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체와 물회'
[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전호제 셰프. ⓒ News1 |
이 조개는 커다란 수관에 살이 가장 많다. 수관의 겉껍질은 살짝 데쳐서 벗겨낼 수 있다. 그대로 회로 먹어도 되지만 레몬즙에 살짝 담갔다가 먹는 세비체로 먹기도 한다.
세비체(Ceviche)는 페루를 중심으로, 해산물을 강한 라임즙에 담갔다가 먹는 방식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더운 날씨에도 안전하게 날생선을 먹을 수 있다.
처음 세비체를 접한 것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에피타이저를 준비하면서였다. 레몬즙에 살짝 '익힌' 방식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여기에 파인애플과 매콤한 할라페뇨로 살사를 만들어 조개 세비체가 완성된다.
어찌 보면 세비체를 미국 프렌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정통방식은 레몬 대신 라임을 쓰고 할라페뇨 대신 홍고추를 사용한다.
이런 세비체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뉴욕의 세비체 식당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그곳은 두 가지 생선 종류로 단출한 멕시코풍의 세비체를 팔고 있었다. 내가 주문했던 것은 연어 세비체였다. 연어, 적양파, 양상추, 오이 등이 버무려진 샐러드 같은 음식이 나왔다. 페루식은 특이하게 옥수수나 고구마를 곁들인다고 한다.
중남미 인구가 늘어가는 미국에서는 예전보다 다양한 세비체 레스토랑을 많이 볼 수 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는 페루 세비체를 날생선을 즐기는 7가지 방식 중 하나로 뽑기도 했다.
남미의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방식의 세비체를 만들어 먹는다. 반면 문화적으로 페루 세비체에 대한 인식도 많이 높아졌다. 2023년 유네스코에서는 세비체를 페루의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의 김치와 김장 문화가 2013년에 등재되고 한국 음식문화가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페루 사람들은 세비체에 대한 자긍심이 높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세비체는 페루 문화에 다양한 외부 문화가 유입되면서 오늘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세비체의 중요한 재료인 라임과 양파는 16세기 콜럼버스의 지리상 발견을 통해 페루에 전래되었다. 원래는 페루 고산지대에서 나는 툼보(tumbo)라는 신맛이 나는 과일즙에 생선을 담가 먹었다고 한다. 툼보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재배하는 패션프루트와 비슷한데, 안쪽에 검은색 씨와 새콤한 과즙이 들어 있다.
우리 김치도 원래 제피가루가 사용되다가 임진왜란 이후 고추가 들어오면서 오늘날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마치 페루 원주민의 음식에 라임, 양파같은 외부식재료가 큰 변화를 준 것과 유사하다.
원래 세비체는 생선을 장시간 재워 먹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본인들이 페루에 이주하면서 신선한 생선을 먹는 사시미 방식이 전해지면서 요즘에는 15분 정도로 짧게 재워 신선한 생선의 맛을 살리게 되었다.
세비체에 비견되는 음식이 물회이다. 우리나라 제주나 동해안에서도 즐길 수 있다. 제주식은 여름에 많이 나는 자리돔에 된장을 풀고 오이와 식초, 깻잎 등 야채를 넣는다. 제피가루나 제피잎을 더하기도 한다. 동해안에서는 오징어를 주재료하고 고추장 양념이 들어간다.
물회는 어부들이 배 위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 생선을 썰어서 된장이나 고추장을 풀고 물을 부어 먹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새콤한 과일즙에 절이던 데서 유래한 세비체와는 사뭇 다르다.
세비체가 육지에서 생선을 다루던 여성들의 음식이라면 물회는 배 위에서 먹는 남성들의 음식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물회도 세계적으로 알려질 수 있는 요소를 다양하게 갖추었다고 본다.
한국의 매운맛에 세비체보다 풍성한 야채가 들어간다. 깻잎이나 미나리 같은 향신채가 들어가는 것도 매력이 있다. 된장, 고추 등 소스가 다양하기도 하다. 우리의 국물 문화와 장 문화가 녹아 있다는 점도 세비체와 차별화된 부분이기도 하다.
세비체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접하기 힘든 편이다. 아직 중남미 문화가 널리 퍼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단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남미 관광객에게 우리나라 물회를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차차 우리나라에서도 맛있는 세비체를 즐길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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