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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때기청봉 찍고 대청봉…바다·계곡·능선 절경 한눈에

설악산국립공원① 한계령~대청봉 8.3㎞…수려·웅장 '최고 명산'

안개·구름 휘몰아친 한계령 '쓸쓸'…그림같은 비경 서북능선 '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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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 이름 그대로 짙푸른 봉우리와 시퍼런 하늘 위에 하얀 구름조각들. 저 위는 금강산까지 조망하는 아이맥스 영화관이다.

산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설악산은 인기 랭킹 1, 2위를 다투는 산이다. 라이벌은 지리산이다. 설악산과 지리산에서 레인저 일을 한 기자에게 사람들이 “어느 산이 더 좋냐?”고 묻곤 한다. 딱 중립적인 답을 낸다. “지리산은 엄마 가슴처럼 따듯한 산, 설악산은 아빠 어깨처럼 거칠고 강한 산이다. 설악산은 불꽃같이 화려한 산, 지리산은 고향의 언덕처럼 푸근한 산이다.” 이렇게까지 말한다. “내가 만일 산이라면, 연애는 화려한 설악산과, 결혼은 부드러운 지리산과 하겠다!”


기자와는 달리, 확실하게 설악산 손을 들어준 유명한 문장이 있다. 

“금강산은 수려하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나 수려하지 못하다. 설악산은 수려하면서도 웅장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제1호를 두고 지리산과 설악산의 다툼이 있었을 법하다. 그러나 다툼은 전혀 없었다. 지리산이 제1호 국립공원으로 결정된 1967년, 설악산에는 아직 6.25전쟁 때 묻은 지뢰가 곳곳에 남아있었고, 등산로가 제대로 없어 공원지정을 위한 현장조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험준하고 야성적인 설악산이다.


설악산은 점봉산-한계령-대청봉-마등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축으로 동쪽은 외설악, 서쪽은 내설악으로 구분된다. 구름도 넘기 어렵고 사람도 지나가기 어려운 백두대간에 의해 영동과 영서로 갈려, 자연의 생태도 사람의 문화도 차이가 많다. 한계령 이남의 오색-점봉산 지역을 남설악으로 부르고 있는데, 미시령 이북을 북설악으로 구분할 필요도 있다. 미시령은 과거에 설악산과 금강산의 경계였다. 북설악의 신선봉(1214m)에 오르면 금강산 비로봉이 가깝게 보인다.


설악산의 20개 등산로 111㎞는 대부분 대청봉(1708m)을 향하고 있다. 대청봉에서 가장 가까운 등산로 기점은 오색(5㎞/3~4시간)이고, 가장 먼 곳은 서북능선-12선녀탕계곡를 거쳐 내려가는 남교리(22.2㎞/10~12시간)다. 가장 많은 사람이 다니는 코스는 오색-대청봉-천불동-설악동(16㎞/8~9시간)이다. 기자는 한계령에서 대청봉에 올라 천불동-설악동으로 내려서는 약 19㎞의 길을 간다. 중청대피소에서 하룻밤 자는 1박2일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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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 한계령-한계령삼거리 2.3㎞ "먼 산은 안개와 구름이 휘몰아치고, 등산로에는 금강초롱꽃이 길을 밝히고"

한계령(寒溪嶺)은 ‘엄청 추운 고개’라는 뜻이다. 찬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칠 때 이곳에 서면 그 이름뜻을 충분히 공감한다. 여기 오면 꼭 생각나는 것은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이다. 

"...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 

그렇게 처연하고 우수에 찬 가사와 음조가 또 있을까. 한계령은 늘 그렇게 안개에 젖고 구름에 묻히며 바람이 썰렁하다. 오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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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 풍경. 서북능선으로 뻗어 올라가는 산줄기 밑에 납작하게 들어선 휴게소. 양양군에서는 ‘오색령’이라고 부른다.

한계령 주차장은 백두대간의 맥을 끊어 조성했다. 언젠가는 양쪽 비탈을 잇는 지형복원을 하고 주차장은 터널화시키며, 도로에는 수십 개의 생태통로를 만들어 사람도 야생동물도 잘 넘어다니는 고개가 되기를 바란다. 한계령휴게소는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납작하게 지어 건축상을 받은 건물이다. 번쩍번쩍하는 광고물들을 잘 정리해서 지금도 상을 받을 만한 건물로 존재하면 좋겠다.


