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 없는 중국 문제일까 내리막 히딩크 문제일까
중국축구협회, 히딩크 올림픽대표팀 감독 1년 만에 경질
거스 히딩크 중국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부임 1년 만에 경질됐다. © AFP=뉴스1 |
중국이 그토록 애를 쓰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늘지 않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축구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이고 스포츠 각 종목에서도 자신들의 뜻대로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있으나 좀처럼 축구는 진전이 없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소문난 축구광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시진핑은 자신의 소원이 3가지 있다면서 하나는 중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고 또 하나는 월드컵 개최이며 다른 하나는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월드컵 출전에 버금가는 소원이 또 올림픽 참가다. 중국 여자축구는 그래도 세계적인 수준을 보이고 있으나 남자축구는 올림픽 본선무대도 밟지 못하는 수준이다. 지금껏 중국이 축구 종목에서 올림픽 무대를 밟은 것은 2008년 베이징 대회 때 단 한 번뿐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한 것이니 결국 예선을 통과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한을 풀고자 손을 내민 인물이 거스 히딩크 감독이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작성한 명장으로 한국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지도자가 지난해 9월 2020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는 중국 올림픽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적잖은 화제를 일으켰는데, 인연이 1년을 못 갔다.
중국축구협회는 19일 "2020년 AFC U-23 챔피언십과 도쿄올림픽 예선이 임박했는데, 그동안 준비가 미흡했다. 새로운 조직을 구성해 대비할 것"이라는 발표와 함께 히딩크 감독의 경질을 알렸다. 히딩크 감독이 중국 U-21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한 것이 지난해 9월10일이었으니 1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 셈이다.
지속적으로 불협화음을 보여 왔던 히딩크 감독과 중국 축구계다. 히딩크 감독은 부임 기간 중 "이런 수준이라면 올림픽 진출이 어렵다"는 냉정한, 한편으로는 선수들 사기를 떨어뜨리고 팬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발언으로 냉랭한 공기를 자초했다. 중국 언론들은 "히딩크 감독이 받는 돈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류의 기사로 소위 '태클'을 걸었다.
이런 와중 기름을 부은 것은 베트남과의 평가전 결과다. 중국 U-22대표팀은 지난 8일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베트남 U-22대표팀과 중국에서 평가전을 가졌는데, 0-2로 졌다. 내용도 결과도 완패였다. 이후 중국 내 여론은 악화됐고 결국 경질로 이어졌다. 중국 축구협회에게도 명장 히딩크 감독에게도 '오점'으로 남게 될 계약이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U-22 축구대표팀이 8일 오후 중국 우한에서 열린 중국 U-22 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2-0으로 완승했다. (베트남축구협회 홈페이지) 2019.9.8/뉴스1 |
슈퍼리그 클럽들과 대표팀을 막론, 중국 축구는 '기다려주지 못한다'는 인식이 점점 팽배해지고 있는 흐름이다. 눈앞에 보이는 성적으로만 일희일비, 장기 플랜은 고사하고 근거리에 있는 지점까지의 로드맵도 세우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자신들의 숙원이라던 올림픽을 2년 앞두고 세계적인 명장 히딩크를 영입했으나 1년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새 체제를 선언하며 이런 인식은 더 강하게 자리 잡게 됐다. 히딩크 감독 후임으로는 자국 지도자 하오웨이(43) 감독이 내정됐다. 외국인 감독들도 자리가 내키지 않을 흐름이다. 중국도 문제지만 히딩크 감독의 커리어도 조금씩 뒤안길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1990년대 아인트호벤(네덜란드), 발렌시아(스페인), 네덜란드 A대표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등을 이끌었던 히딩크는 2002 월드컵을 앞두고 아시아의 한국을 맡아 4강을 견인, '히딩크 매직'의 정점을 찍었다. 2006 독일 월드컵을 준비하는 호주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아 32년 만의 본선진출 및 16강을 견인했고 곧바로 러시아 대표팀을 맡아 유로2008에 참가해 4강에 진출, 마법을 이어갔다.
하지만 2008년 이후로는 딱히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그 내리막길이 10년 내내 이어지고 있다. 유로2008에서의 성과를 발판으로 러시아 감독직을 유지했으나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진출에 실패하면서 물러났고 이어 터키대표팀으로 옮겨서도 유로2012 본선에 나가지 못했다.
이후로는 거의 1년 임기, 혹은 임시직이었다. 2012년부터 13년까지 러시아 클럽 안지를 맡았고 2014년 고국 네덜란드의 러브콜을 받았으나 유로2016 예선에서 최악의 부진을 보인 끝에 경질됐다. 2015년 12월, 당시 주제 무리뉴가 떠난 첼시의 임시 감독직으로 전면에 다시 등장했으나 그것이 빅팀의 마지막이었다.
결과적으로 중국을 발판 삼아 재기를 꿈꿨던 히딩크도 히딩크의 명성에 기대 한을 풀고자 했던 중국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양쪽 다 좋지 않은 결과가 반복되고 있는데, 이건 중국의 문제일까 히딩크가 문제일까.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lastuncl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