 좋은 케이스입니다. 흥미로운 소재를 축구를 버무려 가볍고 유쾌하게 풀어냈지만,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약속인 ‘결혼’ 제도에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입니다.
아내가 결혼했다
저자 박현욱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4.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