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신년음악회의 역사적인 연주들
요한 스트라우스 2세 - '봄의 소리 왈츠'
2017년 빈 신년음악회(New Year's Concert in Vienna) 지휘자가 결정되었다. 베네수엘라 음악교육 운동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LA필하모닉 음악감독이자 상임지휘자인 '구스타보 아돌프 두다멜 라미레스(Gustavo Adolfo Dudamel Ramírez, 이하 두다멜)'이 그 주인공이다. '두다멜'은 1981년생 올해 35살의 나이로 75년 빈 신년음악회 역사상 최연소 지휘자가 되었다.
이미 그는 1999년 불과 18살의 나이에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Simon Bolivar Youth Orchestra of Venezuela)'의 음악감독이 되었으며, 2007년에는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첫 공연을 가졌고, 2009년부터 '에사페카 살로렌(Esa-Pekka Salonen)'의 후임으로 LA필하모닉 음악감독이 되었다.
사실 두다멜이 유명해진 가장 큰 계기는 2005년 24살의 나이에 세계 최고의 음반제작사인 도이치그라모폰(DG, Deutsche Grammophon)에서 출시된 베토벤 교향곡 5번 음반 덕분이다. 워낙 유명한 곡이다 보니 경험 많은 현역 마에스트로들 조차도 레코딩에 부담을 느끼는데, 20대 젊은 청년이 그것도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DG에서 음반을 출시한다는 건 마치 '노다메 칸타빌레' 같은 만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 음반은 출시 이후 호평을 받으면서 현재 '두다멜'이 있게 되었다.
아무튼 이 젊고 열정적인 마에스트로가 지휘하는 빈 신년음악회는 새해 인사로 어떤 음악을 선물해줄지 전세계인들의 기대가 어느때보다 높다.
빈 신년음악회 유래와 전통
빈 신년음악회(빈 新年音樂會, Neujahrskonzert in Wien, New Year's Concert in Vienna)는 세계 최고의 관현악단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매년 1월1일 정오에 '빈 음악협회 황금홀(Wiener Musikverein Goldenersaal)'에서 개최하는 공연이다.
1939년에 시작된 신년음악회는 1959년부터는 전세계에 위성 생중계를 시작하여 90개국 이상에서 4억의 인구가 감상하는(1990년부터는 중국에도 중계가 되어 10억명으로 예상)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공연이자 새해맞이 행사가 되었다.
신년음악회의 전통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치의 '국민 계몽 선전부 장관'인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 1897-1945)'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1939년 12월 31일 정오에 '요한 스트라우스 2세' 특집 연주회가 '클레멘스 크라우스(Clemens Krauss, 1893-1954)'의 지휘로 개최되었고, 그 다음해인 1940년 12월 31일 송년음악회 그리고 다음날인 1941년 1월 1일 정오에 같은 음악회를 연 것이 최초의 신년음악회가 되었다. 괴벨스의 지원이 있었기에 2차세계대전 중에서 신년음악회는 지속될 수 있었고, 1946년과 1947년을 제외하고는 크라우스가 1954년까지 지휘하였다.
크라우스가 신년음악회의 전통을 만들었다면, 현재와 같은 신년음악회 인기를 이끈 사람은 당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었던 '빌리 보스코프스키(Willi Boskovsky, 1909-1991)'다. 크라우스가 1954년 미주 순회공연 중 멕시코에서 사망하자 보스코프스키가 후임이 되어 1979년까지 25회의 신년음악회를 개최하며 빈 신년음악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0년부터는 보스코프스키의 후임으로 당시 빈 국립오페라 음악 감독이었던 '로린 마젤(Lorin Maazel, 1930-2014)'이 1986년까지 신년음악회를 지휘하였는데, 이후에는 고정 지휘자를 두지 않고 해마다 신년음악회 지휘자를 초빙하는 형태로 바뀌었고 지금까지 이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전통 덕분에 매년 빈 신년음악회 지휘를 누가 맡게 될지 전세계 클래식 음악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되어 더 흥미로운 공연 행사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새로운 전통이 1986년 이후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빈 신년음악회의 위대한 유산인 1987년 카라얀의 연주를 영원히 들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빈 신년음악회 레퍼토리의 가장 큰 특징은 '요한 스트라우스' 가문의 음악만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특히 레퍼토리에서 반드시 포함 되어야하는 두 곡은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요한 스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연주 직전에는 지휘자와 연주 단원들이 청중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고, <라데츠키 행진곡>은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며 청중들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친다. 심지어 지휘자도 악단이 아닌 청중을 향해서 지휘하는 해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처음 빈 신년음악회를 보게 된 사람이라면 이런 전통이 당황스럽기까지 하겠지만, 수십 년째 이어오는 신년 행사로 이정도 가벼움은 음악팬들에게 큰 즐거움으로 기억된다.
