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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시금치의 힘'

겨울 제철 시금치의 다양한 요리법과 활용법, 가격 변화, 보존성의 장점을 소개합니다.

뉴스1

전호제 셰프. ⓒ News1

한겨울이면 앙상하게 드러난 나뭇가지에서 녹색 잎이 돋아나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계곡물도 얼기 시작하고 땅에 스며든 냉기도 점점 강해지는 요즘이다.

오히려 이런 겨울에 제철을 만난 야채가 있으니 한결 위안이 된다. 시장에 나가보니 바로 시금치가 한창이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시금치 수프였다. 제철 요리를 하던 프랑스 식당에선 겨울 시금치가 나오면 진녹색 수프를 끓였다. 여기에 꼬릿한 파마산 치즈를 곁들이면 눈이 쌓인 거리풍경과 묘한 대조를 준다.


미국에 있을 때도 시금치는 흔하게 접했지만 줄기가 붉은 우리 겨울 시금치는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좋은 재료에 비해 한식에서는 주로 시금치나물과 시금칫국으로 사용하는 정도이다.


상대적으로 시금치는 다른 문화권에서는 조리법의 폭이 넓다. 시금치를 샐러드로 하여 구운 가지, 호박을 올린 피자 위에 곁들여보자. 따끈한 피자에 살짝 씹히는 구운 야채와 시금치의 조화가 꽤 좋다. 입가심으로 상큼한 양배추 피클이 어울린다.


인도 카레에서는 팔락(Palak)은 시금치를 의미한다. 시금치를 데쳐서 갈아내고 여기에 각종 향신료로 맛을 낸다. 팔락 파니르(Palak Paneer)는 이 시금치에 포실한 우유 치즈를 넣은 카레이다. 카레의 기본 베이스인 양파를 끓여 내고 토마토와 갈아 넣은 시금치를 넣으면 묵직하면서도 고소한 풍미를 더한다.


어릴 적 먹던 도시락에 빠지지 않던 계란말이는 가끔 시금치를 넣어 만든다. 그러면 식감이 살아나고 맛도 훨씬 좋아졌다.


소풍 때 빠지지 않던 김밥에도 시금치는 색감도 좋고 맛도 일품이다. 그렇다고 시금치 김밥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드라마로 치면 명품조연이라고 할까.


김밥에서 시금치의 포지션은 경쟁도 치열하여 때론 오이, 부추가 들어가기도 하였다. 주재료에 참치가 놓인다면 깻잎이 더 어울리기도 하니 시금치의 자리는 주연이 아닌 건 맞다.


그나마 요즘 나오는 포항초는 붉은색 줄기의 달달한 맛으로 사랑받는다. 날이 추워질 때쯤 나오며 일반 시금치보다 가격도 높게 팔린다. 섬초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으로 만든 나물은 제대로 겨울 대표 반찬이다. 달달한 줄기 끝을 씹으면 겨울 추위를 이겨낸 단맛이 혀끝에 맴돈다.


시금치는 연중 나오는 야채이지만 올여름은 폭염이 추석까지 이어지면서 추석 한때 한 단에 2만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금 포항초 가격은 한 단에 4천원대에 구입가능하니 부담이 줄었다.


계절마다 가격 차이가 커서일까? 요즘엔 냉동된 시금치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깨끗하게 씻어서 데친 후 냉동되어 간단하게 국이나 나물류로 만들 수 있다.


가정집에서도 시금치를 데쳐 놓고 작은 양으로 나누어 냉동해 두면 2~3개월 정도는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기 편리하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냉동 김밥에도 시금치의 이런 보존성은 높은 점수를 땄다고 한다. 원래는 오이로 테스트하였는데 김밥을 만든 후 냉동하면 김밥 옆구리가 터지는 문제가 생기곤 했다. 오이에 수분이 많아 생긴 문제였다. 결국 시금치로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냉동했다가 해동하여도 식감과 맛을 유지하는 장점이 새로운 컨셉의 김밥에 맞았다.


추위에 강하고 얼었다가도 맛을 유지하는 시금치를 보면 요즘 꼭 필요한 우리네 마음가짐 같기도 하다. 예기치 못한 난관이 와도 다시금 평정을 되찾는 게 필요한 시절이다. 푸르른 시금치를 보면 마음에 쌓인 눈을 툭툭 털어내고 다시 올봄을 기대해 봄 직하다.


​(서울=뉴스1) 전호제 셰프 shef7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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