한계령의 높이(920m)는 대청봉과 불과 788m의 차이다. 대청봉에 가장 쉽게 오르는 동시에, 서북능선의 등어리에서 설악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이 코스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꼭 그렇게 쉬운 길은 아니다. 한계령에서 서북능선까지 2.3㎞는 산 하나를 오르는 것과 같이 힘이 들고, 거기서 6㎞의 오르락 내리락하는 능선 끝에 대청봉이 있다. 대청봉을 찍고 당일에 내려가는 사람들에겐 만만치 않은 장거리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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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 중간에서 서북능선을 올려다 본다. 언제 왼쪽 끝에 올라서서, 언제 오른쪽 끝을 통과해, 이 능선만큼을 더 걸어 대청봉까지 갈 것인가?

대청봉을 향한 첫걸음은 쉽지 않다. 보통 계단 높이의 1.5배는 되는 108개의 계단을 헐떡거리며 오르면, 앞으로도 이런 길 아닐까? 하며 단단한 각오를 하게 된다. 설악루와 위령탑을 지나면 국립공원 초소가 있고, 그 옆으로 등산로가 열려 있다. 여기서 12시가 넘으면 입산을 통제한다.


등산로 초입 약 1㎞는 '악(嶽)!산'답게 급하고 거칠다. 돌길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오르다가, 몇 군데의 조망포인트에서 점봉산-한계령-가리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바라보지만, 안개와 구름이 바람에 휘날리며 풍경을 가린다. 급한 오르막이 끝나는 1307봉에 올라 서북능선의 왼쪽으로 귀때기청봉을, 오른쪽으로 대청봉을 향하는 기다란 등어리를 바라본다. 늠름한 '바위 장군'들이 쭈욱 도열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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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초롱꽃 길. 한계령에서 서북능선까지 내내 길을 밝혀주는 ‘가장 한국적인 이름’의 야생화.

이제 오르막의 경사는 부드러워졌지만, 안개와 햇빛이 들락날락하며 좀처럼 시야를 열어주지 않는다. 대신에 가까이에는 각종 야생화들이 꽃잔치를 벌이고 있다. 특히 보라색, 분홍빛, 푸른빛 등의 여러 색깔 금강초롱꽂들이 길을 밝히듯 계속 이어져 카메라가 바쁘다. 이 시기의 이 등산로를 ‘금강초롱꽃 길’로 명명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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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능선의 한계령삼거리에서 본 내설악 비경. 멀리 공룡능선의 봉우리들을 구름이 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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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의 기다란 계단과 짧은 돌길을 올라 드디어 서북능선의 한계령삼거리에 도착한다. 2.3㎞의 짧은 길이 1시간 40분이나 걸렸다. 삼거리의 언덕 끝에서 북쪽의 내설악 용아장성과 공룡능선 방향을 조망한다. 풍경의 반은 구름에 가렸지만, 사이사이로 붉은 바위들의 병풍이 번쩍 번쩍 빛을 뿜어내는 장관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능선에 올라선 성취감과 아름다운 비경과 만난 기쁨이 더해져, 아! 역시 설악산이다!, 사람마다 탄성을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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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때기청봉의 슬픔. 커다란 바위가 쪼개지고 부서져 흘러내린 너덜이 눈물처럼 보인다

서쪽으로 지척에 보이는 귀때기청봉(1,578m)의 스토리가 재미있다. 대청봉을 비롯한 다른 청봉(靑峰)들에게 내가 더 높다고 까불다 귀싸대기를 맞고 떨어져 나왔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래서 그럴까, 귀때기청봉의 비탈에는 긴 눈물과도 같은 너덜이 주르륵 흘러내려 있다. 그 봉우리를 향한 기다란 오르막과 내리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한 너덜 바위길이다. 좀 쉬는 사이에 서늘한 안개가 밀려오더니 축축했던 등어리가 오싹해진다. 어서 출발해야 한다.

◇ 한계령삼거리-대청봉 6㎞ "설악산 비경을 즐기는 서북능선 스카이웨이, 산도 하늘도 바다도 푸르른 대청봉"

안내판에 여기서 대청봉까지 6㎞는 '어려운' 코스로 표시되어 있다.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 울퉁불퉁한 바위길과 조심조심해야 하는 너덜길이 이어져 속도가 붙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은 경관을 즐기는 스카이웨이다. 군데군데 전망 포인트마다 내설악의 뾰족뾰족한 암봉들, 저멀리 외설악의 유장한 능선들, 남설악의 큼지막한 산자락들이 구름에 잠기거나 안개에 묻힌 풍경이 한폭의 그림이다. 주목과 분비나무의 고사목 너머로 시시각각 변하는 그림을 조망하며 걷고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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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능선의 야생화들. 왼쪽 정영엉겅퀴의 꿀을 빨아먹고 있는 좀뒤영벌, 가운데 투구처럼 생긴 투구꽃, 오른쪽 촛대처럼 생긴 촛대승마.

