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다가 깨달은 것…부동산은 짓는 것보다 사는 게 낫다
이숙명의 ‘유유자적’
발리의 누사프니다에 집을 짓기 시작한 지 13개월이 지났지만, 겨우 윤곽만 드러났다. 외형만 보면 짓고 있는 건지, 철거하고 있는 건지 분간이 어렵다. |
당신이 실연을 당하고 외로움에 지쳐 점집에 간다 치자. 점쟁이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6개월 안에 연애수가 있다.”
점쟁이 입장에선 너무 먼 시간을 대면 손님이 절망할 테고, 너무 가깝게 대면 점괘가 안 맞다고 불평할 수 있으니 손님이 적당히 자신을 추스르면서 점괘를 잊어버릴 만큼 시간을 버는 것이다. 나는 이 수법을 생계형 점쟁이인 어머니 친구에게 배웠다. 그리고 지난해 나는, 건축업자들의 ‘2개월’이 점쟁이의 ‘6개월’과 비슷한 마법의 시간 단위라는 사실을 배웠다. 큰 공사는 6개월이나 1년일 수도 있겠지만 건축면적 85㎡짜리 내 집은 그랬다.
‘발리에서 집짓기’ 13개월이 훌쩍
건축업자는 4개월을 약속했지만
그간 “2개월 뒤 완공”을 4번
갱신 그리고 또 ‘2개월 뒤’를 약속한다
모두가 미워지고 분노가 솟아나고
자책을 하다, 다시 울화가 치밀어
결국 명상 끝에 결론을 얻었다
발리에서 ‘2개월 뒤’라는 말은
언제 끝날지 알수 없다는 뜻이다
동네 카페에 갔다가 외지인들의 낭만적 상상 속 발리 주거공간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티크 원목, 라탄, 흰색 마크라메 등으로 꾸며진 아늑하고 전망 좋은 집. 하지만 막상 부자 나라나 도시 사람들의 기준에 맞는 주거는 찾기가 굉장히 어렵고, 짓기는 더 힘들다. |
내가 누사프니다에 집을 짓기 시작한 지 13개월이 지났다. 애초 예정한 4개월이 지난 후부터 건축업자는 계속 2개월 후엔 진짜 공사가 끝난다고 다짐했고, 그 2개월은 수차례 갱신되었다. 지난해 11월에도 업자는 “2개월 후엔 진짜 끝난다”고 다짐을 했는데 그 즈음엔 물론 그 말을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이 공사에 관여한 각 주체들의 핑계는 다음과 같다.
인부들 : 공사가 지연된다면 친구들은 으레 “이곳 사람들과는 일하기 어렵다니까. 걸핏하면 제사다 뭐다 쉬어버리고 시간 감각도 없고…”라며 내 기분을 풀어주려 한다. 하지만 인부들은 잘못이 없다. 이 집엔 로컬들이 경험 못한 요소가 많다. 콘크리트 지붕도 그렇고, 세탁실과 수영장까지 만들어서 배관도 복잡하다. 전등, 스위치, 콘센트도 너무 많다. 그럼 현장에 딱 붙어서 지시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 작업 하나를 끝내면 다음 지시를 받기까지 며칠이 붕 떠버린다. 건축주는 뭣도 모르고 건축업자는 너무 바쁘고 작업반장은 입으로만 일을 한다.
예컨대 공사 초반, 나는 별생각 없이 매립식 샤워 세트를 구입했다. 해바라기 수전과 손으로 들고 뽑는 수전이 한 세트인데, 파이프를 벽에 묻어야 해서 일체형 샤워기보다 작업이 까다롭다. 그땐 그게 얼마나 큰 문제를 초래할지 상상도 못했다. 샤워기를 주문한 지 10개월이 지날 때까지 욕실 공사에 진척이 없을 줄도. 10개월이 지나 마침내 샤워기를 본 작업반장은 자신만만해했다. 나는 그가 매립식과 일체형의 차이를 아는지 궁금했으나 그는 이런 의구심 자체를 불쾌해했다. 그 후 3주 동안 공사는 거의 멎어 있었다. 작업반장은 귀찮은 문제가 있으면 해치워서 없애버리는 대신 다른 문제를 골라잡고, 그게 어려우면 중단하고 또 다른 문제로 넘어가는, 본인은 늘 바쁜데 일은 줄지 않는 비효율의 굴레에 빠진 사람이었다. 건축업자는 현장 상황도 모른 채 꼬박꼬박 임금을 지불했고, 걱정하는 나에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두 달 뒤엔 모든 게 끝난다”는 염불을 외웠다.