빈 신년음악회의 주요 레퍼토리는 거의 대부분이 '요한 스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 1825.10.25-1899.6.3)'의 작품들이다. 그는 500곡이 넘는 왈츠와 폴카를 작곡하여, 음악교과서에도 나와있듯이 '왈츠의 왕'이라고 불린다.
아버지 '요한 스트라우스 1세' 뿐만 아니라 동생 '요셉 스트라우스' 등 가족 모두가 음악가로 활동하여, 빈 신년음악회에서는 아버지, 동생의 음악도 들어볼 수 있다.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여러 왈츠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1867년 조국 오스트리아가 '보우 전쟁'에 패하여 실의에 빠진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작곡된 작품이어서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는 애국가 만큼이나 소중한 음악이다.
역사적인 신년음악회
1987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rajan, 1908.4.5-1989.7.16)'이 빈 신년음악회에 등장하게 될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2년 뒤에 카라얀이 서거하였으니, 조금만 늦게 초청했다면 우리는 영원히 이 역사적인 신년음악회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음악계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보수성은 항상 논란의 대상이었다. 1954년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사후 현재까지 상임지휘자인 음악감독을 두지 않고 있으며, 여성 단원을 선발하지 않아서 인권단체와 여성단체의 많은 비난을 받기도 한다. 1997년 정규 악단 편성에 포함되지 않는 하프연주자를 여성 단원으로 선발한 것이 처음이다.
이런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악단의 신년음악회에 카라얀이 꺼낸 카드는 '캐슬린 배틀(Kathleen Battle)'이라는 흑인 여성 성악가였다. 그녀가 부른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녀를 세계적인 성악가로 만들어주었다.
사실 <봄의 소리 왈츠>는 춤곡 스타일의 왈츠가 아니었기 때문에 왈츠이지만 춤을 출 수 없는 특이한 곡이어서 신년음악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연주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라얀과 캐슬린 배틀은 이 곡을 역대 신년음악회 최고의 연주로 만들어낸다. (실제 음악을 들어보자)
1989년에는 카라얀 서거 이후 당대 최고의 마에스트로이자 악동(?)인 '카를로스 클라이버 (Carlos Kleiber, 1930.7.3-2004.7.13)'가 지휘를 맡았다. 카라얀과 정 반대의 스타일로 특정 연주 단체에 속하기를 거부하며 레코딩도 즐겨하지 않는, 말 그대로 자유로운 영혼의 천재 지휘자였다.
갑작스러운 공연 취소의 만행도 서슴치 않았던 인물로, 주최측과 오케스트라는 항상 대체 지휘자를 준비해야할 만큼 괴팍하였지만, 그의 뛰어난 음악성과 희소성 때문에 거의 모든 공연은 항상 매진이 되었고, 그리 많지 않은 그의 레코딩 음반은 명반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흔한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도 남겨져 있지 않은 지휘자다. 카라얀은 '클라이버는 진정한 천재지만 냉장고가 빌 때만 지휘를 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이 풍운아 천재 지휘자가 1989년 지휘를 맡게 되었을 때, 정말 공연이 시작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1992년에도 신년음악회를 지휘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관객의 긴장감(?)은 1989년이 훨씬 살아있는 듯 하다.
그의 신년음악회 연주 중에서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Die Fledmaus)> 서곡을 들어보자.
당대 최고의 지휘자만 연주할 수 있는 빈 신년음악회는 클래식 팬들에게는 최고의 음악 선물이며, 지휘자에게는 영광스러운 한해를 시작하는 공연이기도 하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오자와 세이지(Ozawa Seiji, 1935-)'가 2002년에 유일하게 신년음악회를 지휘하였다. 언젠가는 우리나라 지휘자 중에서 빈 신년음악회를 통해서 전세계에 새해 인사를 할 수 있기를 꿈 꿔 본다.
'빈 신년음악회' 추천음반
1.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 1987년 DG
카라얀의 위대한 유산이자,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75년 신년음악회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반. 캐슬린 배틀은 이 음반에서 <봄의 소리 왈츠> 한곡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2. 카를로스 클라이버 (Carlos Kleiber) – 1989년 Sony
자유로운 영혼이자 위대한 마에스트로가 연주하는 왈츠의 진수. 1992년 연주는 더 자유롭다.
3. 마리스 얀손스 (Mariss Yansons) – 2016년 Sony
러시아 출신 얀손스의 왈츠는 중후함이 살아있다. 빈 신년음악회 단골 지휘자가 되었지만, 가장 최근 녹음이어서 음질이 살아있다.
4. 구스타보 아돌프 두다멜 라미레스(Gustavo Adolfo Dudamel Ramírez) -2017년 Sony
신년음악회 최연소 지휘자라는 사실만으로 소장 가치가 있다. 1월10일 발매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