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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 총리 말하길 “와이어 없는 브라는 가슴을 못받쳐줘서요”

지난 주말, TV드라마 속에는 유난히 ‘문제적 장면’이 많았습니다. SBS 금토드라마 <더 킹: 영원한 군주>는 ‘와이어 브라’ 운운하는 여성 총리를 앞세워, 여성의 야심을 성적 어필에 가두는 시대착오적 연출로 공분을 샀고,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여성의 폭력 피해를 오락거리처럼 소비해 뭇매를 맞았습니다. KBS 주말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는 여성을 ‘상품’ 삼는 유흥업소식 호객 행위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방송했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TV드라마가 보는 ‘여성’이란 무엇인지, 그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주말이었는데요. 각 드라마의 문제들을 짚어봤습니다.

<더 킹> 최초 여성 총리의 ‘와이어 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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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금토드라마 <더 킹: 영원한 군주> 의 한 장면. 극중 구서령(정은채)은 대한제국 최초의 여성 총리지만 ‘예쁘고 섹시한 여성’의 틀에서 벗아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인다. SBS 제공

“와이어 없는 브라는 가슴을 못 받쳐줘서요.”


지난 17일 방송된 SBS 금토드라마 <더 킹: 영원한 군주>(이하 <더 킹>) 첫 회, 대한제국 최초의 여성 총리 구서령(정은채)의 첫 등장을 알리는 대사입니다. <더 킹>은 현재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과 평행세계를 이루는 입헌군주제 대한제국을 주된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구서령은 대한제국 최연소 총리이자 최초의 여성 총리입니다. 궁에 들어서기에 앞서 보안 검사를 받던 그는 울리는 경보음에 익숙하다는 듯이 씩 웃으며 ‘와이어 브라’ 이야기를 꺼냅니다.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개진된 ‘탈브라’, ‘탈코르셋’ 운동의 흐름을 완전히 역행하는 발언이,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인물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구서령의 업무용 복장도 함께 도마에 올랐습니다. 몸의 곡선과 (사회가 원하는) ‘여성성’을 강조하는 구서령의 복장들은 현직에서 이미 뛰어난 성취를 보인 현실 여성 정치인들의 모습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방송 직후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솟구쳤습니다. 여성의 몸을 옥죄는 성차별적 관습을 타파하려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무색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정치적·사회적 야심을 ‘성적 어필’로 표현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입니다. 트위터 이용자 밀(@803page)은 “탈코르셋·노브라 운동이 무색하도록, 영향력이 적지 않은 작가가 공중파에서 노출 심한 옷을 입은 여성 총리 캐릭터 입을 빌려 이런 대사를 내보냈다”며 비판했습니다. 권력의 최정점에 선 총리마저 ‘예쁘고 섹시한 여성’의 틀에 가두는 <더 킹>의 세계, 아무리 왕이 존재하는 가상의 ‘제국’이라지만 너무 뒤떨어진 것 아닐까요?

여성 폭력이 VR 게임인가요? 뭇매 맞은 <부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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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방송된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 의 한 장면. 주인공 지선우(김희애)가 남성 괴한의 습격을 받는 장면이 1인칭 가해자 시점으로 그려졌다. JTBC 제공

시청률 20%를 돌파한 화제의 드라마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에도 역시 시청자들의 비판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해자 시점으로 연출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지난 18일 방송된 8회에서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던 지선우(김희애)는 유리창을 깨고 침입한 남성 괴한의 습격을 받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남편 이태오(박해준)의 악랄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면인데요, 문제는 가해자 시점에서 촬영된 폭력적이고 잔혹한 연출입니다. 가해자 남성 1인칭 시점에서 촬영된 화면은 목이 졸리고 발에 채이고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지선우의 처참한 모습을 3분 여간 집요하게 쫓았습니다.


15세 시청가에 맞지 않는 과도하게 폭력적인 연출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누리꾼들은 “폭력 장면이 마치 게임VR처럼 가해자 입장에서 묘사되는 게 역겹다”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해당 장면이 폭력 피해를 겪은 여성들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줄이었습니다. <부부의 세계>는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 등에서 드러나듯 심각한 사회 문제인 여성 대상 폭력을 마치 ‘게임’처럼 가벼이 다뤘습니다. 상대를 무자비하게 죽이거나 때리는 1인칭 VR게임을 연상케하는 연출은 여성 대상 폭력을 그저 ‘오락거리’로 소비하려는 제작진의 태도를 드러냈습니다. 시청자들은 해당 장면을 문제 삼는 민원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연달아 제기하고 있습니다.

유흥업소가 된 김밥집, 시대 역행하는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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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방송된 KBS 주말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 에는 유흥업소를 연상케하는 김밥집의 영업 방식과 고객들의 모습이 여과없이 방송됐다.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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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방송된 KBS 주말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 에는 유흥업소를 연상케하는 김밥집의 영업 방식과 고객들의 모습이 여과없이 방송됐다. KBS 제공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장면은 같은 날 방송된 KBS 주말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지난 18일 방영분에는 유흥업소를 운영하던 강초연(이정은)이 함께 일한 직원들과 함께 김밥집을 여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문제는 이 김밥집의 영업 방식과 이를 다루는 제작진의 태도입니다.


강초연과 직원들은 장사가 잘 되지 않자 요란한 접객 행위에 나섭니다. 짧은 치마에 진한 화장을 한 여성 직원들은 마치 ‘폭탄주’를 만들 듯 사이다를 따르고 나눠주는 등 ‘유흥업소식’ 접객 행위를 이어갑니다. 남성 고객들은 이같은 접객 행위에 ‘홀린 듯’ 가게로 들어섭니다. 물론 김밥 때문이 아닙니다. 여성 직원의 ‘성’을 소비하기 위해서죠.


성인뿐 아니라 교복을 입은 청소년까지, 온통 남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김밥집 풍경은 가벼운 배경 음악 속에서 ‘유쾌하게’ 표현됩니다. 여성을 남성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성적 상품으로 보는 유흥업소의 논리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공영 방송 주말극에 속에 등장한 것입니다. 방송 이후 <한 번 다녀왔습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KBS는 그 흐름을 역주행한다. 여성의 성상품화·성접대 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등 비판의 글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친숙한 김밥집의 외양을 두르고, 발랄한 음악을 깔아도 여성을 대상화·상품화하는 낡은 사고방식의 문제는 가려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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