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소설, 그 정체는?
출간과 동시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베스트셀러 1위!
짐작하셨습니까?
2015년 1월 7일 프랑스는 물론 유럽 사회를 뜨겁게 달군, 미셸 우엘벡의 『복종』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지도와 영토』(2010) 『소립자』(1998)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우리 시대의 가장 논쟁적 작가죠. 1월 7일은 프랑스에서 <샤를리 에브도> 총격 테러 사건이 발생했던 날이기도 합니다. 테러 사건 당일 출간된 『복종』은 출간 전부터 그 내용 때문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것은 물론,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과 맞물리면서 유럽 사회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복종』 해외 표지 |
미셸 우엘벡의 『복종』 국내 출간!
『복종』은 프랑스에서는 물론, 곧이어 번역 출간된 독일, 이탈리아에서 이례적으로 동시에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현재 39개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습니다. 『복종』의 해외 표지를 살펴보시면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짝 엿보실 수 있을 거예요.평화의 상징이라고는 하지만, 환경을 오염시키고 번식력도 강해서 이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비둘기(혹자는 무거운 전조를 암시하고,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의 검은 복장을 연상케 하는 까마귀 같다고도 해요), 성대한 식사를 하고 난 뒤 식탁 위를 군림하는 교활하고 냉혹해 보이는 여우(핏빛의 배경이 섬뜩하네요), 이슬람 사회와 서구 사회의 충돌을 아주 충격적인 이미지로 연출한 이슬람 베일을 쓴 모나리자, 그리고 에펠탑과 그 위에서 빛나는, 이슬람의 상징 초승달과 샛별…… 여러분은 무엇이 보이시나요? 이 책이 어떤 소설일지 감 잡으셨나요?
이슬람 전통의상 |
(그림 출처: koreajoongangdaily.joins.com)
우엘벡만의 탁월한 통찰로 그려낸,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디스토피아
이슬람 사회가 된 프랑스를 상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정교분리 원칙’이 깨지고, 공립대학은 이슬람 대학이 되면서 교수들은 개종을 하고, 여학생들은 치마 대신 바지를 입고 머리에 베일을 쓰는. 『복종』은 2022년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 프랑스 사회를 그려 보이는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소설은 이슬람 대학이 된 소르본 대학 교수 프랑수아의 삶의 궤적을 좇으며, 한 사회를 잠식해가는 이슬람과, 시대의 변화에 죽은듯이 복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섬뜩하게 서술합니다. 19세기 말 프랑스 소설가 조리스카를 위스망스를 전공한 대학교수 프랑수아는 삶에 환멸을 느끼는 우울하고 허무주의적인 인물로 어딘가 우리의 모습을 대변해줍니다.유럽 사회의 ‘이슬람 공포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두 개의 사건
공공연히 이슬람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왔던 미셸 우엘벡의 신작 『복종』은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하는 내용 때문에 출간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복종』이 출간되기 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그의 신작이 프랑스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이슬람 공포증’을 야기하게 될까 우려하면서도 “논쟁이 일고 있는 만큼 책을 읽어보겠다”고 밝힐 정도였다고 하네요.1월 7일, 우려했던 ‘공포’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이민자 출신의 두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파리 도심의 풍자 전문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본사에 난입하여 경찰을 포함한 편집진 12명을 살해하였습니다. 이 끔찍한 사건으로 미셸 우엘벡의 친구이자 경제학자인 베르나르 마리스가 희생되기도 했죠(1월 7일 발행된 <샤를리 에브도>에는 그의 『복종』 서평이 실려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이슬람화를 예견하는 『복종』 출간일에 발생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언론 테러에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더불어 테러 당일 발행된 <샤를리 에브도>가 미셸 우엘벡의 신작 『복종』을 다루었던 만큼 모두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은 단순히 우연한 사건이었을까?
(좌) 1월 7일 발행된 <샤를리 에브도> 표지. “점성술사 우엘벡의 예언. '2015년, 나는 이가 빠질 것이다…… 2022년, 나는 라마단에 금식을 할 것이다!’” (우) 1월 10일 독일 시사 주간지 <데어 슈피겔> 표지. “자유에 대한 훼손.” |
미셸 우엘벡 <르 그랑 주르날> 인터뷰 |
우엘벡과 클레망 |
"오늘날 무신론은 죽었고, 정교분리 원칙도 죽었고, 공화국도 죽었다."
우엘벡의 사진을 검색하다보면, 그가 다리 짧은 개 한 마리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곤 합니다. 『복종』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한 질문에 우엘벡은 무엇보다 짧지 않은 시기 동안 겪어야 했던 부모님과 개의 죽음으로 자신이 더이상 무신론자가 아님을 깨달았고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해요. 그는 또한 오랫동안 살았던 아일랜드에서 귀국했을 당시 프랑스 사회에 감돌던 큰 변화를 감지했던 일을 언급합니다. 신을 믿지 않는 그는, 그러나 어떤 사회도 ‘자살’하고 싶지 않다면 종교 없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가정과 함께 종교가 사회학적으로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람들을 연결하고 그들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믿습니다.현재의 불안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가능성 있는 미래
『복종』은 종교에 대한 광신에 가까운 집착이나, 그와 동시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무기력증 등, 그것이 종교든 파시즘이든 언제든 복종할 준비가 된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파문을 던집니다. 소설가 에마뉘엘 카레르는 미셸 우엘벡을 가리켜 “프랑스는 물론, 세계 문단에서 모두가 느끼고는 있지만 분석하지 못하는 그 큰 변화의 쟁점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분위기, 유럽 사회의 불안과 곤경 등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표현해왔던 저자가 『복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는 과연 무엇일까요? 여러분께 『복종』의 일독을 권합니다.문학동네 편집부 김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