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초록빛 보약’ 제철 미나리…보랏빛 밑동 보일 때가 ‘제맛’[지극히 味적인 시장]

(104) 경북 청도 오일장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청도 미나리 언제 가냐? 비어 있는 날짜가 몇개 있는데.”


청도 미나리가 궁금하시다며 허영만 선생님께서 문자를 보내셨다. 청도라? 미나리가 맛으로 빛나는 청도는 봄이 제격이다. 청도행은 오랜만이다.


청도역 앞에서 샀던 매운 무짠지 김밥이 먹을 만했다는 기억, 십년 전 쿠팡에서 근무할 때 반건시 때문에 두어 번 갔던 게 전부인 동네다. 읍내에서 한재 쪽으로 가던 길가에 있던 곶감 공장이 어렴풋이 생각날 정도로 청도와의 인연은 거의 없었다. 선생님이 주신 날짜와 장날을 맞춰보니 4월9일(4, 9장), 일요일과 맞았다. 날짜도 날짜지만 봄이 제철인 미나리 보러 가기에 딱 좋은 때였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침 길을 부지런히 달려 정오 즈음 청도에 도착했다. 남쪽과 중부 지방의 벚꽃은 거의 진 상태라 꽃구경 차량이 드물어 염려보다는 차가 밀리지 않았다. 선생님 모시고 간 시장은 작년 산청 오일장 이후 거의 1년 만이다. 청도는 대구와 가깝다. 대구 수성구와 달성군과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하다. 장이 서는 주변에 큰 도시가 있으면 장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람이 사라지는 지방 작은 도시로 인구가 제법 있는 도시에서 구경 삼아 오는 사람이 많다. 구경하는 사람이 많으면 당연지사 물건도 많아지는 법. 청도가 그랬고 지난번 광주 옆 화순도 그랬다. 그렇지 않은 곳은 파는 이도 사는 이도 드물다. 청도 오일장은 상설 시장의 주 통로를 관통하는 모양새다. 상설 시장이 있어도 유명무실. 비와 눈을 막는 아케이드 형태로 만들고 건물을 보수했어도 주 통로 외에는 썰렁한 모습이다. 그나마 오일장이 서야 사람 구경, 물건 구경을 할 수 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해발 900m’ 화악산 아래 맑은 물이 키워낸 미나리

삼겹살과 ‘찰떡궁합’…향긋한 내음이 느끼함 잡아줘


두릅 등 제철 나물, 데친 오징어와 무쳐 먹어보면 입 안에 ‘봄’이 한가득

제피가루·방아 듬뿍 넣은 매운 수제비 아린 국물 맛이 ‘찐이야’


