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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다녀간 국밥집, 2주 후…

[남기자의 체헐리즘]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 다녀간 가게서 소비하며 '응원'…

"매출 곤두박질, 실질적 지원 필요…손편지 격려에 울컥"

그 국밥집이 잘 됐으면 싶다, 너무 맛있어서. 또 먹고 싶다./사진=남형도 기자

뽀얀 국물을 가득 머금은 한 숟갈 위에, 돼지고기와 파와 부추와 소면 사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촉촉한 하얀 밥알은 고소한 들깨 가루를 곱게 품고 있었다. 그 위에 모서리가 둥그스름한, 다홍빛으로 잘 익은 깍두기 한 점을 올려놓았다. 뜨끈하고 조화로운 것들이 혓바닥에 가득 닿는 순간, 기분 좋은 물질이 봄 햇살처럼 퍼지는 게 느껴졌다. 천천히 오물거리는 시간이 행복이었다. 국물까지 다 들이마신 뒤 생각했다. '내가 이래서 살을 뺄 수가 없다.'


따뜻한 국밥과는 달리 국밥집 공기는 서늘했다. 손님은 나 혼자였다. 적막한 공간을 메우는 건, 아침 방송 소리뿐이었다. "심근경색 골든타임이 30분"이라는 식의 내용이었다. 중년의 직원은 텅 빈 자리에 김치와 깍두기 그릇을 하나씩 놓았다. 주방장은 가게 바깥으로 나가며, 밥 먹는 내 모습을 흘끗 봤다. 때마침 TV 화면 자막에 '코로나19 확진자가 76명 늘었다'는 속보가 떴다.


아닌 게 아니라, 확진자가 다녀간 국밥집이었다. 약 2주 만에 그 가게에 가서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그날 하루는 그런 가게들만 찾아다녔다.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이 시름이 많지만, 더욱 고된 이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갔대', 그 날벼락 같은 소식에 별안간 손님 발길이 끊긴 곳들이다. 방역을 다 한 뒤에도 왠지 찜찜해서, 두려워서, 쉬이 갈 수 없으리라 여겼다. 안 가는 이들 마음도, 안 와서 애타는 마음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어떤 날들을 보내고 있을까, 그 이야기가 궁금했다. 일부러라도 가서 소비를 해봤으면 싶었다. 그래서 그날 하루살이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어서, 응원하고 싶어서, 그런 맘이었다. 24일 화요일, 봄기운이 물씬 다가온 어느 날 아침, 모처럼 집을 벗어났다.


모든 가게 이름과 지역은 익명에 부친다. 서울 시내에 있는 곳들이다. 도움이 되고픈 맘이지만, 또 다른 낙인이 될까 두렵다. 잊히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천혜향이 제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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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국밥집이 잘 됐으면 싶다, 너무 맛있어서. 또 먹고 싶다./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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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가게 앞을 기웃거리는 아이에게, 사장님은 한라봉 한 개를 건넸다./사진=남형도 기자

시장을 먼저 찾았다.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가게에 가서, 응원의 뜻으로 건넬 선물을 살 참이었다. 또 시장 역시 확진자가 다녀간 곳이라, 얼마간 문을 닫았었단다.


뭘 살지 천천히 걸으며 둘러봤다. 여긴 예전에도 다녀간 시장인데, 사람이 확실히 줄었다. 문을 아예 닫은 곳도 꽤 됐다. 방역을 마쳤단 현수막이, 시장 중간중간 놓인 손 소독제가 분위기를 말해줬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사람들을 봤다. 닭강정 가게 사장님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었다. 강정(과자) 가게 사장님은 이미 가지런한 물건을, 괜스레 다시 정리했다. 전병 가게 사장님은 손톱을 깎으며 느리게 가는 시간을 보냈다. 야채 가게 사장님은 당을 충전하려는지 바나나를 들더니, 옆에 있던 동료에게도 건넸다. 족발집 사장님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과일가게 사장님이 멍하니 앉아 있기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벌떡 일어나 날 맞아줬다. 싱그런 주황빛이 설레는 계절이라, 귤과 한라봉에 눈길이 갔다. 그 사이엔 큰 귤처럼 생긴 게 있어, 뭐냐고 물었더니 천혜향이란다. 사장님은 "단맛은 다 좋고, 한라봉이 알갱이가 굵은 편"이라고 했다. 어쨌거나 지금이 제철이란다. 한 바구니만 달라고 했다. 앞으로 들를 가게 사장님들에게 선물하기로 맘먹었다.


