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영화, 다시 볼 영화, 타고 싶은 택시
김필남의 블루 시네마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택시>(2015)
영화는 특이하다. 촬영 장소는 택시이고, 주인공은 택시를 타는 승객들이다. 영화의 감독은 택시를 모느라 분주하다. 택시 안에는 남자와 여자 승객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 격렬하게 논쟁 중이다. 남자는 범법자들을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뒷좌석에 앉은 여자는 범죄의 원인 규명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의 논쟁은 각자의 목적지에 도착하고서야 끝난다. 첫 번째 승객이 내리고 감독이 무언가를 슬쩍 건드린다. 어라, 뒷좌석에 여자 말고 남자가 한 명 더 앉아 있다. 감독이 티슈통에 숨겨놓은 카메라의 위치를 변경한 것이다. 불법 DVD를 파는 남자는 승객들이 내리자마자 자신이 파나히 감독의 팬임을 자처하고, 앞좌석으로 자리를 옮긴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택시’는 승객을 태우고 테헤란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다. 감독은 택시 운전하랴, 카메라 위치 신경 쓰랴, 승객들의 말도 들어야 해서 정신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감독은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영화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택시 안에 위치한 카메라는 정면으로 고정되어 있어 관객들은 승객의 정면 얼굴만 볼 수 있다. 그런데 가끔씩 카메라가 움직이는데 이때 파나히 감독이 왜 거장이라고 불리는 지 알 수 있다.
카메라가 택시에서 내린 남자의 뒷모습을 뒤따른다. 우리는 그제야 남자의 몸이 정상과 다름을 알게 된다. 택시에서 그는 평범한 청년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오토바이 사고로 피투성이가 된 세 번째 승객을 도우는 데 앞장섰고, 먹고 살기 위해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감독은 택시 바깥에 서있는 남자를 비춤으로써 관객들의 사고를 멈칫하게 만든다. 택시에 있을 때 남자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면, 그의 작은 키(난쟁이)를 본 순간 그가 우리와 ‘다른’ 사람임을 인식한다. 다시 말해 감독은 편협한 우리의 시선을 확인하도록 만든 것이다.
영화 ‘택시’의 신의 한 수는 감독의 조카가 등장하는 부분부터다. 정오까지 알리의 샘에 가도착해 물고기를 놓아줘야 자신들이 죽지 않는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던 할머니들을 겨우 다른 택시에 태워 보내고, 감독은 조카를 만나러 간다. 영화를 찍는 과제를 위해 삼촌을 만난 조카는 학교 선생의 지침 중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다며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지금 여기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인데, 불편한 상황은 촬영해서는 안 된다니 아이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여성들의 인권, 표현의 자유와 억압, 정치와 법 등의 민감한 문제를 승객들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영화 ‘택시’는 이란 현실을 비판하고 있지만 과하지 않다.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유머, 테헤란의 회색빛 풍경, 깜짝 놀랄만한 엔딩샷까지.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왜 이 영화를 황금곰상으로 선택했는지 알 것 같다. 극장을 나오며 시네필들의 웅성거림을 듣는다. 그들은 모두 영화를 보고 ‘다른 해석’을 내어 놓는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좋은 영화, 감독의 힘이 아닐까.
글 김필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