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밖에 안됐는데 세계1위 찍었다”…식당 구석서 태어나 황제기업 우뚝
“화장실 청소엔 도가 텄다”
역경·투지에 전세계 열광
“GPU가 슈퍼컴 핵심” 예견
1년새 매출 3배, 순익 7배로
상장 25년만에 시총 3조弗
MS·애플보다 훨씬 빨라
1993년 엔비디아를 창업했을 때 젠슨 황 CEO가 공동 창업자들과 함께 일한 레스토랑 데니스의 식당 테이블. 2023년 9월 엔비디아가 시총 1조달러를 돌파하면서 데니스는 이곳을 ‘1조달러 기업을 만들어낸 자리’로 헌정했다. 조만간 ‘3조달러 기업을 만들어낸 자리’로 바뀔 예정이다. [실리콘밸리 = 이덕주 특파원] |
9266일(약 25년 4개월).
엔비디아가 상장 이후 ‘시총 3조달러’ 고지를 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전세계 기업 가운데 이 고지를 넘은 것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까지 단 3곳이다. MS는 상장 이후 3조달러가 되기까지 37년 10개월 11일이 걸렸고, 애플은 42년 6개월 18일이 걸렸다.
2022년 11월 챗GPT 등장 이후 엔비디아는 1년사이 매출 3배, 순이익 7배, 주가는 3배 이상 뛰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썼다. 이 회사의 기업 가치는 10년 전만 해도 100억 달러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엔비디아는 게임용 그래픽카드를 만드는 ‘비주류 반도체 기업’이었다. 그랬던 이 회사가 짧은 기간 동안 300배 이상 성장한 것은 인공지능(AI)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여기에 과감히 베팅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최근 메타 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SNS에 젠슨 황을 소개하면서 “기술 업계의 테일러 스위프트”라고 언급한 것이 큰 화제가 됐다.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라는 의미다. 실제로 젠슨 황의 영향력과 인기는 ‘광기’에 비견될 만큼 뜨겁다.
젠슨 황의 위대한 점은 AI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뚝심있게 장기간 투자를 밀어부쳤다는 점이다. 최근 그의 발표나 인터뷰를 보면 확실한 스토리텔링이 있다. 바로 ‘고난’과 ‘실패에 굴하지 않는 투지’다. 비전과 실무지식을 모두 갖춘 CEO로 유명하지만, 그런 젠슨 황도 엔비디아를 창업한 후 많은 시행착오룰 겪어야 했다.
1993년 4월 5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라틴어 INVIDIA) 것’이란 뜻의 거창한 사명으로 창업했지만, 시작은 미미했다. 창업 3년 차가 되도록 자리를 잡지 못해 파산의 기로에 선 그는 대만의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 측에 진심을 담은 편지를 쓴다. 작은 스타트업인 자신들의 첫 반도체를 만들어달라는 제안이었다. 이 편지는 TSMC를 이끄는 모리스 창 CEO에게 닿았고, 1998년 당시 64세였던 모리스 창은 32세의 젠슨 황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파트너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이듬해인 1999년 엔비디아는 ‘지포스’라는 제품으로 PC용 그래픽카드 시장에서 1위에 오르고 나스닥 상장까지 성공한다. 하지만 게임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여서 항상 불안했고,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해야 했다.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 [사진 = 연합뉴스] |
다들 말렸지만 젠슨 황 CEO는 병렬처리에 강한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슈퍼컴퓨터를 대중화시킬 것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2010년 이 시장에 진출한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긴 ‘겨울’을 지나, AI학습에 엔비디아 GPU가 탑재된 슈퍼컴퓨터가 쓰이게 되면서 1년여 만에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엔비디아는 만드는 GPU는 단순한 계산 수천 개를 동시에 수행하는 ‘병렬처리’에 특화된 반도체다. 사람의 뇌를 모방한 인공신경망으로 AI를 만드는 딥러닝 연구자들이 GPU를 AI 학습에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엔비디아는 이들을 지원해 왔다. 특히 2012년 열린 AI가 이미지를 인식하는 대회에서 GPU를 사용한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 팀이 우승하면서 딥러닝의 기술적 우위가 입증됐다. 엔비디아의 GPU는 AI시대의 총아로 떠오르게 된다.
엔비디아가 AI연구자와 AI기업들과 함께 AI생태계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엔비디아는 GPU를 프로그래밍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인 CUDA를 지배하고 있다. 다른 회사의 AI반도체를 사용하면 CUDA 호환성이 떨어져 불편하기 때문에 사실상 ‘엔비디아 제국’을 건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젠슨 황은 16년 전 서울대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CUDA를 이용한 프로그램과 GPU가 빠른 미래에 개인 컴퓨터를 슈퍼 컴퓨터로 만들 것”이라면서 “컴퓨터의 처리 속도와 성능을 높이는 데 GPU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 비전은 지금의 AI 시대에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1963년 대만 남부 타이난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온 1.5세대 이민자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부모는 젠슨 황의 나이가 아홉살 때 형제를 먼저 미국에 보냈다. 형과 함께 오레곤 주의 한 감화원(소년원) 학교로 보내졌는데, 부모의 기대와 달리 그곳은 폭력적인 환경이었다. 이후 부모님이 미국에 돌아오면서 일반적인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지만, 생활고로 레스토랑 데니스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엔비디아 [로이터 = 연합뉴스] |
젠슨 황 CEO는 올해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생 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설겆이와 화장실 청소를 많이 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 모두를 합한 것보다 화장실 청소를 많이 했을 것”라고 말하기도 했다.
젠슨 황은 오레곤 주립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반도체 회사에 취업했고, 여기서 엔비디아 공동창업자인 크리스 말라초우스키와 커티스 프리엠을 만난다. 세 사람은 1993년 창업 초기 산호세의 데니스 매장에서 만나 식당 테이블을 사무실로 일을 했고, 이 자리는 2023년 데니스에 의해 ‘1조달러 기업을 만들어낸 자리’로 헌정됐다.
그레그 에스테스 엔비디아 기업 마케팅 수석 부사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젠슨 황 CEO가 어느 금요일 저녁 세상 모든 것이 딥러닝이 될 것이고, 우리는 더이상 그래픽 회사가 아니라라고 이메일을 보냈고 다음주 월요일 부터 우리는 AI회사가 됐다”면서 “엔비디아의 성공이 운이었다고 하지만 황 CEO는 AI가 부상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덕주 기자 mrdjlee@mk.co.kr
안갑성 기자 ksah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