계산하고 돌아서서 가는데, 한 아이가 그 과일가게 앞에서 머뭇거렸다. "뭐 먹고 싶어?"하더니 사장님이 한라봉 하나를 자그마한 손에 쥐어서 줬다. 아이는 "고맙습니다"하고 꾸벅 허리를 숙였다. 사장님의 메마른 표정에 잠시나마 미소가 번졌다.

국밥 50그릇이 버티는, 네 식구의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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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돼지국밥집./사진=남형도 기자

이어 들른 곳은 돼지국밥집이었다. 원래는 줄 서서 먹을 정도로 붐볐던 곳이란다.


출입문을 열며 마스크를 한 번 여몄다.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확진자가 다녀갔다 하니까. 방역이 끝났고 괜찮다는 것도 다 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조심하는 게 사람 마음이라. 그러니 상황이 어떨지 짐작이 갔다. 들어선 가게 내부는 역시나 한산했다.


묵직한 뚝배기가 나왔다. 국물 한 숟갈을 떴다. 8000원짜리 국밥 맛은 훌륭했다. 아침 9시45분부터 소주 한 잔이 생각났다. 진하고 뒷맛이 개운했다. 돼지고기는 푸짐하게 담겨 있었다. 왼쪽 벽면 안내문을 보니, 맛있게 먹으려면 양념 부추와 새우젓을 넣으란다. 잇몸 폭격이 걱정됐지만, 들깨 가루도 듬뿍 넣었다. 그리고는 밥 한 공기를 고이 흔들어, 국물에 퐁당 담갔다.


게걸스레 먹었고, 뚝배기를 기울여 마지막 국물 한 숟갈까지 비웠다. 기분 좋은 땀이 주르르 흘렀다. 배가 든든하니 나른한 기운이 밀려왔다. 바로 드러눕고 싶었으나, 해야 할 일이 많으니.


계산하며 맛있는 국밥이라고 엄지를 추켜세웠다. 요즘 어떠시냐는 물음에, 국밥집 사장님은 한숨부터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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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만 남았다. 하나 더 시키려다 말았다./사진=배고픈 남형도 기자

몸도 힘들고 정신도 힘든 시간이란다. 원래 하루 180그릇은 팔았는데, 요즘은 50그릇도 못 판다고 했다. 지난달은 1000만원 적자, 이번달은 1500~2000만원 적자라 했다. 하루 이틀에 끝날 것 같지 않아 막막하다고.


"그래도 잘 버텨야지"하며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힘들지만 혼자만 생각할 수도 없다. 함께하는 직원이 셋이다. 상황이 어렵지만, 한 명도 차마 줄이지 못했다. 이유를 물으니 "식구(食口)잖아, 같이 버텨야지"하고 짧고 담담하게 답했다.


식구, 한집에서 살며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냥 국밥집이 아녔다. "나중에 정 안 되면, 나 혼자 장사해도 돼." 말은 그러면서, 사장님은 겨를없이 무언가 손길이 분주했다. 그랬다. 그곳은 식구들이 생계를 꾸리는 소중한 공간이고, 그걸 지키고 싶을 테니까.

작은 편의점에 온 확진자, "사탕을 6개나 사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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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선 에너지 음료를 사며 이야기를 들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사장님들에게 나눠줄 천혜향이 부족할 것 같아, 에너지 음료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자그마한 동네 편의점이었다. 여기도 확진자가 다녀갔다.