청도 시장을 한 번 왔다 갔다 했다. 길쭉한 모양새인지라 상품이 무엇이 있는지 탐색부터 했다. 청도와 대구는 분지형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높은 산도 있지만 낮은 산도 있기에 산나물이 꽤 있었다. 두릅과 가죽나물(참죽나물이 표준어다)이 먼저 보인다. 조금 더 가보니 할매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소일거리 삼아 나온 듯 봇짐이 적다. 파는 이 뒤에 깔끔한 상자, 많이 사용한 흔적이 있는 봉지가 많다면 나이와는 상관없이 전문적으로 장사하는 이들이다. 만일 할머니 뒤에 파란색 비닐봉지가 많다면 도매상한테 받아서 파는 할매다. 반면에 작은 끌차에 딱 들어갈 정도의 보따리만 있다면 대게 용돈 벌이하러 나온 할매다. 앞에 놓인 물건도 다양하지도 않거니와 많지도 않다. 전문적으로 파는 이의 물건은 깔끔하다. 용돈 벌이 할매들의 상품은 깔끔함은 같으나 나물의 크기가 들쑥날쑥하다. 시장 초입에 이런 할매들이 모여 있다. 그중에서 한 가지 나물이 눈에 띄었다. “이게 뭔가요?” 언뜻 보기에는 작년에 진도와 강진에서 본 별꽃나물과 비슷해 보였다. “이거 X@나물.” “예?” “호~나물.” “예???” 경상도나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할매들 말은 참으로 알아듣기 힘들다. “홀, 잎 나물. 홀!” 한 음씩 끊어서 알려 주셨다. 그제야 나물 이름이 귀에 들어왔다. “아제요, 잊기 전에 적어요 적어.” 농담을 던진다. “된장에 참기름 조금 넣고, 아예 안 넣어도 괜찮다”고 조리법까지 알려주셨다. 홀잎나물은 화살나무의 어린 순이다. “얼마예요?” “이거 3000원.” “주세요.”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정색했다. “왜 이리 싸게 받으셔요?” “그냥 그냥 팔고 치워야지.” 경북 칠곡이 고향이신 엄마에게 나물로 무쳐 드리려고 샀다. 무쳐보니 끝맛이 고소함이 너무 좋은 나물이었다. 시장을 다니면서 이것저것 샀다. 첫 순인 듯 순한 맛이 좋은 오가피 순, 작달막한 크기의 두릅, 두릅과 오가피와는 또 다른 쌉싸름함이 자랑인 엄나무 순까지 다양하게 샀다. 봄철이면 사서 냉동고에 쟁여 두는 제피 잎도 잊지 않았다. 시장을 돌아다니는 사이 내 손에 들려 있는 봉지가 5개가 되었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청도는 미나리가 유명하다. 특히 화악산 물길 따라 펼쳐진 미나리꽝에서 생산하는 한재 미나리는 전국에 널리 알려진 브랜드다. 나라에서 특정 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축·수산물에 대해서는 지리적 표시제로 엄격하게 보호를 하고 있다. 청도의 한재 미나리 또한 이런 법적인 제도 아래에서 보호받고 있다. 한재에 가보면 천혜의 미나리의 생산지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해발 900m 화악산을 타고 내려오는 한재천 따라 미나리를 키워내는 하우스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산과 하우스뿐, 공장 등 오염원이 보이지 않는다. 미나리는 맑은 물이 키워내는 선물이다. 좋은 물이 있는 곳에 맛있는 미나리가 생산된다. 참외로 유명한 성주 시장에 가면 참외 보기가 힘들다. 미나리로 유명한 청도 시장에 가면 미나리 구경이 힘들다. 현지인들에게 쉽게 구할 수가 있으니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청도 시장에서 차로 15분 정도만 밀양 방향으로 잡으면 생산지가 나온다. 길 따라 올라가면 삼겹살과 미나리 파는 식당이 곳곳에 있다. 2월과 3월의 주말에는 차가 밀릴 정도로 성황이라고 한다. 그중 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삼겹살과 미나리를 주문했다. 소주 한 잔을 따르고 삼겹살이 익기를 기다렸다. 삼겹살이 익을 즈음 미나리를 올리고 안주를 준비했다. 소주 한 잔 들이켜고 잘 구운 삼겹살에 미나리를 싸서 먹었다. “그래 이 맛이야!” 대신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미나리의 상큼한 향이 생각보다 약했다. 그렇게 먹다가 선생님을 알아본 주인장이 다가왔다. “원래 이렇게 향이 약한가요?” 서운한 마음에 선생님이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게 사연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향 좋은 미나리 대신 연한 것만 찾아서요? 저희도 어쩔 수 없이 손님 입맛에 맞추고 있습니다.” “향 좋은 거 없나요?” “잠시만요.” 잠시 후 아까와 모양이 조금 다른 미나리가 나왔다. 막 가져온 미나리의 밑동이 아까와 달리 진했다. “한 번 맛보세요?” 가져온 미나리를 맛봤다. 미나리의 향이 입안을 마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삼겹살의 느끼함을 꾹꾹 눌렀다. 미나리는 향을 즐겨야 함에도 연한 미나리가 향기 좋은 미나리를 밀어내고 있었다. 생산지의 판매점도 향기 좋은 미나리와 연한 미나리를 같이 판매해야 함에도 손님 요구만 생각한 듯싶어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 같다. 삼겹살에 미나리 먹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향기 좋은 미나리에 삼겹살을 더 맛나게 먹는 게 중요함에도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우쳤다. 다음날은 한재 꼭대기에 있는 유기농 미나리 생산지에 갔다. 하우스는 얼추 생산이 끝나고 노지 미나리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밑동이 진한 보라색인 미나리를 맛봤다. 어제와 달리 단맛이 있었다. 유기농은 더디 키우는 방법. 크기는 작아도 미나리의 단맛과 향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어제는 사지 않으셨던 선생님도 이것은 사실 정도로 향도, 맛도 좋았다. 골막 미나리 (054)372-1242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냉동고에서 오징어를 꺼내 데쳤다. 두릅, 오가피 순, 엄나무 순도 데쳤다. 그리고 사 온 미나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오징어 데치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 오징어 몸통이 하얗게 변하는 시점을 잘 봐야 보들보들하게 삶을 수가 있다. 고추장, 매운 고춧가루, 다진 마늘, 설탕 조금과 아주아주 조금의 참기름을 넣고 무쳤다. 향기 좋은 채소를 무칠 때는 참기름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정도여야 좋다. 참기름을 많이 넣으면 참기름 향만 난다. 그렇게 청도장에서 사 온 봄을 무쳤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청도는 참으로 향기로운 도시라는 것이다. 한재 미나리의 싱그러운 향뿐만 아니라 제피나 방아로 향을 낸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청도역 주변으로는 제피를 듬뿍 넣고 먹는 추어탕도 있지만 ‘찐’은 다른 곳에 있었다. 청도 읍내에 매운 수제비를 파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매운 수제비? 청양고추나 캡사이신을 넣고 끓인 건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니다. 제피가루(실제로는 초피가루)와 방아를 듬뿍 넣고 끓였다. 수제비가 나올 때 따로 제피가루를 내준다. 마라탕의 마라가 제피 맛과 같다. 매운맛보다는 아린 맛이 맞지만, 맵든 아리든 국물에 매력이 철철 넘친다. 필자가 좋아하는 식당의 특징 중 하나가 메뉴가 단순하다는 것이다. 여기는 매운 수제비, 들깨 수제비만 한다. 반찬도 단순하다. 오롯이 국물과 면과 수제비에 모든 공력을 쏟아붓는다. 국물 요리 먹을 때 땀이 잘 나지 않는다. 매운 수제비 먹고 나서니 부는 봄바람에 시원함을 느낄 정도로 기분 좋은 땀이 나 있었다. 돌아서면 생각나는 맛이다. 청도 매운수제비집 (054)373-7945



▶김진영
경향신문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8년차 식품 MD.


김진영 MD


▶ 삼성 27.7% LG 24.9%… 당신의 회사 성별 격차는?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실시간
BEST
khan
채널명
경향신문
소개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다,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