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오의 3번째 부인 되고 싶어”…‘부부의 세계’ 박해준의 반전매력
‘부부의 세계’ 세상 욕 다 먹던 박해준의 연기와 인성…극한 연기력에 빠져 욕했지만, 매력 넘쳐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남편 이태오 역의 박해준. /사진제공=JTBC |
드라마는 끝났다. 하지만 캐릭터는 여전히 살아 꿈틀거린다. 16일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마지막회가 28.4%(닐슨코리아 집계)라는 기록적인 시청률로 마감했지만 인상적인 캐릭터에 대한 여운은 식지 않고 있다.
드라마의 큰 줄기를 잡고 스릴러물 주인공처럼 강인한 연기를 보여준 김희애(지선우)를 비롯해 매회 욕을 가장 많이 먹은 박해준(이태오)과 한소희(여다경)는 쉽게 잊지 못할 우리 시대 ‘부부의 자화상’이라는 점에서 재미 그 이상의 파장을 낳았다.
이 중 70대 유튜브 스타 박막례 할머니까지 ‘부부의 세계’를 ‘또라이 세계’라고 부를 만큼 ‘또라이’로 지목된 박해준은 ‘반전의 반전’ 캐릭터로 논란의 중심에 선 배우다.
박해준은 김희애의 상대역으로 등장하기 전까진 그리 많이 알려진 배우는 아니다. 부산 출신으로 한예종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 연극원 2기로 입학해 연기 수업을 받았지만 ‘주연’으로 이름을 떨친 영상물은 별로 없다.
영화 ‘화이’에서 스나이퍼 역, 그나마 알려진 드라마 ‘미생’의 천관웅 과장 역, tvN ‘나의 아저씨’에서 겸덕 역 정도로 간간이 눈에 비칠 뿐이었다.
지질함에서 악역까지 '욕' 부르는 캐릭터…연기·인성 모두 '매력'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남편 이태오 역의 박해준. /사진제공=JTBC |
하지만 ‘부부의 세계’로 박해준은 단박에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비록 세상의 욕은 죄다 먹고 있는 ‘나쁜 놈’의 화신으로 떠올랐지만, 이름 석 자와 섬세한 심리 연기는 대중의 눈도장을 찍은 지 오래다.
드라마에서 맡은 악역 너머 실제 인성까지 본 시청자들의 소감은 온라인 카페를 타고 ‘반전 매력’으로 곱절의 화제까지 뿌리고 있다.
최근 경기도 한 촬영현장에 나타난 주부 A씨(43)는 박해준을 향해 준비한 욕을 쏟으려다 그의 예의와 친절에 반해 “실제 보니, 완전히 다른 사람. 이태오의 3번째 부인이 되고 싶다”는 농담 섞인 소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카페에 올린 글에도 종방에서 보여준 이태오의 절절하고 지질한 연기에 박수를 보내는 이가 적지 않다.
“오늘 보여준 지질함~제가 선우가 될 정도였어요. 집에 데려다 목욕시키고 재우고 싶었어요. 박해준씨 팬카페에도 가입해야겠네요.” “이태오 연기에 박해준 아니면 어쩔 뻔. 너무 똑같아서 욕부터 나왔는데 캐릭터랑 구분해야 할 듯.” “구질구질 연기의 최고봉” ‘달달함, 섹시함, 독함, 비굴함, 잔인함 모든 감정 여과 없이 투척“ 같은 찬사도 이어졌다.
박해준은 2007년 31살 늦은 나이에 연극 ‘그대, 별이 쏟아지다’로 처음 연기를 시작했다. 2012년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에서 악랄한 사채업자 역할로 얼굴을 알리며 이후 인상 깊은 악역을 주로 맡았다. 인생을 통찰한 선한 역의 ‘겸덕’도 있었지만, 그에겐 영화 ‘독전’이나 ‘화이’에서의 악역들이 맡겨졌고 또 제법 잘 어울렸다.
독립영화 통해 캐릭터 다변화 구축…"욕 먹고 더 편해져"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 역의 김희애(왼쪽)와 남편 이태오(박해준). /사진제공=JTBC |
악역 중에서도 내면의 갈등, 복잡한 심리 묘사, 선과 악의 묘한 경계에 있는 악역은 독립영화 ‘4등’에서였다. 천재 수영 선수 출신의 폭력 코치 광수 역으로 나오는 박해준은 이 영화에서 그간 쉽게 볼 수 없었던 다층적 내면세계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학생들의 간절함을 부추기는 ‘때리는’ 코치에 대한 분노와 연민, 처벌과 동조 같은 양극의 평가가 날카롭게 이어지는 건 오로지 그의 연기로만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박해준은 ‘부부의 세계’ 출연 섭외를 받았을 때 망설였다고 한다. 최근 잡지와 방송사 인터뷰를 종합하면 박해준은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캐릭터라서 많이 망설였다”며 “이런 극단적인 감정들을 내가 표현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변영주 감독에게 조언을 얻고 바로 오케이했다”고 말했다.
박막례 할머니가 유튜브 방송에서 “이 또라이, 니 주제에 무슨 바람이여. 그럴 정신 있으면 일이나 열심히 하라. 제목도 ‘또라이 세계’로 바꾸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영상이 너무 재미있어서 박막례 할머니 팬이 됐고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드라마를 마음껏 욕하면서 본다는 걸 안 뒤로 마음이 편해졌고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박해준은 그간 중간 지점에서 적당한 내적 갈등을 하는 역할을 통해 캐릭터의 그럴듯한 논거를 구축해 왔다. 그런 면에서 이태오는 처음 만나는 의문의 캐릭터였던 셈. 하지만 영화 ‘4등’은 그런 확장된 캐릭터를 선보이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고 털어놨다.
낙폭 큰 감정 '물 흘러가는대로'…"단단한 가족 돌아보는 계기 됐으면"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낙폭 큰 감정을 두루 소화한 이태오 역의 박해준. /사진제공=JTBC |
박해준은 “‘4등’에서의 광수 역할은 내가 연기하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다”며 “그 캐릭터가 여러 캐릭터로 가지를 칠 정도로 무언가가 조금씩 다 들어있었다”고 했다.
그가 밝힌 이태오는 유약하면서도 보수적이고 가부장적 인물이다. 매회 감정의 낙폭이 컸지만, ‘조절’보다 ‘방관’하는 쪽으로 일관했다. 박해준은 그 이유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올 때 가족이 더 단단해지고 부부끼리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상 인터뷰에서 그는 이태오의 흔적은 하나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조심스럽고 겸손하다. 하지만 재방송에선 여전히 큰 눈망울로 ‘위선’을 부리는 이태오의 섬뜩함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배우는 이렇게 각인된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