에너지 음료 5개를 계산대에 올려놓고, 카드를 내밀었다. 계산이 끝난 뒤, 사장님에게 취재하러 왔다고 했다. "많이 힘드시죠"란 한마디에 사장님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화요일(17일)에 확진자가 다녀갔단다. 그리고 이틀 뒤 보건소에서 찾아왔다. CCTV를 보니, 검은 마스크에 패딩을 입은 손님이었다. 목이 시원해지는 사탕을 6개나 사 갔다. 목이 아프고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알고 보니 자가격리 중이었단다. 그가 찾아왔을 때, 편의점 안에 손님 세 명이 더 있었다. 사장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확진자도, 점원도, 손님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보건소 직원이 "다 마스크를 했네, 다행이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방역을 다 끝냈다. 동선이 공개됐다. 그것 때문인지, 우연의 일치인지, 그 이후 매출이 매일 10만원씩 떨어졌다. 세 걸음이면, 끝에서 끝으로 갈 수 있는 작은 편의점 월세가 130만원이나 된다. 안 깎아줬냐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자가격리 중인데 왜 돌아다니는 거예요? 법이 더 강력해져야 한다고 생각해"라며 넋두리를 이어갔다. "본사에서 해주는 건 1+1 행사 정도다", "조명 갈아달라는데 아직도 안 해줬다", "그래도 우린 나은 편이고, 매출 50% 떨어진 편의점도 있다"고. 시간을 보니 20분 정도가 훌쩍 지났다. 듣다 보니 뭘 취재하려는지도 잊었다. "그렇죠", "정말 그랬겠어요", "힘드셨겠어요"하며 그저 묵묵히 들었다. 그게 필요한 것 같아서.


매출이 떨어질 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단다. "직장 다닐 때가 좋은 거에요"라며 내게 웃는데, 그 말이 꽤 묵직했다. 나오기 전에 사장님에게 천혜향 하나를 건넸다. "감사하다"며 활짝 웃는 그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가벼워 보였다.

"확진자라니, 상권 살려준 분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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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재료를 쓴다, 그게 이 돈가스집이 잘되는 비결이라 했다./사진=군침이 흐르는 남형도 기자

금세 허기가 졌다. 점심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 하루 세끼 가능한 음식이다.


상가 안쪽에 있는 돈가스 가게는 영업 중이었다. 출입문엔 '관청 소독과 방역을 마쳤다'는 안내문과, '직원 전원이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실은 "들어와도 괜찮습니다"란 간절한 외침이리라 여겼다. 가게에 들어갔다. 23개 정도 되는 좌석에, 손님은 10명 정도. 오후 1시10분쯤, 점심시간이 한창인데도 손님이 많지 않았다.


돈가스 정식을 주문했다. 생선가스와 안심가스가 절반씩 있다고 했다. 일종의 짬짜면(짬뽕+짜장면) 같은 거랄까. 식탐이 많아, 뭐 하나 놓치지 못하는 내겐 제격인 메뉴랄까.


음식이 나왔다. 튀김옷은 곱디고운 밤색이었다. 젓가락으로 집어, 진갈색 소스를 듬뿍 묻혔다. 익숙한 향이 콧구멍을 후벼댔다. 이성을 잃고 한입 베어서 물었다. 바사삭, 섬세하고 고소한 소리가 귓속을 거쳐 대뇌에 도달해 아밀라아제를 뿜게 했다. 촉촉한 고기가 혀에 닿았다. 진한 육즙이 입안 가득 머금어졌다. 밥을 한 숟갈 떠서, 맛의 대통합을 이뤘다. 한 조각이 사라진 게 슬플 정도였다. 이어 생선가스를 먹었다. 바삭바삭한 튀김이 감싼, 따스하고 부드러운 생선 살에 타르타르 소스를 찍었다. 내가 여기 왜 왔는지 까먹어버렸다.


식사를 마칠 때쯤, 낡은 가게 라디오에선 오래된 발라드 노래가 흘러나왔다. 손님도 마침 다 떠났다. 이야기를 듣기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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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이 다 됐다고, 그러니 와도 괜찮다고./사진=남형도 기자

20년 된 돈가스 가게라 했다. 근처 직장서 집단 감염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확진자도 가게를 다녀갔단다. 소문이 났다. 방역하고 직원들은 선별 검사도 받았다. 다행히 모두 음성이었다. 그럼에도 2~3일 정도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연 첫날, 딱 10그릇 팔았다. 하루 매출이 8만원.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생각했단다. 그로부터 시간이 2주 지났지만, 매출은 절반도 회복이 안 됐다. 사장님은 "손님이 들어오시면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확진자에 대한 원망은 없을까. 물으니 사장님은 10년 전 얘길 꺼냈다. "(확진자가 다니는) 옆 건물이 지어진 지 10년 정도 됐는데, 그분들이 우리 가게 다 먹여 살렸다"고. 북적거리는 바람에 근처 상권이 다 살아났다고.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한단다.


