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마세라티, 첫 맛은 ‘불편’ 두 번째는 ‘놀라움’ 그 끝은 ‘중독’
‘이탈리안 하이퍼포먼스 럭셔리카’를 표방하는 마세라티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하이퍼포먼스 럭셔리’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이 대중화를 부르짖는 차는 아니다. 자동차를 담당하는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간간이 여는 시승행사와 운좋게 연이 맞아야 한다.
근 3년 사이에 1년에 한 번꼴로 마세라티를 경험할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그 때마다 ‘마세라티’를 맞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졌다. 마세라티에는 ‘콰트로포르테’가 있고 ‘기블리’가 있고 ‘르반떼’가 있지만 통칭 ‘마세라티’라고 부르는 이유는 어느 모델을 선택하든 마세라티 만의 색깔이 워낙 뚜렷하기 때문이다.
마세라티의 첫 느낌은 ‘불편함’이었다. 시끄럽고 거칠고, 저 혼자 튀어 나갈까봐 불안했다. 마세라티가 특장점으로 내세우는 요점들이 오히려 불편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게 가시방석이다. “돈 많은 사람들은 이런 불편한 차를 왜 그 비싼 가격에 살까?”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 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평양냉면’이 연상 됐다. 평양냉면을 처음 먹어 본 이들은 특유의 심심한 맛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떤 이들은 “내가 알던 냉면 맛이 아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밋밋햇던 평양냉면도 두세 번을 먹고 나면 심심한 육수에 배어 있는 깊은 맛을 알게 된다. 내친 김에 네댓 번을 먹으면 예찬론자가 된다.
두 번째 마세라티를 경험했을 때는 혼란에 빠진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브랜드가 흉내낼 수 없는 퍼포먼스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마세라티의 주체할 수 없는 퍼포먼스에 적응이 돼 가고 있었다. 불편함은 사라지고 놀라움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최근 동해안 일대 한적한 도로에서 세 번째 마세라티를 만났다. 더 이상 마세라티가 두렵지 않았다. 내 몸과 마음이 이탈리안 하이퍼포먼스를 즐기고 있었다. 이미 내 몸은 마세라티에 중독 되고 있었다.
가격적인 면에서 가장 ‘입문 단계’에 있는 차는 ‘기블리’다. 마세라티가 가격 장벽을 살짝 내리고 대중성을 추구한 모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가는 1억 1,640만 원에서 시작한다. 최상위 모델인 기블리 S Q4 GS는 1억 4,300만 원이다.
기블리 S Q4는 최대 출력이 430마력이다. 콰트로포르테가 곁에 없었다면 기블리 만으로도 기가 죽는다. 세계적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의 숨결이 살아 있는 럭셔리 쿠페다. 고집스럽게 전통을 고수하지만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스포츠 퍼포먼스를 표방하면서 레벨2 수준의 반자율주행 시스템(ADAS)도 갖췄다.
어쩔 수 없이 한 체급 높은 콰트로포르테와 비교하게 되지만 심장은 똑 같다. V6 가솔린 엔진에 8단 ZF 자동 변속기를 쓴다. 대신 길이가 290mm 짧고 무게는 30kg이 가볍다. 공간은 손해를 보지만 날렵한 움직임을 얻었다. 콰트로포르테와 기블리를 번갈아 몰아보면 두 차의 특성이 뚜렷하게 구분이 된다. 전자로부터는 플래그십 세단 다운 진중함이, 후자로부터는 체면을 던져버린 자유로움이 전해진다.
콰트로포르테도 2019년식에는 ADAS가 도입 됐다. 대중차 브랜드에 비해 늦은 감은 있지만 슈퍼카 브랜드의 자존심을 감안한다면 그리 늦은 편도 아니다.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의 신뢰성을 존중하다 보니 한 템포가 늦었다. ADAS가 가능한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 도입은 슈퍼카에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 운전에서는 ADAS를 쓸 일이 별로 없었다. 하이퍼포먼스를 즐기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다만 이 차의 소유주라면 가끔 몸이 피로할 때,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이탈 방지 시스템에 의지한 채 긴장감을 풀 수도 있겠다.
콰트로포르테는 ‘플래그십’이라는 라인업 내 지위와 ‘하이퍼포먼스’라는 브랜드 정체성 사이에서 두 가지 성정(性情)을 모두 갖춘 모델이었다. 묵직해서 좋고, 한번 내달리기 시작하면 적수가 없는 공력에 매료 된다. 마세라티의 라인업 중 가장 잘 빠진 몸매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경쟁력이다. ‘알피에리 콘셉트카’에서 영감을 받아 상어의 코를 형상화 한 전면부 디자인은 마세라티의 상징적 디자인으로 통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기블리’와 파워트레인을 공유하기 때문에 콰트로포르테 S Q4의 최대 출력(430마력/5,750rpm)이나 최대토크(59.2kg.m/2,500~4,250rpm)는 기블리 S Q4와 같다. 도달 가능한 최고 속도는 288km/h이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 시간은 4.7초다. 기블리 S Q4는 최고 속도만 286km/h로 근소하게 낮고 제로백은 같다. 290mm나 더 긴데도 불구하고 같은 제로백이 나온다는 것은 플래그십에 대한 약간의 배려로 보인다.
세단 최고 대우를 해줄 수밖에 없는 콰트로포르테다. 그러나 잔뜩 점잖을 뺀 모습으로 있다가도 큰 기침 한번으로 포효하는 모습은 영화 ‘킹스맨’의 핵심 캐릭터 해리 하트(콜린 퍼스 분)를 닮았다. 칼날같이 주름잡힌 양복을 입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소화하는 반전의 그 모습 말이다.
