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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이 게임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게임'

누구도 이 게임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2016 두산인문극장으로 무대에 오른 <게임>은 ‘폭력’에 관한 연극이다. 이 작품에는 노골적으로 발현되는 인간의 폭력성과 함께 우리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는 일상의 폭력,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폭력의 주체 혹은 대상이 되어 있는 구조적인 폭력이 겹겹으로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폭력들은 ‘게임’의 형태로 비춰진다. 극장에 들어가 객석에 앉는 순간, 관객들은 이 흥미롭고 끔찍한 게임의 참가자가 되어 때로는 폭력을 행하는 주체로, 때로는 보이지 않는 폭력의 대상으로 기능하는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영국의 작가 마이크 바틀렛이 쓰고 극단 돌파구의 전인철이 연출을 맡은 연극 <게임>에서 가장 일차적으로, 그리고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놀라울 만큼 잔인한 인간의 폭력성이다. 극 중 엔터테인먼트 사업가와의 계약을 통해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집에 거주하게 된 가난한 젊은 부부 애슐리와 칼리는, 이 집에 무료로 사는 대가로 자신들의 사생활을 노출하고 ‘고객’들의 마취총 표적이 된다.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고 이 집의 ‘고객’이 된 각양 각층의 사람들은 은밀한 공간에 숨은 채 이들 부부의 사생활을 바라보다 둘 중 원하는 대상을 마취총으로 쏘아 쓰러뜨리는 ‘엔터테인먼트’를 제공받는다. 

누구도 이 게임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눈앞에서 움직이는 살아있는 사람을 마취총으로 쏘아 기절시키고, 기쁨의 환호를 지르는 이들 ‘고객’의 모습은 그 자체로 소름이 끼칠 만큼 잔인하고 섬뜩하지만, 사실 이들은 악마도 범죄자도 사이코패스도 아니다. 그저 살면서 쌓인 분노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혹은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을 찾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 작품은 이들의 이러한 ‘폭력성’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는 일상적인 폭력성이 발현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를 곳곳에 심어놓았다. 장면과 장면 사이, 암전 대신 모니터에 등장하는 여우사냥 화면이나 폭력적인 게임 장면은 우리가 얼마나 폭력적인 세상 속에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다. 또, 극 중 이 잔인한 게임의 희생물인 애슐리와 그의 아들 리암 역시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전쟁영화를 보거나 전자오락에 몰두하며 잊고자 하는데, 이는 곧 폭력의 대상이 다시 폭력의 주체가 되는 연쇄성을 드러낸다. 

 

‘마취총’으로 대표되는 물리적인 폭력성과 함께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또 하나의 폭력성은 바로 ‘시선’의 폭력이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자유와 존엄성을 침해당한 채 24시간 타인의 눈에 노출되어 있는 애슐리와 칼리, 그리고 은밀한 곳에서 이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고객’의 모습은 현대사회에서 더욱 민감한 이슈가 되고 있는 ‘시선의 폭력성’을 문제 삼는다. 애슐리와 칼리 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며 사사건건 자기 의견을 덧붙이는 이들 ‘고객’의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SNS를 통해 남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댓글을 다는 우리의 모습이 이들 ‘고객’의 관음적인 시선과 과연 얼마나 다른지 묻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을 극장 입구가 아닌 뒤쪽 분장실로 입장하게 한 것이나, 무대를 구경하듯 둘러싼 객석에 앉힌 것 역시 이러한 의도를 강조하는 설정이라 할 수 있다. 

누구도 이 게임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또 하나의 폭력성은 바로 ‘자본’의 폭력성이다. 이는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 극 내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하나의 게임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애슐리와 칼리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유와 존엄성마저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은 자기 자식이 눈앞에서 마취총을 맞고 쓰러지는 상황 속에서도 이 집에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가난한 하우스푸어 부부에게 이처럼 안락하고 고급스러운 주거공간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포기할 수 없는 유혹인 것이다. 한편,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 엔터테인먼트가 결국 경쟁자들에 의해 파산한다는 설정은 거대한 자본의 폭력성 앞에서, 어느 누구도 승자나 주체가 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이는 또한 자본의 논리로 굴러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 잔인한 게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공연정보 | 5월 1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글 매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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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kim
채널명
매리킴
소개글
러시아문학과 연극학을 공부하고, 무대 뒤와 객석을 오가며 공연에 관련된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