다행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기다리는 게 '희망'이라고. 그렇게만 말했다.

6년 된 '밥버거' 가게의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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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잘 나가는 밥버거 메뉴라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돈가스를 먹고 나와 후식으로 '밥버거'를 먹으러 갔다. 원래 이런 사람은 아닌데, 기왕이면 한 군데라도 더 팔아줬으면 했다. 사장님들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냥 마음이 그랬다.


가장 잘 나가는 메뉴 1위를 주문했다. 무려 '햄치즈 밥버거'란다. 단어만 봐도 침샘이 잔뜩 고였다. 배부른줄 알았는데 그게 아녔다. 속으로 이런 다짐을 했다. '먹어라, 점심을 안 먹은 것처럼.'


확진자가 다녀갔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그 전부터 잘 안 됐었단다. 유동 인구가 급격히 줄어서다. 매출은 60~70% 정도 떨어졌다. 포장만 하는 가게라, 손님과 사장님 사이에 비닐이 막혀 있었다. 비닐 밑으로 카드만 주고받는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방역도 끝냈다. 하지만 손님들은 맘처럼 안 왔다. "아무래도 민감한 분들은 거리감을 느끼겠지요." 사장님은 그리 받아들인다며 한숨을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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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밥풀 하나도 놓칠 수 없다. 얼굴을 가려서 다행이다./사진=남형도 기자

가게는 6년 정도 됐다. 지금이,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이란다.


화제를 바꿨다. 밥버거 자랑 좀 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사장님 말문이 좀 트였다. 밥버거를 한 이유가, 국산 쌀을 쓰는 게 맘에 들어서라 했다. 집에서 먹는 걸 하는 게 좋았다면서.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5년 이내에 문 닫는 자영업자가 90% 이상이잖아요. 재료가 좋으니까 자신감은 있습니다. 손님들이 맛있다고 하고, 좋대요. 그 입맛은 정확하지요."


조금은 힘이 난 모습에 마음이 좋았다. 에너지 음료를 건넸더니, 한사코 거절했다. 그래서 한사코 줬다. 그랬더니 감사하다며 받아들었다. "사장님, 파이팅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그는 비로소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손편지 고맙더라고요" 카페서 준비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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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하는 손님들이 고마워서, 카페 사장님이 준비한 선물이란다./사진=남형도 기자

다니다 보니 늦은 오후가 됐다. 시원한 커피 한 모금이 당길 시간이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해 카페에 갔다.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에 포함된 지 3주 정도 된 곳이었다.


카페에 들어서니, 직원이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에는 손님이 3명 정도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잠시 뒤 커피와 함께 자그마한 상자 하나를 건넸다. 뜻밖의 선물이었다. 열어보니 플라스틱으로 된 텀블러였다.


왜 준비한 건지 궁금했다. 직원에게 다가가 무슨 사연인지 물었다.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매출이 떨어졌는데, 확진자 동선에 들어가면서 팍 줄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생각보다 여파가 컸고, 일요일 하루 문을 닫기도 했다. 걱정하는 이들도, 문의도 많았다. 때론 안 좋은 말다툼까지 있었단다.


그런데 이를 응원해주는 것도 손님이었다. 힘내라고 손편지를 써서 건네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고마운 분들이 많아 저희도 마음을 담아 준비한 것"이란 게 직원 얘기였다.


박스를 열어보니, 초록색 플라스틱 텀블러 하나가 있었다. 봄빛이었다. 겉면엔 가게 이름이 곱게 담겨 있었다. 가져오면 음료 할인도 해주니 챙겨달라고. 그리고 상자엔 마치 손글씨 같은, 마음이 꾹꾹 담긴듯한 글씨가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고객 한분 한분의 격려가 큰 힘이 되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선물합니다."