3주 만에 작업반장이 “이걸 어떻게 설치할지 모르겠다”고 인정했을 때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신이여 감사합니다! 드디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군요!” 나는 인터넷으로 매립식 수전용 배관도를 찾아내 건넸고, 반장은 그것을 바탕으로 하루 만에 설치를 완료했다. 이런 식이니 전기 배관에 두 달이 걸린 건 놀랍지도 않다. 작업반장이 이틀에 한 줄씩 전선을 설치할 동안 로컬 인부들은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었을 다른 작업에 대한 지시를 받는 대신 멀뚱히 기다려야 했다.
요즘은 전기와 배관을 끝내고 내외벽 공사를 하고 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진다. 건축주가 건축을 모른다는 핑계로 방관하면 안 되는구나 반성한다. 인부들은 작업반장이, 작업반장은 시공사가, 시공사는 건축주가 나서서 관리하지 않으면 제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
작업반장 : 그는 공사 중간 투입되었다. 원래 다른 작업반장이 있었는데 돈을 들고 튀어버리는 바람에 전기 공사만 하기로 했던 그가 부랴부랴 반장을 맡았다. 도면은 복잡했고 물품 조달은 원활하지 않았다. 벽면 미장을 하는 동안 시멘트가 떨어져서 주문하면 며칠이 붕 떠버리는 식이다. 그 와중에 문제가 생긴 다른 현장도 돌봐야 했고 건축업자를 대신해 발리에 출장을 가서 타일 견적을 비교하거나 인부를 조달하는 일까지 맡아야 했다. 어차피 다른 작업을 끝내도 창문과 문짝이 없으면 입주를 할 수 없는데, 건축업자는 목공 발주를 하염없이 미뤘다. 목수가 견적을 안 준다는 이유였다. 그러니 작업반장으로선 다른 작업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건물 구조는 다 서 있는 상태고 미장, 페인트, 타일 같은 단순 작업이야 로컬 인부들이 앞으로 구르고 뒤로 공중제비를 돌면서 해도 일주일이면 끝낼 수 있다. 목공 작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슬슬 전기와 배관을 마무리하면서 건축업자가 여기저기 저질러 놓은 일들을 수습하면 된다, 그게 그의 생각이었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데만도 그는 충분히 바빴다.
건축업자 : 2021년은 그에게 최악의 해였다. 프랑스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몇 해 전 인도네시아로 이민을 온 그는 이미 숨바에 벌여둔 일이 있었다. 지역 갑부와 손을 잡고 해양 리조트 타운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워낙 큰 작업이다 보니 인허가만 수 년이 걸렸고, 그사이 수입이 없어 고민하는 그에게 말 통하는 건축가를 찾던 누사프니다의 프랑스인 사업가들이 연락을 해왔다.와보니 누사프니다는 금광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섬에 이제 막 개발 열풍이 시작된 참이었다. 그는 호텔, 해변 바, 리조트 등을 줄줄이 따냈다. 그중 개인 주택들도 있었다. 주택은 돈이 안 될 게 뻔했지만 이점도 있었다. 다른 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동안 후딱 해치울 수 있고, 한 번 지어두면 그걸 견본 삼아 여러 곳에 같은 모델을 팔아먹을 수 있다.
그런데 어쩌나. 온갖 악재가 발생했다. 팬데믹으로 물류비와 자재 값이 치솟았다. 하염없이 연기되던 숨바의 리조트 타운도 갑자기 시공에 들어갔다. 누사프니다의 해변 바와 리조트 견적 작업도 지역 거래처가 없는 그로선 사방팔방 뛰어다녀야 하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누사프니다 주택 공사장 한 곳의 작업반장이 인부들의 임금을 들고 야반도주했다. 알아보니 작업반장은 회사 트럭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서 빼돌린 터였다. 다른 주택의 작업반장은 명절을 쇠러 고향에 갔다가 코로나19에 걸려 사망했다. 인부 두 명이 만취해서 스쿠터를 몰다가 전봇대를 들이받고 즉사한 사건도 있었다. 누사프니다에서 벌어진 이런 끔찍한 일들을 처리하노라니 숨바에서 연락이 온다.
