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상회/TUNE PLANNING
TUNEplanningⓒJeong Taeho |
종로구 북쪽 끝 평창동. 조선시대 대동미, 대동포 그리고 대동전의 출납을 관리하던 관청인 선혜청의 창고였던 평창(平倉)에서 유래된 명칭이 예로부터 부와 권력의 마을임을 암시한다. 지대가 높고 경사가 심해 높은 축대를 쌓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택의 벽돌이 성벽처럼 느껴진다. 길 끝에 다다르면 또 다른 경관을 조금씩 꺼내 보여주는 북한산 산자락의 구불한 능선을 따라 평창동 주택으로 가는 길은 흥미로웠다. 그곳에 본지 2009년 8월호에 소개되었던 평창동 주택, ‘변명-The piano was drinking, not me’의 거대한 바위로 된 벽이 몇 해가 흘러 비와 바람에 시간을 새기며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자연과 동화되어가고 있다. Tom Waits의 노래 ‘The piano has been drinking, not me’의 취기어린 목소리와 가사처럼 공간이 자연에 취한 듯 비스듬히 기울어진 벽과 그곳에 난 창문은 지그재그로 비틀거린다. 벽이 기울어진 것인지 내가 기울어진 것인지 알 수 없는 은유적 표현이 공간 전체를 감싼다. 그 아래 지하의 공간을 디자이너는 또 몇 해 동안 뚝딱거려 새롭게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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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심 종로구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바위산. 산이 저만치 멀리 있을 때는 그저 산일뿐이다. 하지만 그 산이 사람들의 눈앞으로 펼쳐지면 그때의 산은 신앙적인 존재가 된다. 화강암이 세월에의 순응으로 표면에 드러나 만들어진 북한산 또한 그러한 기운을 가진 산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북한산은 서울 근교에서 가장 높고 산세가 웅장하여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鎭山)으로도 불리고,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서 삼각산, 삼봉산이라고도 불렸다. 명산에 명찰 있다고, 북한산은 적지 않은 불적(佛跡)을 갈피갈피 갈무리한 산이기도 하다.평창동이란 지역보다 바위산의 기운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 인고의 시간을 버틴 북한산 바위와 소나무에서 느껴지는 야성미는 예쁘장하고 여린 도심의 자연과는 느낌이 다르다. 북한산 바위의 기세에서 느껴지듯 자연을 차용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건방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평창동 뒤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바위 북한산과 그 바위에 뿌리를 두고 비, 바람을 버티며 자란 소나무. 그 스케일에 비하면 인공의 자연은 그저 시간이 흘러 그 자연에 묻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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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다양상회라 지은 이유는. 다양상회는 본래 전시장으로 설계하려 했으나 그 후 수 년 동안 사무 공간, 기업 연수원, 스튜디오, 레스토랑, 카페 등으로 설계 수정을 거쳐 지금의 프라이빗 라운지가 만들어졌다. 다양상회는 클라이언트의 여가 공간이자 지인들을 불러 파티를 벌일 수 있는 공간이다. 중 이층을 만들어 연주를 할 수 있는 무대도 마련했다. 그야말로 다양하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가진 공간. 그래서 이름도 다양상회이다. 전체 공간의 콘셉트는 무엇인가. 다양상회는 전작의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전작에서는 자연의 바위를 모티브로 인공의 콘크리트를 표현했다면 이번 공간은 바위산에 우거진 울창한 소나무를 모티브로 작업했다. 돌과 나무라는 자연적 소재를 날것으로 보여주기 원했다. 자연을 모티브로 했으니 인공의 손길이 닿은 자연은 당연히 짝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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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을 인정하고 지극히 짝퉁처럼 보였으면 했다. 대신 가공된 물성을 그대로 보여주어 인공과 자연의 근원적인 만남을 목적하고 있다. 의도한 계획이 없는 자연처럼 가구 또한 무심한 듯 놓았다. 자연적 소재를 날것으로 표현하기 위해 마감 그리고 디테일한 부분을 어떻게 계획하였는지. 사계절이라는 인고시간을 버틴 소나무의 나이테는 합판의 켜로 되살렸고, 한쪽으로 옹이를 표현한 곳에 나무를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로 소나무를 매달았다. 중이층의 밀실은 미러박스로 마감하고 그 볼륨을 지탱하는 소나무는 거칠게 다듬었다. 몇 년간 비워 둔 지하공간은 습기가 생각보다 심해서 금속앵글로 벽을 돌리고 그 안에 숯과 돌을 채워 지하의 습한 공기를 순환시키고 방음설계를 했다. 바닥에 심은 바위는 미장을 하면서 직관적으로 설치한 결과물이며, 안의 바위와 수변공간의 바위는 내외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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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The piano was drinking, not me’을 마스터플랜 없이 1년 정도를 샵 드로잉만으로 작업을 했다. 잡지에 실린 후 4년이란 시간동안 ‘변명’의 지하공간이 비워져 있었다. 그 동안 미완성된 ‘변명’은 마음 한구석의 짐이었는데 그 짐을 이제 벗은 듯하다면 변명일까.
Architect: Kim Seok, Na JinHyeong/ TUNEplanning
Location: Jongno-gu, Seoul
Area: 87.47m²
Project Year : 2013
Photographs : Jeong Tae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