닿을 수 있는 정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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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향을 가게 사장님들에게 건넸다. 잠시나마 웃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하루 동안 가게를 그리 다 돌며 소비해봤다. 4만2000원 정도를 썼다. 천혜향과 에너지 음료를 가득 담았던 가방도, 집에 올 때쯤엔 다시 가벼워졌다. 마음은 더 무거웠다. 사장님들의 그늘진 낯빛과 한숨과 속상한 기분을 고스란히 받고 와서인지.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가게라, 더 버거워 보였다. 원해서 동선에 포함된 게 아님에도 이름까지 낱낱이 밝혀지니까. 순식간에 '긴급재난문자'에, 지자체 홈페이지에, SNS를 통해 지역 커뮤니티에 퍼진다. "거기 확진자 다녀갔대. 절대 가지마"라는 말과 함께.


실효성 있는 정책과 홍보가 필요해 보였다. 정부가 18일, 확진자가 들른 가게 2만9000곳에 복구비 등 300만원을 지급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를 아는 이도 거의 없었다. 대다수 사장님이 "지원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매출은 곤두박질, 반면 비용은 고스란히 나간다. '착한 임대료'도 꿈 같은 얘기다. 편의점 사장님은 "건물주가 알아서 깎아주는 곳은 굉장히 소수"라고 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가게 7곳을 들렀는데, 그중 임대료를 깎아줬다고 한 가게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건물주 개개인 뜻에 달린 일이라, 기대하기엔 쉽지 않아 보였다. 한 카페 사장은 "임대료가 월 200만원이라, 건물주에게 전화해봤는데 '나도 어렵다'며 거절했다"고 했다.


확진자 동선에 포함된 자영업자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을 묻자, '임대료 지원'이나 '세제 지원' 등의 의견이 나왔다.


실제 일부 지자체에선 확진자로 인해 피해가 큰,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이 같은 지원을 한다. 익산시에선 확진자 방문 점포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월 최대 200만원의 임대료를 지원한다. 수원시는 확진자 방문 업체 33곳에 100만원씩 지급했다. 대구시는 임대료를 깎아주는 '착한 임대인'에게 인하액 50%를 국세로 지원하고, 재산세를 감면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지자체별로 내용이 달라, 누구는 지원받고 누구는 못 받는 문제가 생긴다.

그 가게, 없어지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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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게가 없어지면 안 되는 이유는, 손님들이 가장 잘 알았다./사진=남형도 기자

확진자가 다녀간, 가게 사장님들에게 못 들려준 얘기가 있다. 손님들이 차마 못 전한 얘기다. 조금은 쑥스럽고 낯간지러워, 직접 얘기하지 못했다던.


돈가스 가게서 나가던 한 손님은 "여기 5년째 단골인데, 정말 좋은 돼지고기를 쓴다"며 "그러고도 가격은 7500원밖에 안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없어지면 정말 안 된다"며 "다음 주에도 또 올 예정"이라고 했다. 한 카페 손님은 "여자친구와 처음 소개팅해 만난 게 이 카페라 절대 없어지면 안 된다"며 "여기 카페라떼도 정말 맛있다"고, 응원한다고 했다.


감당하기 힘든 재난이었고, 온 국민이 합심해 잘 이겨내고 있다. 상처가 났고, 피가 흘렀고, 이제 조금씩 멎어가고 있다. 조금씩 아물게 할 때다.


어떤 고운 연고를 발라야, 온전히 새 살을 돋게 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상처가 어디에, 어떻게 났는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살펴봐야 알 수 있으리라. 그러니 매일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는, 현장의 고단한 목소리를 들었으면 싶다.


뒤늦게 작성한 기사의 가게 이름을 익명으로 바꿨다. 무심히 까먹은 시간이, 누군가는 얼마나 애태운 시간이었을지./사진=남형도 기자 기사 캡쳐



에필로그(epilogue)

지난달에 쓴 기사 하나가 생각났다. 부산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는 내용이었다. 

한 달이 지났음에도, 가게 이름을 그대로 남겨뒀었다. 코로나19 잠복 기간(2주)이 무려 두 번이나 지났을 시간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 가게 이름을 찾아볼 이들을 생각지 못했다. 많이 무심했다.


뒤늦게 기사를 수정했다. 가게 실명을 'OO마트', '00카페'로 바꿨다. 내가 잊고 지낸 한 달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길었을지 짐작했다. 많이 죄송했다.


알 권리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이들에겐 '잊힐 권리'도 있다고.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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