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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매일경제

친구 아빠 첩살이 했던 엄마…꼭 용서해야 할까요

*주의 : 이 기사에는 드라마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43]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사람은 자기 인생을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들여다본다. 반면, 다른 사람은 그의 인생을 관찰자 시점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이 종종 억울하단 느낌을 받는 건 상당 부분 이러한 시점의 간극에서 온다. 본인의 인생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신이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행동은 거의 없다. 남이 보기엔 돌발적인 행동도 한 사람의 인생을 통으로 봤을 땐 그 나름의 합리성을 지니는 경우가 다수다. 그러나 관찰자 시점으로 자신의 인생을 파편적으로 바라본 타인들은 일부분만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고, 비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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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 마지막 에피소드 `옥동과 동석`.

'우리들의 블루스'(2022)에는 암 말기인 엄마를 외면하는 중년 남성 이동석(이병헌)의 이야기가 나온다. 엄마 강옥동(김혜자)이 목포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지만 동석은 거절한다. 지인들은 엄마의 마지막 소원을 외면하는 동석을 모질다고 비판하지만 그는 불효자 취급을 받는 게 억울하다. 남들은 자신의 엄마가 아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속속들이 모른다. 그의 엄마는 남편과 딸이 죽은 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아들 친구 집에 첩살이를 하러 들어갔다. 친구 아버지 집에 들어가는 대신 둘이서 열심히 살아보자고 부탁하는 아들의 뺨을 때리고, "이제 어멍(엄마)이라 부르지 마라. 작은 어멍이라 부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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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은 자애롭고 현명하다. 동네 모든 사람이 존경한다. 단 한 사람, 그의 아들을 제외하고.

개와 고양이는 따뜻하게 감싸는 엄마, 정작 나에겐 냉랭한 시선만

사실 그의 지인들은 동석이 어렵게 살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드라마 안에서 주인공들은 친구 집에 수저가 몇 개 놓이는지 알 만큼 서로 가깝게 지낸다. 동석이 누나를 잃은 상처를 채 치유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의 엄마가 재가해 아들 마음 생채기를 더욱 깊게 후벼팠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다만, 이제 그의 모친도 여려질 만큼 여려졌고, 더 이상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용서하는 게 동석을 위해서도 좋지 않으냐고 권유하는 것이다. 돌아가신 후엔 후회만 남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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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어린 시절 동석에게 보여준 차가운 표정은 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친구와 가족조차도 상대방 인생사를 완벽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에겐 온전히 이해받기 원하는 마음과 남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숨기고 싶은 심리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엄마가 친구 아버지와 손잡고 방에 들어가 불을 껐다는 이야기를 어린 동석은 쉽게 털어놓지 못했을 것이다. 그 집 자식들이 자신을 매질할 때, 엄마가 '남의 집 개 맞는 것' 보듯 외면했다는 사실을 맘 편히 고백하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가 길거리 개와 고양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며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이라는 걸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정작 자식에겐 따뜻한 시선 한 번 준 적 없단 사실이 그에겐 더욱 치욕스러웠던 이유다. 떠돌이 동물보다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가 된 듯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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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석은 연애에 자주 실패했다. 여성에게서 본인 모친과 닮은 모습을 발견하면 덜컥 겁을 먹었다.

더욱이 엄마가 목포에 가자는 이유는 친구 아빠의 제사를 챙기기 위해서다. 엄마가 첩살이 하던 그 친구 아버지 말이다. 끝내 동석이 엄마와 동행을 결심하는 건 "너도 그 사람 밥 얻어먹었다"는 모친 말에 동의해서는 아니다. 그녀가 원하는 바를 다 들어준 뒤 그간 쌓였던 질문을 죄다 던지기 위해서다. "제사만 끝나면 내가 무슨 말할지 기대하라"고 벼르는 동석은 엄마가 죽기 전에 제대로 상처를 한 번 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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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석은 엄마가 자신을 보는 눈길이 너무 차갑다고 생각한다.

"거지 같은 것들 거둬줬더니"란 말에 엄마는 분노했다

제사에 따라 들어갈 생각은 없었던 동석은 1층에서 그 집 형제를 만난 뒤 마음을 바꾼다. 이제 어느덧 중년이 된 그 남자는 점잖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동석의 눈엔 어린 시절 자신을 때리며 웃던 잔인한 얼굴이 겹쳐 보인다. 거기서 그와 눈을 마주치고도 들어가지 않으면 마치 도망가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굳이 제사에 참석한 그는 "그 많던 너네 아방(아버지) 재산 다 말아먹고 겨우 이러고 사냐"며 일부러 속을 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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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은 사실 그의 자식을 누구보다도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티낼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뿐이다.

잠자코 듣고 있던 남자는 동석에게 음식을 던지며 화를 낸다. "너 때문에 우리 아방이 쓰러져서 사지 운신을 못 하다 죽었어. 거지같이 사는 것들 불쌍해서 거둬줬더니 도둑질이나 하고 말이야". 그 말은 두 남자를 간신히 말리던 엄마 강옥동을 분노하게 만들기 충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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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석은 굳이 제사에 따라 들어가, 그 집 아들 속을 긁는다.

"느 어멍, 느 아방이 무사 동석이 때문에 죽어시니? 느 아방이 술 먹어 다치고 느가 배 팔아 땅 팔아 사업 말아먹엉 기가 차 돌아가셔신디. 무사 야일 잡어. 사지 운신 못 하는 느네 어멍 15년, 느네 아방 10년 똥 기저귀 갈아 주멍 종노릇한 돈 내놓으라. 그거 받으면 나가 야가 가져간 돈 갚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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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동은 남자의 "거지 같은 것들 거둬줬더니 도둑질이나 하고 말이야"란 말에 분노한다.

내 인생을 엄마가 다 모르듯, 엄마 삶에도 내가 모르는 챕터가 있다

동석은 엄마가 세상을 뜰 때까지 정식으로 사과를 받지 못한다. 그렇지만 동석의 얼어붙은 마음은 그날 제사를 기점으로 서서히 풀어진다. 자신의 편에서 엄마가 진심을 담아 싸워준 것이 수백 번의 "미안하다"는 말보다 그에겐 더 큰 위로가 된 것이다. 엄마마저 내버린 자식이라는 생각에 상처받았던 동석은 모친이 적어도 자신을 보며 마음 아파하고 있었단 사실에 위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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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석은 엄마를 용서하기로 결심한다.

동행 이후 그가 용서를 결심한 건 단지 모친이 자신의 편임을 확인해서만은 아니다. 그날 엄마가 분노하며 쏟아낸 말을 통해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됐다. 자기 인생에 엄마가 미처 보지 못한 장면이 있듯, 자신이 엄마 삶에서 못 보고 지나친 챕터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뤄진 이 드라마는 총 20회의 에피소드를 통해 반복적으로 얘기한다. 내 인생에서 남이 알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듯, 내가 친구와 가족의 삶에서 놓치고 지나친 페이지가 반드시 존재한단 것이다. 당신이 용납받길 원하는 만큼, 당신 주변 사람들도 당신의 이해와 용서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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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 포스터.

장르: 드라마

극본: 노희경

연출: 김규태

출연: 이병헌, 김혜자, 신민아, 차승원, 이정은, 고두심, 한지민 등

평점: 왓챠피디아(3.9/5.0)

※2022년 8월 12일 기준.

감상 가능한 곳: 넷플릭스, 티빙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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