리조트 공사를 위해 목재를 대량 매입했는데 알고 보니 거래한 목재업자가 벌목 자격이 없는 자라 법적·금전적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시간이 지연된 만큼 누사프니다 주택들의 공사비는 초과되었고, 약속한 예산에 맞추자면 현란한 저글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공사에서 남은 자재를 저 공사에 쓰고, 저 공사장 트럭에 그 공사장 짐을 싣고, 그 공사 인부에게 이 공사 목공을 할인해서 맡기고, 그러자니 이 공사 일정에 따라 저 공사가 연기되고 저 공사 사정에 따라 그 공사가 중단된다. 그것만 해도 울 것 같은데 북한인지 남한인지 하여간 저 딱딱한 나라에서 온 인간미 없는 건축주 하나가 갑자기 X축에 공사 항목, Y축에 날짜가 표기된 엑셀 파일을 들이밀면서 “두 달이란 헛소리는 집어치워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니 이제 내가 스케줄 관리를 하겠다. 언제 뭘 할 건지 구체적으로 표기해라”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나 : 내 아버지는 한때 건축 시공사를 운영하셨다. 그는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거긴 갑자기 건설붐이 인 시골이었고, 어차피 건축가는 따로 있을 테고, 공사비는 모험을 해볼 만큼 큰돈이었다. 그런데 터무니없게도, 아버지는 첫 공사로 13층짜리 호텔을 따내셨다. 그건 좀 과하지 않은가 싶지만 어쨌든 건물 골조는 완성했다. 지금 생각하니 ‘아버지, 어떻게 그걸 해내셨나요’ 싶다. 하여간 외관이 완성될 즈음 태풍이 닥쳤다. 현장에 배송되었던 외벽 강화유리가 모두 깨졌고, 아버지는 부도가 났고, 우리 가족이 그 후유증에서 헤어나는 데는 긴 세월이 걸렸다.
집 공사에 대해 건축업자와 처음 논의할 때 나는 그 얘기를 했다. “나는 건축업의 어려움을 안다. 공사를 포기할지언정 당신이 손해 볼 제안은 하고 싶지 않다. 당신이 후회하지 않을 만큼 현실적인 견적과 일정을 달라. 그게 나와 안 맞으면 그냥 저렴한 전통 주택을 짓겠다.” 그 후 견적과 예상 일정을 받았다. 그리고 “2개월 후 완공”이란 말이 네 번 갱신될 때까지, 현장에 인부가 한 명도 없는 날의 집계가 누군가 뭔가를 하고 있는 날을 초과할 때까지, 내가 임시로 머무는 집의 월세 초과분이 로컬 주택 한 채를 더 지을 만큼에 달하고 한국 돈의 통화 가치가 절하되어 건축비가 예상치를 훌쩍 넘어설 때까지 나는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해가 두 번 바뀌어 2022라는 낯선 숫자를 본 순간, 갑자기 뭔가에 두드려 맞은 듯 뒷골에 전기가 흘렀다. 아,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대로는 안 된다. 건축업자가 ‘친구 할인가’로 이 공사를 맡았다는 게 그간 닦달하지 않은 핑계였지만 그는 집이 완공되기도 전에 잠재적 구매자들에게 현장을 관람시키고 이미 한 건의 계약을 성사시키지 않았던가. 내가 디자인을 하고 공사비를 대어 그에게 모델하우스를 제공한 셈이니 ‘친구 할인’의 대가는 충분히 치른 것 아닌가. 나는 이제 몇 달 뒤 끝날지가 아니라 당장 이번주에 당신들이 무엇을 할지를 알아야겠다.
하여간 일이 이리 되어 내 집은 아직 완공되지 않았고, 나는 이 공사를 끝내려 노력하고 있으며, 건축업자는 지금으로부터 2개월 후엔 진짜 공사를 끝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무슨 일이건,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갑자기 울화가 치밀다가, 그러려니 하다가, 감정적 반응은 백해무익하니 그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궁리해보다가, 모두가 미워지다가, 모두가 안됐다가, 자책을 하다가, 또 울화가 치밀다가, 이러지 말자고 명상을 한다. 다만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집을 구하려는 사람들, 특히 발리에서 뭔가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조언을 하고 싶다.
‘부동산은 짓는 게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혹시 이 조언을 잊고 공사를 시작했다면 다음 말이라도 기억하십시오. 공사가 2개월 후에 끝난다는 건 사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이숙명
영화잡지 ‘프리미어’, 패션지 ‘엘르’ ‘싱글즈’ 등에서 일했다. 27년차 프로 독거인으로서 <혼자서 완전하게>라는 책을 썼으며, 2017년 한국을 떠나며 짐정리를 하느라 고군분투한 얘기를 <사물의 중력>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현재 발리 인근 누사프니다에 살면서 가끔 글을 쓰고 요가와 스쿠버다이빙을 한다.