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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당일치기 여행 :: 진한 여운으로 남기는 겨울, 전주와 함께

전주에 대한 기억은 꽤 촘촘하다. 내 인생에는 크게 열여덟 스물하나 스물다섯 그리고 스물여섯의 전주가 있다. 다른 계절, 다른 나이에 방문했지만 그 중심에는 늘 비빔밥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전주만의 편안하면서도 고유의 진한 매력이 있었다. 비빔밥을 먹고 한옥마을을 둘러보다 돌아오는 코스도 좋지만 조금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전주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주목하자.

1. 전주천 산책로

"새로운 곳은 가고 싶지만 새로운 사람은 만나기 싫어."

누구도 묻지 않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내향인은 동의의 끄덕임을 표하며 이 글을 작성 중이다. 하지만 이 문장에 동의하는 이가 없지는 않으리라. 리프레시가 필요한 순간일수록 말은 줄이고 싶은 날이 있기 때문이다. 사색의 시간을 가지며 고즈넉한 겨울의 산책길을 즐기고 싶다면 한옥마을을 조금만 벗어나 보자.

한옥마을에서 오목대를 향해 걷다 보면 전주천을 따라 흐르는 산책로를 하나 만나볼 수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오목대와 청연루 중 가까운 곳을 지도에 찍고 출발하는 것도 방법. 고요한 산책로는 관광객보다는 주민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인지 더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색을 거의 잃어버린 계절에도 자연이 만들어낸 풍경은 보물 같다. 찬 공기 속에서도 발걸음을 재촉해 걷다 보면 어느새 추위는 물러가고 청명한 공기와 풍경만이 남는다. 특히 산책로의 양옆으로 보송보송한 억새 밭이 겨울철 산책로에 포근한 매력을 더한다.

걸어두고 싶은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하늘이 좋은 날 청연루에 가자. 마치 데칼코마니 작품처럼 물에 비친 청연루를 담을 수 있다. 산책로에서 바라본 청연루는 그 어떤 그래픽 효과보다 오묘한 멋을 자랑한다. 물에 비쳐 형성된 타원형의 이미지 덕에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마법의 문이 연상되기도 한다.

- 주소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940-2

​2. 향기품은뜰

겹겹이 껴입은 옷들로 몸이 무거워지는 겨울이다. 게임 속 세계처럼 마음대로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면, 그렇게 영원히 따뜻한 계절에 머무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바람은 현실이 될 수 없지만 찬바람이 매서운 계절에도 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한옥마을에서 차로 5분 거리, 중노송동에 위치한 향기품은뜰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4색 나침판을 간절히 원했던 어린 날이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나침반을 돌려 원하는 공간에 도착하곤 했다. 정말 그런 나침반을 돌려댄 것처럼 파란 문을 열고 들어간 내부는 온통 봄이었다.

충분한 관심과 사랑으로 윤기를 머금은 초록 식물들, 따뜻한 조명, 네모나게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까지 얼어붙은 손도 녹이는 분위기에 절로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이곳은 카페 겸 소품 숍이다. 발 디딜 틈 없이 물건들로 빼곡한 하울의 방처럼 통행로를 제외하고는 구석구석 소품들로 가득하다. 실제로 러시아에서 살다 오신 사장님께서 오랜 시간 동안 모아오신 것들이라고. 앤티크 찻잔부터 러​시아 인형, 빈티지 패브릭까지 진열된 모든 상품은 실제로 모두 판매 중이다.

한참을 구경하고 모과 차와 카모마일차를 주문했다. 모과 차에는 사장님께서 직접 재배하신 모과가 들어간다. 달달한 모과에 레몬즙을 더해 새콤달콤한 맛이 기분 좋다. 없던 감기도 절로 낫는 맛이다. 당도 조절을 위해 따로 물을 포트에 담아 준비해 주시는 센스도 좋았다.


카모마일차 역시 사장님께서 직접 재배하신 잎을 사용한다. 티백 차도 오천 원에 마시는 세상에서 이런 식의 대접은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카페인이 없는 꽃 차라 밤낮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다.

야외 정원은 봄과 여름이 되면 파랗게 물든다. 꽃이 피고 싹이 나면 사장님의 감각으로 일궈낸 또 다른 공간이 완성되니 따뜻한 계절에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누군가의 사랑과 애정으로 꾸려진 공간은 지나온 시간과는 관계없이 늘 반짝인다. 오래된 물건들 틈에서 은은하게 맴도는 먼지 냄새까지도 영화 같었던 곳, 분명 그 이름처럼 향기를 품은 뜰이다.

- 이용시간 : 화~일 10:00-20:00

- 주소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인봉 1길 49-5

- 문의 : 063-232-2799

3. 전북도립미술관(한지워크와 현대미술전)

먹고 마시는 여행도 좋지만 어딘지 색다른 코스를 궁리 중이라면 미술관으로 향하자. 전주 시내에서 차로 15분을 달리면 숲속의 작은 미술관을 만나볼 수 있다. 전라북도에서 운영 중인 전북도립미술관이 그 주인공.

미술관에서는 현재 '달빛 연가: 한지 워크와 현대미술전'을 진행 중이다. 한지의 쓸모를 묻는 질문에 초등학교 미술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면 집중해 보자. 전시에서는 한지를 활용해 회화, 수묵화, 판화, 오브제 설치,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무언가의 가능성을 마주하는 일은 설렌다. 대상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감동은 진해진다. 전시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한지의 무한한 가능성을 조명한다. 얄포름한 종이 한 장이 단단한 오브제가 되고 빛과 색을 받아 닿을 수 없는 달의 모습을 재현하기도 한다.

직접 몸을 움직여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품들도 인상적이다. 드라이기의 온도를 이용해 그림의 숨겨진 비밀을 발견해 내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작품을 눈과 귀로 담아내는 등 둘러보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많은 이에게 과거가 된 한지.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에서 현재진행형 중이다.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 같은 건 약속할 수 없지만 우연히 그 가능성을 들여다보았던 시간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내년 2월까지 진행하며, 입장료는 무료이다. 새해를 위한 전시로도 추천한다. 작품을 통해 나도 잊고 있던 내 안의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 이용시간 : 화~일 10:00 - 18:00

- 주소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길 111-6 전북도립미술관

- 문의 : 063-290-6888

사람 사는 모양은 다 똑같구나 싶다가도 작은 일상에서 고유의 멋을 발견할 때, 또 다른 여행을 결심하곤 한다. 역시 오길 잘했구나 같은 생각과 함께 말이다. 한옥과 비빔밥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진한 여운이 매력적인 전주, 보다 새로운 기대로 계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

​# 한옥길 따라 천천히 남겨보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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