한계령삼거리까지의 길에 금강초롱꽃이 도열해 있었다면, 이 길은 투구꽃 길이다. 보라색 투구꽃들이 줄줄이 깔린 가운데, 햇빛이 들어오는 공터마다 진범, 흰진범, 배초향, 오리방풀, 바위떡풀, 새며느리밥풀, 촛대승마, 정영엉겅퀴 등의 늦여름-초가을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다른 계절보다 보라색 꽃들이 많다. 식물학자들에 의하면, 봄과 여름에는 나비가 좋아하는 흰색, 노란색, 분홍색 꽃이 많고, 가을에는 벌이 좋아하는 보라색과 청색 꽃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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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청봉. 뾰족한 정상에 분비나무 한 그루가 뾰족하다. 바위 틈틈에 핀 구절초의 청초한 흰빛이 여긴 완연한 가을임을 알리고 있다.

한계령삼거리에서 출발한 지 2시간30분 되어, 끝청(1604m) 직전의 300m 된비알을 오른다. 악!산을 끙끙대며 오르면, 거기에 악!소리 나는 풍경이 있다. 지나온 서북능선과 남쪽 점봉산, 그 너머 오대산의 산줄기가 넘실넘실하다. 반대편 방향의 바위끝에서 바라보는 내설악의 용아장성과 공룡능선과 하늘 끝에 아련하게 그어진 금강산 라인은 압도적이고 감동적이다. 거기에 안개구름이 스르륵 흘러가는 풍경은 영화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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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청에서 바라본 내설악. 용아장성 바위능선이 뾰족뾰족한 가운데, 공룡능선은 구름에 잠겼다. 구름이 사라지면 맨 끝에 금강산 라인이 나타난다.

끝청에서 케이블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색에서 끝청 부근까지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계획에 대하여 찬성하는 사람들, 반대하는 사람들, 그리고 가부를 결정해야 하는 정부 당국이 팽팽한 긴장상태에 있다. 가장 중요한 당사자는 설악산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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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청을 벗어나며 중청봉과 오른쪽의 구름에 잠기는 대청봉을 바라본다.

중청봉의 허리를 뺑 돌아 대피소로 내려서면서 천불동계곡과 울산바위와 속초 시내, 그리고 동해바다와 화채능선과 대청봉을 바라본다. 하나 하나의 경관도 가슴이 벅찬데, 이 아름다운 풍경들과 한꺼번에 재회하다니 눈을 어디에 더 두어야 할지 즐겁지 않을 수 없다.


대청봉에 오른다. 600m의 돌길에서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고 강해진다. 나는 바람에 저항하며 흔들리지만, 바닥에 누운 눈잣나무들은 바람부는 대로 잔잔하게 휘어진다. 바람 아래로 키를 낮추어 이발을 한 '지혜의 숲'이다. 강한 게 아니라 적응하는 게 살아남는다는 생태계의 법칙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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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지대 식물인 분비나무가 수문장처럼 서있는, 중청대피소와 대청봉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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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에서 내려다본 중청봉과 대피소. 눈잣나무를 비롯한 낮은 숲이 바람을 피해 낮게 깔려있다.

쌩쌩~하며 지나가던 바람이 대청봉 정상에선 웅웅~하며 산 전체를 흔드는 듯하다. 정상석을 부여잡고 사진을 찍은 사람들이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내려선다. 몸은 흔들려도 풍경은 흔들리지 않는다. 시퍼렇던 동해바다와 초록빛 고성벌판은 안개가 깔려 우윳빛이다. 공룡능선과 천불동계곡의 바위제국은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에 묻혔다 열렸다 하고, 구름이 뚫려 햇살기둥이 내리쬐는 울산바위의 한 조각만 하얗게 빛나고 있다. 지나온 서북능선과 남쪽의 산줄기들이 구름과 엉겨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대청봉은 입체영화를 상영하는 아이맥스 영화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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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의 겨울. 눈보라가 일어 안개처럼 흩날리는 풍경

대청봉(1708m)은 한라산 백록담(1950m), 지리산 천왕봉(1915m)에 이어 남한에서 3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여기서 멀리 바라보이는 금강산 비로봉(1638m)보다 높다. 매년 우리나라의 첫 얼음, 첫 눈이 뉴스가 되는 곳이다.

대청봉을 내려서며, 언젠가 초가을에 얼음장 같은 찬바람을 맞아 몸을 뒹굴듯 내려서던 기억이 새롭다. 시퍼런 공기가 온몸을 휘감으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불과 20분의 내리막에서 손과 얼굴이 온통 동상에 걸린 사람도 있었다.


중청대피소에 이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은 부드러워졌다. 라면과 삼겹살 냄새가 진동을 한다. 침이 솟는다.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stone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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