마세라티의 사륜구동 시스템인 ‘Q4’는 콰트로포르를 한결 민첩하게 만든다. 평소에는 100% 후륜으로 주행하다가도 급코너링이나 급가속시에는 1/15초만에 전후륜 구동 비율을 50:50으로 전환한다. 5,265mm의 전장, 3.17m의 휠베이스를 갖추고도 굼떠 보이지 않는 배경에는 그 만한 속사정(?)이 있었다.
전륜 알루미늄 더블 위시본, 후륜 5멀티링크 시스템은 고속 스포츠 주행 중에도 그 속도를 실감할 수 없을 정도의 실내 안정감을 만들고 있었다. 스카이훅(skyhook)이라고 부르는 전자 제어식 댐핑 시스템은 스포티한 성능을 위해 운전자가 서스펜션 성질을 조작할 있도록 해 놓았다. 2019년식 모델부터 적용 된 통합 차체 컨트롤(IVC: Integrated Vehicle Control)은 스포츠카 DNA를 더욱 세련 되게 만든다. 차체 움직임이 불안정할 때면 즉각적으로 엔진 토크를 낮추는 방식으로 각 바퀴에 필요한 제동력을 분배한다. 가격도 플래그십 구실을 한다. 콰트로포르테 S Q4의 GS 모델이 1억 9,440만원, 콰트로포르테 GTS의 GS 모델이 2억 3,480만 원이다.
마세라티 브랜드의 첫 번째 SUV, 르반떼는 ‘르반떼 GTS’가 되면서 비로소 마세라티 다워졌다. 3.0 V6 엔진은 3.8 V8 트윈터보로 강화 됐다. 종전 르반떼도 SUV로서는 손색이 없었지만 ‘마세라티 SUV’로는 다소 부드럽다는 반응이 수렴 된 결과다. 작은 변화이지만 결과의 차이는 컸다. 6,000rpm에서 최대 출력 550마력, 3,000rpm부터 최대 토크 74.74kg.m이 터져 나온다.
SUV이지만 르반떼 GTS의 제로백은 4.2초다. 530마력 짜리 콰트로포르테 GTS를 재설계해 최대 550마력 엔진을 만들어냈다. 도달 가능 최고속도도 292km/h로 콰트로포르테 S Q4보다 높다. 더 강력해진만큼 안전 보완장치도 따라왔다. 마세라티의 사륜구동 시스템인 첨단 ‘Q4’를 결합했고, 통합 차체 컨트롤, 전자식 주행 안전 장치 소프트웨어를 장착했다.
보완 된 안전장치는 ‘르반떼 GTS’를 세단 보다 더 스포츠카 다운 SUV로 탄생시켰다. 높은 차체에서 즐기는 스포츠 주행은 더욱 짜릿한 주행 쾌감으로 다가왔다. 으르렁거리는 엔진은 바닥 저 아래 심연에서 고동치는 북소리 같다. 더 짜릿한 쾌감을 위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 번지 점프대라고나 할까? 무게 중심을 운전자 한참 아래로 내리고, 차량 전후의 무게 배분을 50:50으로 나눈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의도적 전율’이다. 인위적으로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에어 스프링(Air Spring)’ 공기압축 시스템을 갖춰 6단계로 높이를 다르게 할 수도 있다. 가격도 높이 올라갔다. 르반떼 GTS는 1억 9,600만 원이다.
마세라티의 지붕 개방형 스포츠카 모델인 ‘그란 카브리오’는 산천을 울리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계곡을 따라 풍류를 즐기듯 구불거리는 강원도의 여느 국도는 천연의 서라운드 시스템이다. 별도 없는 컴컴한 밤중에 이런 길을 그란 카브리오로 내달린다. 저 멀리서 멀리서 마중 나오는 배기음 소리가 밤 하늘 유성우 만큼이나 긴 여운을 남긴다. 대낮의 쑥스러움도, 손 끝에 전해지는 노면의 저항도 이 순간 아득히 사라지고 만다.
4.7리터 V8 자연흡기 엔진으로 최대 출력 460마력, 최대 토크 53.0kg.m을 내는 그란 카브리오는 제로백이 4.7초다. 변속기는 6단 ZF 자동변속기가 탑재 됐고, 최고 속도는 301km/h에 이른다. 가격은 스포트 트림 2억 4,100만 원, MC 트림 2억 5,400만 원이다. 그릴 디자인은 마세라티의 ‘상어 코’가 육각형 형태로 차별화 됐고, 타원형의 배기관 테일파이프가 마세라티 특유의 배기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
놀라운 것은 6단 ZF 자동변속기다. 말이 6단이지 무한대 단수나 마찬가지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액셀을 깊게 밟아 최초 목표로 했던 속도에 도달하면 액셀은 추가 가속을 위한 대기 상태로 돌아간다. 속도가 붙고나면 추가 속도를 위한 여분을 또 만들어낸다. 6단이니 8단이니 하는 숫자놀음은 그란 카브리오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지붕을 열고 다녀야 하는 만큼 사운드시스템은 거친 바람과 맞설 수 있어야 했다. 하만 카돈의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을 기반으로 10개의 스피커, 10개의 채널, 750w의 앰프, 그리고 고성능 서브 우퍼가 협공을 펼친다. 바람을 뚫고 10개의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사운드는 대자연을 구성하는 소리의 일부가 된다.
‘중독자’ 마세라티의 최고 수위의 독성이다. 콰트로포르테, 르반떼 GTS, 그란 카브리오도 견뎌낸 운전자는 이제 마세라티의 포로가 된다.
[사진] 위에서부터 마세라티 기블리, 콰트로포르테, 르반떼 GTS, 그란 카브리오.
OSEN=강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